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하늘, 벚꽃이 한 잎 한 잎 봄바람에 흩날리며 땅 위를 수놓고 있다.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지나고 어느 사이 따듯한 봄과 함께 찾아온 꽃들을 보니 내 마음도 따뜻하게 설렌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듯이 꽃들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 꽃이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리에 연둣빛 이파리들이 앞 다투며 피어난다. 나날이 푸름을 더해갈 녹색의 물결을 바라보며 다시 꽃을 볼 수 있는 봄날을 고대하곤 한다.
자연의 모든 만물은 마치 인생의 한 장면과도 같다. 춥고 혹독한 날이 찾아오는가 하면. 그런 날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따뜻한 봄날처럼 인생에 기쁨과 안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서 항상 봄날과도 같은 아름답고 희망찬 순간이 오길 고대한다. 우리가 벚꽃을 보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봄날에 떨어지는 꽃잎들을 목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청춘을 꽃과 비교해서일까? 청년, 중년, 그리고 노년의 시기로 인간의 삶을 크게 나눈다면 지금 나는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그가 작곡한 ‘꽃의 왈츠’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들을 바라보며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곡의 도입 부분에 등장하는 하프의 카덴자 연주는 봄의 마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솔로로 연주하는 하프의 현란한 선율을 듣다보면, 마치 꽃잎들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바람에 정처 없이 흩날리는 광경을 묘사한 듯하여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우아하고 유려한 느낌을 자아내는 이 곡은 발레곡으로 작곡되었으며 메인 주제는 ‘호두까기 인형’이다, 호두까기 인형의 제일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 나오는 곡이 꽃의 왈츠이다.
어쩜 이렇게 봄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표현을 잘 했을까. 한참을 듣다 보면. 왈츠풍의 3박자 하프 연주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곡은 화려하면서도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 요즘 같은 풍경의 분위기와 정서에 많이 닮아서일 것이다.
봄은 순간에 지나가는 특성을 지녔다. 만물이 움트고 곳곳에 봄의 온기를 불어넣어 온갖 꽃들이 만개하는 그 향연이 끝나면 온 천지는 푸른 융단으로 수놓아진다. 삶에 쫓겨 계절 감각도 못 느끼는 삭막한 현대인도 봄의 계절엔 모두가 로맨티스트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계절은 우리의 정서에 큰 영향을 준다. 문만 열고나서면 복사꽃, 배꽃, 목련, 개나리가 이젠 철쭉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눈을 호사시킨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꽃들이 허무히 지면 또 한 계절이 무심히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나 역시도 계절과 함께 변해간다. 그 속에서 과연 나의 모습은 향후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하루하루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반성해 본다.
인생은 자연과 닮아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 사계절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할까? 나도 그렇다. 내 인생에도 꽃을 피우는 봄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그 꽃은 허무히 지고 그 자리에 하루가 다르게 푸름을 더해가는 잎들로 무성했다. 노력하고 애쓴 결실을 거둬온 조락(凋落)의 계절인 가을도 맞이한 적 있다. 그리고 회색빛 터널에 갇혀 오로지 나의 모든 능력과 감성을 꽃피울 봄을 또다시 희망하기도 했다.
그 계절 속에서 나는 많이 웃기도 울기도 했다. 때론 좌절과 실패도 겪었다. 그러나 아직 젊음이 있기에 무한한 희망이 내겐 남아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오듯 내 삶에도 언젠가는 구름 한 점 없는 따뜻한 봄날이 다시 오기를 소망해본다. 오늘도 미래의 장밋빛 꿈에 젖으며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