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싸우고, 사랑하라 ‘노점’에서 바라본 세상
먹고, 싸우고, 사랑하라 ‘노점’에서 바라본 세상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5.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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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작업대 위 붉은 떡볶이와 순대. 그 위로 뿌옇게 김이 서려있다. 그 옆으로는 꼬슬하게 구워진 잉어빵(붕어빵이 아닌)이 일렬로 놓여있다. 지난 4월 출간된 『인생은 예측 불허』(부제: 나의 노점 이야기) 표지 얘기다. 군침이 도는 표지 이미지와 ‘노점’이라는 단어를 보고, EBS ‘한국 기행’ 혹은 SBS ‘생활의 달인’에 등장하는 ‘맛집 노점상의 인생 역경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이 책은 ‘노점으로 인생 역전’같은 성공담을 다루지 않는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어리바리 초짜 노점상”의 실패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빈민운동활동가였던 저자가 직접 노점을 운영했던 1년의 경험을 담은 생존기이자 투쟁기, 그리고 노점에서 바라본 도시 기록이다.

시흥 사거리. 노점을 시작하는 날, 겨울치고는 날씨가 좋다. 도움을 주러 온 분들과 "유동인구가 많아 대박 나겠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마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트럭이 도착하고 주홍색 마차가 내려지고 있는데 바로 경찰차가 온다. 그리고 5분도 되지 않아 구청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아줌맛! 여기서 장사하면 안 돼! 당장 치워요!"

에세이집이지만 내용은 ‘드라마틱’하다. 저자의 탁월한 표현력과 상황 연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거리 위에서 노점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드라마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노점을 운영하는 일은, 얇은 천막 한 겹을 두고 거리 위의 온갖 문제와 직면하는 것을 각오하는 일이다.

노점상 당사자가 되어 마주한 현실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단속반은 중년여성인 저자를 향해 존댓말과 반말을 교묘하게 섞으며 채근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묵직한 마차를 밀며 메뚜기처럼 터를 옮겨 다닌다. 저자의 회고처럼 ‘노점을 하며 단속받은 날이 단속받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단속보다 무서운 것도 있다. 바로 ‘민원을 넣은 이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일’이다. 주변 상가뿐만 아니라 노점상이 노점상을 밀어내기 위해 신고하는 일도 잦다. 그럼에도 저자는 주변인들과 공존을 모색하며 싸움을 이어간다. 단순히 저자의 상황만이 아니라, 버거운 현실 속에서 약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탓하게 되는 사회 구조가 그대로 읽힌다.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내 노점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고, 그 안의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이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책의 시선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이하며 마시는 어묵 국물처럼 따뜻하다. 이는 작은 노점상 안에서도 끊임없이 관계 맺는 저자의 태도 때문이다. 노점상 근처 건물 경비원과 저자는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며 돌보는 사이다.

또한, 추운 겨울, 저자는 도시를 걷는 노년 여성들을 위해 ‘잉어빵을 사지 않아도’ 노점을 바람막이 장소로 내어준다. 각자의 일상에 파묻혀 그저 스쳐가는 이들의 삶과 관계가 구체적이고 촘촘한 텍스트로 되살아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도시를 움직이는 노동자와 사람들의 얼굴이 이미 알고 있던 이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책의 또 다른 묘미는 노점 노동에 대한 문장들과 노점상을 하며 뒤바뀐 감각에 대한 묘사들이다. 잉어빵을 팔게 된 이후로는 세상의 모든 재화들이 ‘잉어빵의 가격’으로 환산되어 돈을 쓰기 무섭고, 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바로 이렇게.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 온종일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 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카메라의 셔터 속도를 느리게 해서 찍은 사진처럼 사람들이 지나간다. 잉어빵 마차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1부와 2부는 노점상으로서의 1인칭 시점으로 사건과 사람에 집중한다면, 끝으로 갈수록 거시적으로 노점상을 둘러싼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전직 노점상의 에세이이자, 도시의 다양한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저자는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노점상을 싫어하는데 누가 이런 글을 보겠나 싶었다”라고 고백한다. 직업 에세이들이 많은 경우 작가, 에디터, 마케터 등 자신의 삶을 유려하게 설명할 줄 아는 이들이 다수인 까닭이겠다(물론 저자 역시 ‘운동권’ 지식인 출신이기는 하다). 또한, 세상의 많은 콘텐츠들이 성공담 혹은 선망하는 직업인들의 목소리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말한다. 그렇기에 이런 책들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의 삶과 노동을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더 흘러나오도록.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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