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내 목숨밖에는,
목숨밖에 팔 게 없는 세상,
황량한 쇼 윈도 같은 나의 창 너머로
비 오고, 바람불고, 눈 내리고,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또 세상에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내 영혼의 집 쇼 윈도는
텅 텅 비어 있다.
텅 텅 비어,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최승자, 「너에게」
세기말에 부르는 비의적(秘義的) 사랑
시인은 지금 어떤 처지일까요. ‘치명적’이라고 단말마처럼 내뱉고 있습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처럼 목숨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이유는 무얼까요. 시인은 그동안 무언가를 팔며 연명해 왔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팔 것이 없다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자본주의 아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무엇이든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입니다. 더 이상 팔 것이 없다면 그만 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생명이 사물화되는 순간입니다. 삶과 죽음 모두가 거래 가치로 전락하였으니 비어 있는 상태는 더 이상 인간적 생활의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생활 영역을 쇼윈도 안에 가두었습니다. 그 순간 독자는 쇼윈도 안의 화려한 상품에 마음을 빼앗긴 소비자가 됩니다. 그런데 더 이상 팔 것이 없다니 독자는 우울에 빠지게 됩니다. 시인의 비명만큼이나 심각합니다. 사실은 그렇게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늘 백화점과 지하아케이드가 연출하는 환상 세계에 매혹됩니다. 그러다 정신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환멸을 품게 되지요.
최승자는 나혜석 이후 한국 시단에서 여성주의 세계관을 잇는 시인입니다. 그의 여성적 글쓰기는 고정된 현실에서 벗어나 늘 새로운 공간으로 날아가길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성 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 여성 고유의 세계관을 펼쳤습니다. 그 도정에서 시 「너에게」는 그가 가는 길이 간단치 않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상과 싸우는 일에 지쳐 돌아와 마침내 가닿는 곳이 어딜까 궁금합니다. 최승자는 어린 영혼들과의 교섭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세계로 빠져들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의(秘義)’라는 것은 비밀스럽고 종교적인 모습입니다. 아마도 사랑조차도 상품화되었을 세기말에 이 시를 쓰며 그는 이를 중단시킬 원초적 옛사랑이 필요했나 봅니다. 휩쓸려 가는 도시의 사랑에서 우두커니 멈춰서 잊힌 감각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너를 불러 봅니다. 너는 쇼윈도에 있는 사물과 달리 불분명하고 불명확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치명적인 현실에서 우리 모두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시인은 말합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