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간 청년, 두 개의 메달을 얻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간 청년, 두 개의 메달을 얻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4.04.0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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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마을주민분이 승마장에 계신 분들에게 나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가고 있는 청년’
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오면서 나에게 붙은 수식어였다.
“니 사차원이네”
하긴 정상인 사람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릴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 나도 내가 사차원임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493km, 미친 달리기』 中

코미디일까, 감동 다큐일까, 서바이벌일까. 장르를 알 수 없는 이 장면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가는 이야기 속 한 장면이다. 청년은 꼬박 9일에 걸쳐 장장 493km를 달렸다. 하루 최소 거리는 32km, 하루 최대 거리는 100km, 하나같이 믿기지 않는 숫자들이다.

달리기 국토종주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청년은 두 번째 마라톤을 시작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감명받아 코르테즈를 신고 무작정 달렸던 그날 밤처럼, 일단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전혀 배워본 적 없는 분야라는 건 달리기와 글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6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그에겐 두 개의 메달이 생겼다. 9일 만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운동화와 9일 간의 기억을 더듬어 써 내려간 한 권의 책.

지난달 29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간 청년’ 장현식 씨를 만났다.

『493km, 미친 달리기』 저자 장현식 [사진=안경선 기자]
『493km, 미친 달리기』 저자 장현식 [사진=안경선 기자]

Q. 책 『493km, 미친 달리기』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왜 500km가 아니라 7km 모자란 493km일까’였어요.

친구들도 그 얘기 많이 했어요. 좀 돌아가서 깔끔하게 500km 채우지 그랬냐고요.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요. 실제 달린 거리가 493km인 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그 당시엔 그런 걸 생각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어요. 책을 내게 될지도 몰랐고요. 그렇지만 500km, 저도 살짝 아쉬웠습니다. (웃음)

Q. 책이 정말 생생해요. 마치 제가 뛰는 것처럼 풍경이 선명히 그려지고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총 9일 동안 뛰었는데, 그날그날 바로 콘텐츠 정리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자기 전에 휴대폰으로 일기를 썼어요. 달리기를 떠나서 평소에 일기를 쓰기도 하고요.

Q. 하루 평균 54.81km를 뛰고, 숙소에서 체크인, 샤워, 빨래,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콘텐츠 정리까지 다 하셨다고요?

사실 그게 달리기보다 더 힘들었어요. (웃음) 달리기 외에 나머지 일을 늦게 하면 자는 시간도 줄어들어 몸의 회복도 느려지잖아요. 그렇게 되면 다음 날 달리기에 영향을 미치니까 모든 과정을 군인처럼 딱딱 들어맞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Q. 이 책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신 건가요?

글로 남기지 않으면 언젠가 이 기억을 잃어버릴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종주 끝나고 일주일 뒤에 바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과 주소를 보며 기억을 떠올리고, 그날그날 써뒀던 일기를 기반으로 확장시켰어요. 쉼 없이 다시 달리니까 마치 두 번의 마라톤을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책이 저에게 왔을 때 드디어 ‘미친 달리기’ 프로젝트가 진짜 끝난 기분이 들어서 정말 후련했습니다.

[사진=안경선 기자]
『493km, 미친 달리기』 [사진=안경선 기자]

Q. 인스타그램에 ‘미친 달리기’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혹시 달리기로 국토종주를 해보신 분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글을 남기셨어요.

2023년 4월쯤에 사무실에 앉아 지도를 보는데 문득 ‘내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 뒤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뛰어가는 제 모습을 계속 상상하다가, 그 상상을 실행에 옮겨보기로 결심하고 그 글을 올렸어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해봤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달려서 해봤다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친구들은 ‘네가 달리기 좋아하는 거 아는데 이건 진짜 말이 안 된다’라면서 말렸어요.

Q. 도전을 응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서운하지는 않았나요?

주변 사람들이 왜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돼서 서운한 건 없었어요. 솔직히 저도 확신이 없었거든요. 지금까지 시도한 사람이 없었잖아요. 짧은 시간 안에 긴 거리를 달려야 하기도 했고요. 오히려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Q. 도착지를 부산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광안리 해수욕장에 있는 한 벤치를 도착 지점으로 정했는데요.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고 부산에 갈 때마다 항상 좋은 일이 생겨서 부산으로 정했어요. 국토종주에서 남쪽의 상징적인 지역이 부산이기도 하고요.

Q. 도착 지점에 딱 도착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조금 격양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덤덤했어요. 마지막 날에 100km를 뛰어서 그런지 감정 장치가 고장 난 것 같았어요. 광안리 해수욕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숙소에 들어가서 그냥 잤어요.

Q. 책에 “오후 6시 40분, 지금부터 풀코스 1번 더”라는 구절이 나와요. 마지막 날에만 100km를 달리셨는데, 원래 이틀에 나눠 뛰실 계획이었던 거죠?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8일 동안 53~55km씩 뛰었잖아요. 그런데 마지막 날 아침 7~8시에 창녕에서 일어났는데 하나도 안 힘든 거예요. 통증에 적응이 된 건지 모르겠는데 몸이 가벼웠어요. 그래서 어두울 때는 뛰지 않겠다는 스스로 정한 금기 사항을 깨고 밤 11시 45분~50분까지 달렸어요. 마지막 날 제목을 ‘유난한 하루’라고 붙였는데, 그 제목처럼 보통날과는 달랐어요.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요. 달리기는 역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Q. ‘미친 달리기’ 프로젝트를 성공했을 때 주변 사람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인스타그램으로 저를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누적 거리 53~55km씩 찍다가 마지막 날에 100km를 터트리니까 반응이 더 뜨거웠던 것 같아요. 자고 일어났더니 DM이 100개 가까이 와 있었어요. 9일 동안의 고통을 다 보상 받는 기분이었어요. 또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제가 직접 보여줬다는 것이 뿌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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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km, 미친 달리기』 저자 장현식 [사진=안경선 기자]

