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생긴 점은 성장하며 고유한 매력이 생긴다. 지역 시민 간의 연결, 지역 공간 간의 연결, 지역 데이터와 데이터의 연결은 점과 점의 연결이다. 점과 점이 연결되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이 연결되면 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면이 생기기 시작하면 ‘모양’이 된다. 모양이 잡히고 뚜렷해지면 멀리서도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서도 보이면, 그 지역문화의 고유성을 구체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모양이 보이는 매력적인 지역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은 브랜드가 생기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찾게 되고, 더 많은 지역과 연결된다.
수원의 고유한 지역문화를 지닌 수원시립선경도서관은 수원을 대표하는 도서관으로서 지역민과 함께 수원의 문화, 그리고 독서 문화를 가장 잘 성숙시키는 지역도서관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상투적으로 써 왔던 ‘문화유적을 통해 조상의 숨결을 느낀다’는 말의 본뜻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떻게 도서관이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켜켜이 쌓아 올릴 수 있었는지 지난 4월 30일 선경도서관 박미영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수원학 특화도서관이라고 들었어요.
수원시에 있는 모든 도서관은 작게라도 수원과 관련된 도서를 모은 향토관을 갖추고 있어요. 그중 선경도서관은 가장 많은 자료(약 3만 2천 권)를 보유하고 있고, 유일하게 자료실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죠. 현재 향토 자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수원학 자료실에는 수원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고서들은 물론이고 수원이라는 도시와 수원화성 건축 관련 도서, 마을지, 역사 문화 이야기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수원 전문 서적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또한, 나혜석, 오주석 등 향토 문인들의 작품도 볼 수 있죠. 대부분 지역 연구나 수원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있고요. 특히 수원 시민분들이 직접 자료를 기증해주시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수원은 그 어느 도시보다 자기 역사를 유산으로 간직한 도시라 할 수 있어요.
Q. 자료도 많고, 규모도 큰 만큼 거기에 맞춰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해오셨어요. 도서관의 대표적인 주요사업과 성과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현재 수원시 소재 19개 도서관과 연계를 맺어 ‘희망도서 서점대출’, ‘상호대차 서비스’, ‘책 배달 서비스’, ‘책나루 도서관’ 등을 통해 시민들이 더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독서 환경을 조성하고 있어요. 또한, 대학도서관, 여러 기관과 협업해 인문독서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고요. 특히 지역출판문화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희망도서 서점대출’은 수원시 소재 지역서점에서 신간도서를 간편하게 빌려볼 수 있는 서비스로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2018년도에 수원행궁광장과 행궁동 일원에서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5일간 개최한 적이 있어요. 전국 각지의 지역 출판물들을 소개하고 지역출판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는데, 5일 동안 관광객 3만여 명이 수원을 방문했던 큰 행사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지역학 연구와 더불어 지역문화 콘텐츠가 지닌 가치를 한층 높일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요. 수원을 대표하는 도서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노력을 인정받아 감사하게도 지난 2019년에 한국도서관상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도서관 관계자뿐만 아니라 수원 시민들에게도 영광스러운 상이였고, 도서관을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계기가 됐죠.
Q. ‘두루두루 서비스’, ‘내 생에 첫 도서관’과 같이 방문이 어려운 분들을 위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나 몸이 무거운 임산부들에겐 도서관에 방문하는 게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에요. 선경도서관은 사회적 정보 취약계층을 위해 도서를 집으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두루두루 서비스’는 장애인분들을 대상으로, ‘내 생에 첫 도서관’은 임산부와 영유아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무료 택배 서비스를 말합니다. 꾸준히 많은 분께서 신청하고 있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하려고 하고요. 특히 장애인 이용자분들의 독서 편의가 많이 향상돼 앞으로도 독서 소외계층이 편리하게 필요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활성화할 생각입니다.
Q.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강좌가 많이 개설되고 있어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방학 때 특강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평상시에는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특히 선경도서관은 수원학이 특화되어 있어 이러한 시제에 맞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민분들께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다가오는 6월에는 역사와 관련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고요. 수원화성 연구자분들이 참여하는 수업, 대학교와 협업해서 진행하는 인문학 수업 등 성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진행했다면 지금은 이용자분들이 도서관에 방문할 수 있도록 대면 교육이나 강연을 점차 늘리려고 하고 있죠.
