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진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좋은 친구와는 그냥 만나서 재미있게 놉니다. 한해 한해 세월이 갈수록 와인이 숙성하듯 관계가 숙성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싸우면서 애정을 확인받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너와 내가 만들어가는 현재 관계와 앞으로 만들어갈 관계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고 노력하고 성취하기 바쁩니다. 올바른 부모 자식 관계와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난 것에 서로 감사하며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회상합니다. <27~28쪽>
이쯤에서 발칙한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요? 효도라는 콘셉트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콘셉트이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동물에게 자식을 돌보는 본능은 존재하나 부모를 돌보는 본능을 가진 동물은 지구상에 단 한 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효도는 인간 사회에서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지고 세뇌시킨 콘셉트입니다.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콘셉트입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존재합니다. 내 부모가 나에게 베푼 사랑을 내가 내 자식에게 베푸는 것이 맞는 거지요. 효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으로 하지만 부모에 대한 효도는 도리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죄책감이라는 부적절한 감정이 따라오기에 과한 효도는 인간의 삶을 힘들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65쪽>
그래서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자기 연민의 축과 자기 비난의 축은 자기 비하와 자기혐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T 씨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이상적이고 개념적인 자아 탐색 과정을 그만둬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나 자체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들과 진정한 관계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타인 지향적인 명제가 아니라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질문에 답하고 그 답을 찾아 매 순간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나답게 살 때 타인과 진정한 만남이 시작되고, 오롯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5쪽>
그래서 우리는 이를 악물고 나의 상처받은 내면 속 아이를 타인 앞에서 끄집어내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 모두는 위대한 슈퍼 서바이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평범한 서바이버가 될 수는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희생자나 피해자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말고 서바이버의 이름표를 붙이도록 노력합시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나 자신의 삶을 열심히 지켜낸 모든 서바이버들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141쪽>
그러나 양가감정을 가진 대상과 양가감정을 일으키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계속 주판알을 튕기면서 계산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솔직하지 못한 결론을 따라가며 자신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타인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진정성도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타인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가치, 그리고 소소하게는 지금 여기서의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성을 가지고 나 자신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관계 또한 진정 의미 있는 관계가 되고, 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처럼 타인과의 진짜 관계는 나와의 진짜 관계의 다른 이름입니다. <300쪽>
[정리=이세인 기자]
『아무리 잘해줘도 당신 곁에 남지 않는다』
전미경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332쪽|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