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향기] 도서관, 청소년을 위한 ‘환대’의 공간 되어야…
[사서의 향기] 도서관, 청소년을 위한 ‘환대’의 공간 되어야…
  • 정은영
  • 승인 2024.05.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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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영종도서관 관장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도시 속에 공공도서관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경제성장에도 일조하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다수의 주민, 특히 취약 계층의 피신처로 사람이 모이고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주어진 공간 자체가 그들에게 신뢰를 표시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의 공간으로서 가장 안전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서로의 성장을 목격할 수 있는 공간.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바로 공공도서관이다. 그래서 공공도서관은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은 큰 성장을 이루었다. 2012년 828 개관이었던 공공도서관은 2022년 기준, 1,236 개관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양적 증가뿐 아니라 서비스와 장서의 수, 도서관에 대한 이해 등 여러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신축과 리모델링을 하는 도서관이 많아지면서 더욱더 효율적이고, 공공도서관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깊이 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는 공공의 공간이 주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경계와 담이 없이 모든 이용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한 다양한 고민은 오늘도 수많은 도서관에서 계속되고 있다.

도서관은 그 사회의 필요를 담으며 그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초고속 성장기의 우리 사회는 많은 학습과 빠른 속도가 필요했다. 그런 시대의 도서관은 빽빽한 열람석을 제공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대에는 폐가제에서 개가제로 바뀌면서 좀 더 쉽게 더욱더 많은 생각에 다가가게 했으며, 어린이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어린이도서관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입구 경사로나 서가 간격, 화장실 공간과 시설을 변경했다. 이런 일련의 변화가 시대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한편, 도서관 이용자를 살피다 보면, 항상 청소년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교차하게 된다. 청소년기는 누구나 겪는 시기임에도, 청소년만을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정작 공공도서관에서조차도 청소년에 관한 관심이나 배려는 크지 않은 것 같다. 청소년은 당연히 학생이고, 학생은 공부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물론 도서관에 오는 청소년은 한정적이다. 학교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공부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독서가 취미인 청소년이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도서관에서 참가자 모집이 가장 어려운 프로그램이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다. 도서관에 청소년이 적은 것이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없어서인지, 도서관에 오는 청소년이 적어서 청소년 공간이 없는 건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보다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도서관이 모두를 위한 공간이며, 공공의 공간이 주는 해방감과 신뢰를 위해서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도 당연히 마련되어야 한다. 그 공간이 독립적이든, 개방적이든 말이다.

청소년은 사회적 약자이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 만만치 않아’라며 과대평가해도 그 시기를 살아가는 청소년은 어린이와는 다르고, 성인처럼 자유롭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내세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청소년이 또래와 있을 때 편안하고, 그 무엇으로부터도 강요받지 않았을 때, 자신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다면 그런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몫이다.

어린이에게는 시끄러운 책 읽기 공간이 필요하기에 어린이 자료실을 제공해 주었다면, 청소년에게도 그들만의 필요를 위한 제3의 공간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공간이 피시방, 보드게임카페나 농구 골대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공원의 한 부분이라면 과연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귀하게 여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청소년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이 필요할 때 쉽게 떠 올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공공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해외 유수의 공공도서관에서 ‘Teen Zoon’이 운영되는 이유도 이러한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하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환대하기 위함이다. 어른과 함께여서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책도 읽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 가끔 게임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정립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청소년의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그들이 쉽게 발견하고, 쉽게 떠 올릴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에서 사회적 가치를 누리고, 그 공간에서 시작된 사회적 환대의 경험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튼튼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돕고, 어른다운 어른으로 커가는 밑거름이 되어 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한 우리의 청소년이 사회의 주축이 되었을 때, 비로소 다른 계층을 환대하고, 넉넉히 베푸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다수의 공공도서관에서 청소년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신축도서관은 설계 단계부터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고려해 준공하고 있고, 우리 도서관처럼 일부를 재시공해 그들만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나아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

청소년기는 긴 인생의 여정에서 5~6년 잠깐 머물다 지나가는 간이역 같은 시기일 수도 있다. 이 시기에 우리의 청소년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도서관의 문화를 충분히 누리고, 그곳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며, 함께 사회적 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가. 우리의 귀한 청소년이 오늘보다 더욱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희망의 요람’으로서의 도서관, ‘꿈의 그루터기’로서의 공공도서관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가 청소년에게 얼마나 ‘환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를 희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시민이 어떤 앎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할 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사회 전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

- 『도서관 여행하는 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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