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타그램의 시대가 열렸다. 산악 잡지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웹과 앱 어디서든 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SNS 속 사람들은 단출한 레깅스 차림으로 정상 인증을 하고, 함께 어울리는 ‘떼산’만큼 ‘혼산’을 즐기는 이들도 늘었다. 실제로 지난해 산림청이 전국 성인 18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78%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이나 트레킹을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전체 성인 인구를 참작하면, 약 3229만 명에 달하는 수치다. 그리고 매사에 쉽게 싫증 내는 기자 같은 사람도 3년째 진득이 산에 오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등산은 누구라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산을 오르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산’에서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책 『아무튼, 산』은 스물다섯 살에 우연히 오른 지리산에 매료된 이후 히말라야와 알프스, 아시아의 여러 산을 오르며 산과 함께한 저자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목놓아 울게 만드는 장엄한 풍경과 휘파람 실실 나오는 호젓한 숲속, 이러다 죽겠다 싶은 심장의 박동과 살갗을 어루만지는 바람의 촉감. 산을 올라본 사람이라면 아는 그 뜨거움과 시원함이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그건 세상 속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들이 정제되지 않은 거친 호흡과 날것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직 산을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열정과 애정이 계속해서 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랐다. 내가 그 열정과 애정을 전하고 싶었다.
대부분 첫 등산은 간편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서 시도해보았을 것이다. 등산은 보이는 것만큼 심플한 일이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고.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해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손쉽게 뿌듯함을 누릴 수 있다. 등산이 효율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건 장기적인 성취감을 쫓는 행위는 등산만큼 빠른 만족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등산 이후 계속해서 산을 오르는 건 “살아가는 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의 마음이 바로 산을 오르고 달릴 수밖에 없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아닐까. 내 안의 산에서, 내 바깥의 산에서 무한한 것들과 영원한 것들을 갈망하며, 산을 넘고 나를 넘어 더 크고 넓고 깊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 요즘은 어떤 취미를 가지더라도 장비발에 설레발을 치지만 등산만은 예외인 이유다.
세상에 수많은 산이 있는 것처럼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배경과 목적과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이른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이 있으면 늦은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산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됐을 때 산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처럼 산을 오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8천 미터 14좌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고, 주말의 홀가분한 취미 운동으로 산을 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중 간절한 바람을 짊어지고 산중 암자까지 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산을 사랑하는 마음, 산을 즐기는 마음이 각자 다를지 몰라도 산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고 말한다. 스스로에게만 의지한 채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디뎌야 정상에 오를 수 있고, 그 자리에 선 사람만이 느끼는 감각이 분명 있으니까. 책 속 저자가 “정해진 답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처음 산을 향한 세상의 모든 대답과 만나고 싶어졌다”라고 말한 건 바위를 넘고 계곡을 건너는 과정을 겪어야만 산을 오르는 이유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르는 걸 등산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산을 오르는 것뿐인데 이렇게도 많은 부연설명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기자 역시 ‘등산을 왜 할까’, ‘내려올 걸 알면서도 왜 그리 높이 오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등산이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적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려올 걸 알면서도 올라가는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어쩌면 산으로 둘러싸인 나라라, 너무 익숙하게 보이는 곳이라 굳이 오를 이유를 찾지 않았던 건 아닐까. 저자는 엄홍길에 빗대어서 말하는 것도, 어디 지역 명소까지 가서 등산하는 것 또한 권하지 않는다. 그저 도심에 있는 산에 한 번 정도 올라가 보는 것을 제안한다. 무척 다른 곳에 온 듯한 기분이 들고, 그것이 꽤 나쁘지는 않다고 말하면서. 때로는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준다고 말하면서.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