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주는 게 받는 것보다 큰 복”
문화유산 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주는 게 받는 것보다 큰 복”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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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불국사도 ‘나라님’ 혼자 지켜온 것이 아니다. 사찰을 관리하는 스님과 신도들, 그리고 기도하러 온 백성들의 보살핌이 있어 현재의 불국사가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불국사를 돌보는 주체에는 사찰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문화재청, 그리고 시민단체 등이 공존한다.

하지만 ‘버려진 문화유산’들의 경우는 어떨까? 많은 경우, 보존은커녕 개발의 물결 속에서 문화유산이라는 인식도 없이 사라져왔다. 이렇게 소외된 ‘문화유산’을 다시 세상의 품으로 돌려주는 단체가 있다. 이름도 비범하다. 문화유산 국민신탁(國民信託)이다.

서울시 종로구 '이상의 집' [사진=문화유산 국민신탁 홈페이지]

2007년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이래, 국가의 힘이 닿지 못하는 문화유산을 매입하거나, 국가 소유 문화재를 관리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로 서울 종로구의 ‘이상의 집’이 있다. 시인 이상이 살던 곳으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없어질 뻔했던 곳이다. 단체가 사들인 뒤 새롭게 복원, 현재는 명소가 됐다. 

이 변화의 가운데에 김종규 이사장이 있다. 문화예술계의 큰 거목이자 ‘마당발’이다. 김 이사장 취임 당시, 약 300명이던 개인 후원자 수는 현재 1만 7천여 명. ‘주머니에 후원 신청서를 넣어 다닐’ 정도로 발로 뛰며 노력한 덕이 컸다. 후원 금액을 1만원으로 설정한 것도 한몫했다. 1만원이 넘으면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지론.

1939년생, 여든 중반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지나온 그이지만, 소년처럼 천진했다. 요즘말로 ‘웃상’(항상 웃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조금은 굳어진 때가 있었다. ‘이사장 님이 단체 후원자들을 대부분 모았다고 들었다’라고 운을 뗐을 때였다.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가 다 한 게 아니에요. 저기 직원들, 또 같이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다 같이 한 거지’ 한 평생을 문화예술에 바치고 있는 그를 만나 우리가 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문화가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들었다.
 

문화유산 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셨습니까.

1890년대, 영국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환경도 오염되고 문화유산도 파괴됐죠. 그때 민간 차원에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하고 미래세대에 문화유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나온 게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입니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민간 차원에서 문화유산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미미한 편이었어요. 그러다 유홍준 문화재청장 때 본격적으로 마중물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정부가 지원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후에는 스스로 보존하는 움직임도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국회에서 신탁 법인이 통과돼서 만든 것이 ‘문화유산 국민신탁’입니다. 당시 설립위원장을 맡았고, 나중에는 이사장이 되어 1만 7천 명 가깝게 후원자를 모았지요.

우리는 ‘십시일반’ 정신으로 해왔습니다. 불국사와 같이 천년 넘게 내려온 문화유산들은, 지금과 같은 ‘정부’의 예산이란 개념으로만 지켜온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합심해 지켜온 것들이죠.

-한국 곳곳의 문화유산을 지켜오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딘가요?

모두 기억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특히 울릉군 도동리 일본식 가옥이 생각나는군요.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일본식 가옥입니다. 일본식 가옥이지만 보존 가치가 매우 높고, 침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곳을 관리하는 데 국가의 손이 미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개인 후원 금액이 한 달에 1만원인데, 1만 7천여 명까지 성장한 것이 놀랍습니다. 대체로 어떤 분들이 후원자로 참여하는지 궁금합니다.

‘0살’부터 90세를 바라보는 나이까지 다양합니다, 하하. 최연소 0살 후원 회원은, 부모가 출생신고만 한 뒤에 바로 회원가입 시켰다고 하더군요. 물론 부모가 대신 가입한 것이지만, 어려서부터ᅠ봉사하고ᅠ기부하는 걸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90세를 바라보는 한 후원자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지식이 풍부한 분이셨어요. 회원가입을 권유하니 '아이고 회장님, 제 나이가 몇 인데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그렇기 때문에 한 달이라도 더, 좋은ᅠ일ᅠ하러ᅠ가셔야죠!' 젊은ᅠ사람들이야 취직도 어렵고 미룰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사님이야말로, 한 달이라도 더 좋은 일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런 거죠. 듣고ᅠ보니ᅠ맞는 말 같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엔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어요.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줘서’라고요.
 

