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나는 소희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기뻤다. 똘똘하고 당찬 소희가 역시 세상에 보란 듯이 그 일을 다 헤쳐나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는 소희를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10대 때처럼 우울하고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힘들면 아직도 과하게 술을 마시고 사귀는 사람들도 예전 친구들의 범위에서 별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회복지사도 역시 이 부분을 설명하지 못했다. 왜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가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가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34쪽>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이는 빈곤 정책을 고민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99쪽>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은 가난한 청년이 되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취직하자마자 바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수정은 가난을 벗어날 디딤돌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133쪽>
저만 봤을 때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니까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진 것 같은데, 집안 전체를 봤을 때는 더 부족해진 느낌이고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뭔가가 없고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느낌? 한없이 꿈을 접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꿈이 현실과 부딪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이해가 돼요. 처음에는 꿈만 생각했는데, 현실을 보면서 꿈을 실현하는 게 안 되는구나 싶어요. 그럼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잖아요. <146쪽>
우리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너무 받은 것이 없고 자기 통제를 훈련받지도 못한 청소년들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다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기에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난한 가정을 대신해서 돌봐주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189쪽>
나는 10여 년에 걸쳐 봐온 혜주의 변화 과정을 생각해보았다. 10대에 혜주는 거리를 헤매며 사람들의 시선에 당혹해하는 아이였고, 20대 초반의 혜주는 빈손으로 집을 나와 어찌할 줄 모르는 청년이었다. 가족들은 그녀를 구제불능에 집안의 골칫거리로 여겼다. 본인도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시기를 거치고 나서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제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이 내게 대견해 보였다.
혜주는 “이제 늙어서 뭐 어쩌겠어요. 그냥 해봐야죠”란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좌충우돌하며 성장하고 어느덧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된다. 아이들이 충분히 ‘늙을 때까지’ 우리는 지지해주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247쪽>
[정리=이세인 기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돌베개 펴냄|280쪽|17,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