Q. 올해 큰 행사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독서 마라톤’이라는 도서관 챌린지를 지난 4월 2일부터 진행하고 있어요. 독서 마라톤은 독서 활동을 마라톤에 비유해 꾸준히 책을 읽어 독서 목표코스를 완주하는 생활 독서운동인데, 시민들의 독서율을 높이기 위한 취지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목표코스를 지정해서 달성했을 시 인증서를 발급해 드리고, 대출 건수를 확대하는 혜택을 드리고 있죠. 또한, 완주한 참가자에 한해 사진 전시도 할 예정이고요.
이외에도 ‘한 책 함께 읽기’라는 프로그램을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선정한 12권의 책 중 수원을 주제로 한 책 한 권(김남일, 『수원을 걷는 건, 화성을 걷는 것이다』)과 일반 도서 2권(곽재식,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유은실, 『순례 주택』), 어린이 도서 2권(한지원, 『왼손에게』, 박상기·이지오, 『고양이가 필요해』), 총 5권을 꼽아 다 같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운동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투표를 해서 선정된 도서라 의미가 남다르고, 시민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데에 의의를 두어 이후에 북콘서트, 독서 토론, 전시 등 20개의 도서관과 연계해 다양한 이벤트가 깃들어진 행사를 개최할 생각입니다. 이처럼 올해에는 시민들의 삶에 녹아드는 독서프로그램들을 많이 선보이려고 하고 있죠.
Q. 선정된 도서 중 특별히 소개해줄 만한 도서가 있다면요.
작년과 다르게 올해에는 수원을 주제로 한 도서가 추가되었어요. 김남일 작가의 『수원을 걷는 건, 화성을 걷는 것이다』라는 책은 수원이라는 특정 장소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저자의 경험담을 함께 녹아낸 촘촘한 기록물입니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함으로써 좀 더 행사의 의미가 깊어졌다고 할 수 있죠. 책을 통해 작가님과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분들은 다시 한번 추억을 되새기면서 반추하게 될 계기가, 수원의 역사를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해 가슴을 묵직하게 울릴 수 있는 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꼭 수원 시민분들이 아니어도 각자의 지역을, 동네를 다른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할 책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문요한 작가의 『관계의 언어』라는 책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일상에서 겪는 인간의 관계 문제를 심리적 차원에서 풀어낸 책인데, 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 게 인상 깊었죠. 특별히 이 책을 꼽은 이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가 ‘관계 맺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손쉽게 갈등을 회피하고 때로는 섣불리 관계를 단절하기도 하잖아요, ‘손절’이라는 말이 인간관계에까지 두루 쓰이는 걸 보면요. 저 역시도 관계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적도, 그러한 관계를 끊어내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요. 책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개개인이 지닌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람이 지닌 특유의 본질적인 성향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전해요. 그렇다고 성향을 버리고 외면하면서 관계를 이어나가라는 말은 아니에요.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인정하고 인지하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노력하는데도 관계가 풀리지 않는다면,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해법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Q. 리모델링을 통해 도서관을 열린 공간으로 새로 개관했다고 들었어요.
이 전에는 종합자료실과 기사자료실이 각각 분리되어 있었는데, 리모델링 과정을 거치면서 통합형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컴퓨터를 하는,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한 곳에서 할 수 있게끔 구성했다고 할 수 있죠. 노트북을 포함한 각종 스마트 기기를 도서관 어느 공간에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도 조성했고요.
뿐만 아니라 강의실과 강당과 같은 시설을 대관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관하지 않아도 시민분들이 항상 이용할 수 있게 언제나 개방하고 있고요. 다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의 필요성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공간과 장소가 없어 불편함을 겪는 분들이 많은데, 개방과 동시에 많이들 방문해 주시고 도서관도 점차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확고히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책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공간이 곧 도서관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Q. 올해 임기 마지막이라고 들었어요. 도서관 이용자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도서관의 커뮤니티로서 역할은 많은 정보원이 온라인으로 변화한 지금도 유효해요. 어쩌면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죠. 이전만큼 종이책을 읽지 않는다 해도 도서관이 의미 있는 이유는 누구든 자유롭게 방문하여 지식을 쌓고,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갈 곳이 없을 때, 잠깐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 사람과 만나고 싶지만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싶지는 않을 때, 그 누구든 어떤 이유를 가지고 방문하든 사람을 반겨주는 공간. 도서관만큼 ‘열려 있다’라는 동사가 잘 어울리는 곳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도서관 경험이 없으신 분들에게 꼭 한 번쯤은 방문해볼 것을 권장해 드리고 싶어요. 시도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여서요.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