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도서관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온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씩 집어 들고 널찍한 책상 주변에 모여 앉아,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읽는다. 방과 후 수업이 있는 아이는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직접 대출 명부를 작성하고, 사서 선생님이 관리하는 소규모 공간들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리고 성산초등학교 강원하 교장은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곳을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연대, 아이들을 향한 학교 직원들의 배려와 존중 속에서 지난 4월 3일 용인성산초등학교는 ‘꿈산책 도서관’을 새로 개관했다. 어떻게 아이들만의 공간이, 도서관이 생겨날 수 있었는지 지난달 26일 용인성산초등학교에서 강원하 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도서관이 너무 예뻐요. 특별히 도서관을 새로 개관하기로 한 이유가 있을까요.
본래 성산초등학교는 42학급 규모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25학급밖에 되지 않아요. 교실이 거의 20여 개 남아 있다는 말인데 비어 있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다른 학교 도서관을 다니면서 직원들과 같이 논의한 결과 도서관을 넓히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고요. 그렇다고 단순히 넓히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닙니다. 도서관이 잘 조성된 학교들을 벤치마킹하면서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은 끝에 지금의 ‘꿈산책 도서관’이 만들어질 수 있었죠. 작은 것들 하나하나 도서관의 기능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공을 많이 들인 만큼 도서관이 개관한 지금도 도서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곤 해요.
Q. 확장과 더불어 도서관 공간을 5개의 테마로 나누었다고 들었어요.
저희 직원들과 얘기할 때 도서실이라 부를지, 도서관이라 부를지 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공간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곤 하니까요. 하지만 정작 대부분 그 두 단어의 차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도서실과 도서관은 분명하게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서실은 책을 모아 두고, 그것을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 한다면,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해 주는 곳을 넘어 일상 속에서 문화적인 삶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입니다. 문화적, 사회적, 교육적 활동이 모두 가능한 곳이라 할 수 있죠.
이전에는 학교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책을 제공해주는 역할만 했다면 이제는 그런 역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돼야 하죠. 때문에 공간을 나눠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다채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공간들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고유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공간의 특성을 더 잘 드러나게 했고요.
Q. ‘편안히 뜰’, ‘나란히 뜰’과 같은 이름을 가진 소규모 공간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공간을 단순히 장소라 부른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요. 의미부여를 할 때 변화가 일어나고 장소가 되죠. 공간이라는 단어의 뜻이 아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빈 여백을 말하잖아요. 이러한 공간에 우리의 삶이 스며들고, 감정의 교류를 일으킴에 따라 하나의 장소로 탈바꿈하는 것이죠. 흔히 ‘쓸모 있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름이 붙여질 때 그 이름에 맞게 쓸모가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 속 구절처럼 도서관 내 소규모 공간에 이름을 붙일 때 의미가 생기고, 그 의미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이죠.
Q. 도서관 개관 이후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폭발적이죠. (웃음) 이렇게 바로 얘기할 수 있는 게 복도나 운동장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아이들이 ‘좋은 도서관을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곤 해요. 도서관 경험이 적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공간과 색다른 문화시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동네라 그런지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요. 확실히 이전 도서관에 비해 아이들의 방문 횟수가 눈에 띄게 늘기도 했고요. 아침 시간에 도서를 대여해 가기도 하고, 잠깐 짬을 내어 책을 읽고 가는 아이들이 꽤 많아졌죠. 저는 특히 ‘나란히 뜰’에 앉아 창밖을 보면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웃음)
Q. 책도 이유에서겠지만, 그냥 찾아오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아요.
우리가 장소를 만들지만, 장소가 우리를 만들기도 해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짐으로써 학생들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테고, 또 거기에 맞춰서 자기 역할을 하게 되죠. 수업에 집중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다양한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도 포함해서요. 저는 도서관이라는 장소 안에서 아이들이 많이 경험하고 마음껏 상상하길 바라요.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이 사유하게끔 공간을 잘 구성해야 하고요. 예를 들어 길가에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있다고 하면, 어떤 아이들은 그걸 보고도 지나치는 반면 또 어떤 아이들은 유심히 바라보곤 합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처럼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그냥 지나치는 곳이 아닌, 장소로 인식됐으면 해요.
‘낯선 공간과의 만남은 사유의 폭과 깊이를 확대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여기서 ‘낯선 공간’은 단순히 처음 본 것의 의미를 넘어서 새롭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많은 것들을 보면서 생각하고 사유한다면 그 순간 낯선 공간이 되는 거죠. 민들레를 유심히 보는 것처럼요. 기존의 장소도 충분히 새로울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Q. 도서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학교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꼭 염두에 뒀으면 하는 팁이 있다면요.
인구 감소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학교는 점점 비어갈 겁니다. 이럴 때 도서관을 과감하게 만들었으면 해요. 물론 과정 안에서 어려움이 당연히 수반되겠지만, 기존의 도서관만 고집하지 않았으면 하죠.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설계하시는 분들의 의견만 들은 채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러면 반드시 후회가 남아요. 책을 100권 읽는 것보다 단 한 번의 경험이 때로는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도서관을 새로 만들 때 주위에 좋은 도서관을 많이 보고, 먼저 거쳐 갔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귀담아들었으면 합니다. 내 몸을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하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비단 공간에 대한, 도서관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 학교 직원분들, 선생님들, 그리고 교육계 종사자분들 모두 ‘교실 밖으로 행군’했으면 해요. 제2의 코로나가 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는 지금, 아이들을 또 방안에만 가둘 수는 없으니까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지역사회의 다양한 공간에 초점을 맞춰야 하죠. 그곳에서 교육을 받거나 스스로 체험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무언가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힘을 실어줘야 하고요. 교육이 교실 안에서만 이뤄지거나 온라인 수업만으로는 100% 충족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지난 코로나 때 배웠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교실 밖으로 행군해야 합니다.
Q.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나 비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번 ‘꿈산책 도서관’ 말고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들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다양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끼리 계속 얘기하고 실제로 의견이 반영되어 진행 중인 것도 있어요. 최근에는 AI 시대에 맞춰 코딩 교육이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아이들이 좀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수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죠. 아이들이 지식을 습득하는 걸 넘어 또 다른 무언가를 창출해내고, 충분히 생각하고 새로운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또한, 아이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놓고 혹은 수업과 수업 사이의 잠깐의 텀에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 공간도 가능하면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운동장을 천연 잔디로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곧 공사에 들어가는데 기존의 쓰이던 공법과는 다른 색다른 공법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대부분 잔디가 관리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꺼려 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걸 좀 깨고 싶어요. 새로운 공간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고 넓히는 게 제가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니까요. 다 만들어지고 나면 당연히 이름도 붙여야겠죠? (웃음)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