‘현대 단편소설의 대가’. 지난 5월 13일(현지시간) 눈을 감은 캐나다의 작가 앨리스 먼로를 향한 수식어다. 실제로 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이렇게 호명됐고, 이후로도 그렇게 불렸다. 그의 부고가 전해졌을 때도 많은 매체가 이 수식어를 달며 추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앨리스 먼로는 현대 소설에서 장편소설이 가진 권위를 뒤집은 작가다. 때문에 “우리 시대의 체호프”로도 불렸다. 주지하다시피, 안톤 체호프는 단편소설과 희곡을 오간 작가들의 작가.
하지만 앨리스 먼로가 단편소설을 쓴 배경과 이후 행보는, 남성 지식인인 체호프와는 좀 달랐다. 의대를 다니던 체호프는 가난한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단편소설과 콩트를 써 돈을 벌었고, 이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대학에서의 의학 공부가 그의 작품 특징인 간결함에 영향 줬을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하지만 먼로는 대학을 중퇴하고 결혼했고, ‘왜 단편소설을 쓰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육아하느라 시간이 없었다’라고. 대작가가 단편소설에 평생을 바친 이유가 이것만은 아닐 거다. 이 대답이 작가를 과장해서 대표하는 경향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 대답은 좀 더 곱씹어볼 만하지 않은가.
육아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 그가 단편소설을 쓴 이유
집안일과 육아 또는 간병. 타인을 위한 계약서 없는 노동을 하는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산다. 같은 ‘24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시간은 조각조각 분절 난다. 방 안, 혹은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몰입해 집필하는 장편소설에 최적화된 삶은 아니다. 지금도 그런데, 1950년대 결혼 후 세 딸을 낳은 먼로라면 더더욱.
그는 10대일 때부터 집안일을 챙겨왔다. 파킨슨병에 걸린 어머니 밑에서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대학 시절이란 “휴가”나 다름없었다. 그때에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지만, 적어도 집안일은 안 해도 됐으니까. “당시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 2년 치였기 때문에 제 대학생활은 2년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죠. 하지만 멋진 시간이었죠. 휴가나 다름없었어요. 십 대에 집안의 가장이 된 터라 대학은 제 삶에서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기였어요.” (『작가란 무엇인가 3』 - 앨리스 먼로 편)
먼로는 대학 시절 이미 단편을 발표했다. 하지만 ‘소설집’으로 묶어 출간한 건 수 해가 지난 서른일곱의 일.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기간이 끝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결혼을 택했다. 먼로는 남편과 서점을 운영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하며 틈틈이 소설을 썼다.
1968년 출간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그렇게 완성된 첫 단편집이다. 열다섯 개의 단편이 있는 이 책은, 집과 글쓰기의 세계를 오간 작가만의 시선이 묻어난다. 책의 문을 여는 「작업실」부터 흥미롭다.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세탁, 육아, 요리, 글쓰기 노동을 누비던 화자가 별안간 “작업실을 구해야겠다”라고 외치며 소설은 시작된다. 남편은 심드렁하게 “적당한 데 있으면 구하던가”라고 말하고, 화자는 생각한다. “차라리 모피나 코트를 원했으면 달랐을까.”
집은 남자가 일하기에는 아주 좋다. (...) 남자에게는 일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아준다. 따라서 으레 전화를 받는 일도, 어디 두었는지 모를 물건을 찾는 일도, 아이들이 왜 우는지 알아보는 일도, 고양이 먹이를 주는 일도 기대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아걸어도 무방하다. 방문이 닫혀 있고 그 방 안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안다고 생각해 보라.(생각해 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왜냐,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용납하기 어려울 테니까. (『행복한 그림자의 춤』 - 「작업실」 중에서)
보풀이 인 풍경, 일상의 작고 거대한 순간
먼로는 첫 책에서부터 소녀와 중년 여성 등 다양한 시점으로 일상을 재조명한다. ‘별 것 아닌’ 작은 일상이 새롭게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거나, 은은한 분노를 자아내거나, 힘 있는 질문을 남긴다. 그렇게 그는 속절없이 흐르는 생을 멈춰 세웠고, 장편에 가려진 단편소설의 힘을 끌어올렸다. 먼로는 첫 책으로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총독문학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되며 “대부분의 장편소설 작가들이 평생을 공들여 이룩하는 작품의 깊이와 지혜와 정밀성을 매 작품마다 성취”했다는 평을 받았다.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전체 경력에 대한 평이었다.
그런 그가 고향인 오리온타주에서 이 생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의 언어에 기댔던 독자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아직 그 세계를 접하지 못했다면, 첫 책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시작으로 그를 만나보자. 슬픔에 잠겨있는 먼로의 독자들에게는 그의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 설마 죽더라도 나한테는 수많은 페이지의 글이 있어.” (『작가란 무엇인가 3』 - 앨리스 먼로 편)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