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풍요로웠던 1920년대의 미국, 남부에서 성공을 좇아 올라온 재즈 뮤지션들로 인해 대도시의 거리에는 어디든 재즈 음악이 흘러넘쳤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고, 세상은 이들을 ‘잃어버린 세대’라 불렀다. 사랑에 아파하고, 돈 앞에 좌절하며, 슬픈데 웃기고,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때로는 등골이 서늘하고, 때때로 한없이 우울해지는, 재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군상들의 인생 이야기가 소설, 연극,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 펼쳐진다.
지난 5월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벤자민 버튼’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인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원안으로 삶의 기쁨과 사랑, 상실의 슬픔, 시간과 세월을 초월해 존재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인생을 탐구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만큼 뮤지컬 제작 소식부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냈으며, 소설과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퍼펫(puppet,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을 차용한 디자인 구성은 뮤지컬 ‘벤자민 버튼’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무대 연출에 이어 인형 제작, 인형극까지 펼치고 있는 오브제 아티스트 문수호 작가는 극 중 벤자민 버튼의 나이 변화를 퍼펫으로 표현했으며, 기존의 한국 뮤지컬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문수호 작가는 “작품의 주된 정서인 ‘따뜻함’을 전달하고, 우리나라의 감성과 조화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경 썼다”라며 “인상, 무게, 크기 등 모든 요소가 벤자민이라는 특별한 인생에 더 잘 부합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하이라이트 장면 시연에서는 9개의 곡이 선보였다. 벤자민과 블루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부터 재즈클럽에서의 재회, 금주법 시대를 틈탄 밀주사업, 예상치 못한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참전까지, 주인공 벤자민이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과 더불어 1920년대 미국의 시대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달콤하고 특별한 순간이라는 뜻을 가진 ‘스윗 스팟(sweet spot)’이라는 곡은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거듭해서 언급되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삶이 잠깐이라도 함께하는 것이 소중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블루 역의 박은미 배우는 “저마다 결함이 있는 인물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치유하면서 점차 완전해지는 과정을 작품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배역의 김소향 배우는 “공연을 통해 관객분들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나이를 먹고 주름이 하나씩 늘어간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늙어가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지, 각자의 인생과 삶을 정의 내릴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오는 6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