김종규 이사장

-‘기부’가 아니라 문화유산을 지키는 ‘기회’를 갖는 거군요. 액수의 크기를 떠나 스스로 참여하는 의식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맞아요, 그분ᅠ입장에서 만ᅠ원이 큰돈은 아니겠죠. 그런데도ᅠ그전까지는 참여할 생각도 못하셨던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단체를 알았으면 하는 이유입니다.

-저성장 시대의, ‘각자 도생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은 뒷전이 되기 쉽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부도 사치로 느껴질 수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할까요?

만약에, 지금 세상에 문화유산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저 궁궐이 없고, 경복궁이 없고, 그냥 아파트 천지라고요! 문화유산은 교육의 장과 정신적 자산, 관광자원이 됩니다.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도 주지요. 그냥 기부가 아닙니다. 남에게, 또 미래세대에게 베풀고 돌려주는 교육이죠.

불교에 ‘육바라밀-보시바라밀’이란 말이 있습니다. 베푸는 걸 먼저 하자는 겁니다. 돈이 없다면 가끔 봉사를 할 수도 있죠.ᅠ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입니다. 항상 자기보다 힘든 사람을 도우면서 살아온 역사가 있었죠. 돈이 많아도 기부를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어려워도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나는 못해’라고만 한다면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회원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보시 정신, 그게 선진국이고, 그게 배운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요?

-앞으로 단체가 주력하는 활동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청소년ᅠ교육에ᅠ힘쓰고 싶어요. 어린 시절부터 기부나 사회 참여하는 행위를 배울 수 있도록 말이죠. 저희 개인 후원금이 1만원이지만, 아이들이나ᅠ학생한테는ᅠ오천원을ᅠ받습니다. 부모에게 절대로 대신 내주지 말라고 합니다. 대신 내주더라도 갚을 수 있도록 빌려주자는 거죠. 나중에ᅠ세뱃돈이나ᅠ용돈을ᅠ모아서 갚을 수도 있겠죠.ᅠ무엇이 되었든 어려서부터 직접 참여한다는 자부심을ᅠ키워줬으면 합니다.ᅠ

김종규 이사장

-현재 문화유산을 지키고 계시지만, 이사장님의 삶 전체가 ‘문화유산의 보존’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출판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만드셨고요. 처음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느끼고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중학교 때 형이 서점을 했습니다. 문화예술계 사람도 많이 만났고 문화유산이나 위인전을 접할 기회도 많았죠. (자연스럽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출판 박물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금속활자 최초 발명국이고 가치 있는 출판물이 많아 20대부터 일찍이 자료를 수집해왔어요. 이어령 문화부장관 시절 그분이 이렇게 말하셨죠. ‘우리나라에  적어도 천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야 한다’라고요. 이어령 장관과는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문학사상> 창간을 같이했죠. 그러다보니 예상보다 더 빨리 1990년 6월에 출판 박물관을 개관할 수 있었던 거죠.

-결국 출발점은 책과 출판이었군요. 지금은 소외된 문화유산을 소생시킨다면 과거에는 헌책에서 의미를 발견한 것이고요. 이사장님께 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그게 바로, 집약된 문화유산이잖아요! 하하. (문화유산이) 활자화되어 책으로 되어있다는 것만 다르지요. 우리는 셰익스피어와 단테를 책을 통해 바로 만날 수 있어요. 『삼국유사』 일연스님도요. 건물이다 조각이다,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보물단지는 책! 그래서 <독서신문>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과거 <독서신문> 부산 지사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참여를 해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죠. 전문교양지가 없던 시절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까.

-한국의 출판 전성기를 직접 만들고 경험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이 아닌 영상과 다른 매체의 힘이 훨씬 큽니다. 지금 이 시대에 출판과 책의 의미를 여쭙고 싶습니다.

종이에는 인쇄된 글자들이 있습니다. 영상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죠. 느리지만, 몸으로 숙독하고 사유할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기억하고 몸으로 줄 쳐가고 메모하면서 읽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독서에 투자했으면 합니다. 한 시간을 통째로 쓸 필요 없어요. 10분, 20분을 모아서 한 시간. 그럼 습관이 되죠. 나쁜 습관만 못 벗어나는 게 아닙니다. 좋은 습관도 못 벗어납니다. ‘좀 더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싶다면, 독서신문이든 무엇이든 최소 1시간은 읽어라.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값진 투자는 독서하면서 보낸 한 시간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상상할 수 없는 행복과 ‘부’가 찾아올 겁니다, 하하.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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