Q. 더위, 트럭, 뱀, 갈증, 허기, 어둠, 야산 등 종주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이 중 가장 위협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여름 아니면 이거 할 만한 것 같거든요. 다른 사람이 저처럼 이 프로젝트에 도전한다고 하면 옆에서 도와 줄 의향이 있어요. 그런데 여름은 추천 안 할 것 같아요. 여름을 피하려고 9월 초에 했는데, 작년에 9월 초가 가장 더웠어요. 폭염주의보 내린 날에 뛰려니 진짜 힘들었어요.

그리고 들개가 무서웠어요. 뱀은 제가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개는 한 번 물리면 종주 끝이잖아요. 사납게 짖으며 쫓아올 땐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어요. 쫓아내려고 삼각대를 바닥에 탁탁 치면서 겁주면서 뛰었어요. 시골에 들개가 은근히 많더라고요. 제주도 일주하시는 분들께서 제주도에도 들개가 많다고 물리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Q. 그런데도 안전한 자전거 길만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전거길은 쭉 이어져 있어서 지루할 것 같았어요. 저는 달리기를 여행처럼 하고 싶었거든요. 달리기 중간에 시골 마을도 구경하고 싶고 사람 냄새도 맡고 싶었어요.

제가 장거리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천천히 달려도 되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42.195km나 그 이하를 달리면 제한 시간 내에 기록을 내야 하기 때문에 빨리 달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반대로 42.195km 이상의 장거리 달리기는 빨리 달리면 안 돼요. 멀리 가야 하니까요. 가끔은 일부러 천천히 달리는 것이 빨리 달리는 것보다 어려울 때도 있어요. 천천히 가도 끝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Q.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상상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달리기 훈련도 많이 했는데 이미지 트레이닝도 못지않게 많이 했어요. 뛰어가는 모습이나 도착했을 때 모습을 많이 떠올렸어요.

달리는 중에는 저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이것도 못 하면 다른 것도 포기한다’, ‘느려도 되니까 끝까지 가보자’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했어요. 너무 더울 땐 이 모든 과정이 제가 나가고 싶은 사막 마라톤을 위한 훈련의 일부라고 되뇌었어요.

Q. 왜 하필 미친 ‘달리기’였는지 궁금해요. 달리기의 어떤 점에 매료되셨나요?

달리기는 겉으로 보면 격한 운동이잖아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명상과 비슷해요. 혼자 달리다 보면 기분 좋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솟구쳐요. 그런데 오랜 시간 달리다 보면 그 감정들이 싹 정리돼요. 엉켜있던 생각도 풀어지고요. 저 자신에 집중할 수 있고, 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기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마다 미칠 수 있는 분야가 다르니까요. 저에게 그건 달리기였을 뿐이에요.

Q. 책 안에 환희, 고통, 공포, 외로움, 지루함, 감사함 등 온갖 감정이 담겨있어요.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게 가장 컸어요. 이걸 하면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제가 협찬을 받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나는 왜 오직 내 의지에 의해 달리고 있는지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매일 50km씩 달리다 보니까 정신도 혼미해지고 방향 감각도 잃어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만족스러웠어요. 그래서 계속 달렸던 것 같아요.

『493km, 미친 달리기』 저자 장현식 [사진=안경선 기자]
『493km, 미친 달리기』 저자 장현식 [사진=안경선 기자]

Q. 앞으로 참가할 예정인 대회나 기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올해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100마일 코스에 도전해요. UTMB는 트레일 러너들의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데요. 프랑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거쳐 유럽 알프스산맥을 달릴 수 있어요. 세계적인 대회인 만큼 참가하려는 사람이 많아 경쟁률이 높은데 운 좋게 당첨됐어요.

두 번째 ‘미친 달리기’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해외로 나가 프랑스에서 벨기에까지 뛰어 가보려고 해요. 국경을 넘어야 하니 여권을 가지고 뛰어야겠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기와 거리는 비슷하지만, 훨씬 더 위험할 것 같아요. 한국에는 편의점, 숙소가 많지만, 유럽에는 이런 시설이 많이 없어서 성당에서 자야 할 수도 있대요.

Q. 주변에 ‘미친 달리기’ 프로젝트를 따라 한 사람도 있었나요?

저의 인스타그램을 본 미국 인플루언서가 제가 뛴 길을 따라 뛰고 싶다고 연락했었어요. 나중에 보니 10일 동안 진짜 뛰셨더라고요. 제 주변에도 ‘미친 달리기’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사람이 4~5명 정도 있어요.

Q. ‘미친 달리기’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책에 안 썼는지 모르겠는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감동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달리기로 국토종주를 한다고 올렸을 때 일면식도 없는 어떤 분께서 세븐일레븐 기프티콘 10만 원권을 보내주신 거예요. 너무 죄송해서 이거 못 받는다고 하니까 ‘제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해 본 사람인데 이거 꼭 필요할 거다’라고 하셨어요. 달리다 보니 왜 그 많은 편의점 중에 세븐일레븐으로 주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실제로 종주 길에 세븐일레븐과 하나로마트가 가장 많았어요.

아직도 그분을 뵙지 못했는데, 저도 그분처럼 누군가의 멋진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달리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미친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이니 어디가 좋고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챙겨가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잖아요.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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