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교육청 부교육감 시절, 2년 반 동안 거의 매 주말마다 가족들을 보러 집에 갔어요. 2시간 10분씩 울산과 수서를 오가는 SRT를 탔는데, ‘나는 최고급 독서실에 다닌다’라고 생각하며 한숨도 안 자고 책에 빠져들었어요. 아예 독서대까지 가지고 다녔어요. 열차 선반이 낮아서 불편했는데, 가방을 놓고 그 위에 독서대를 놓으니 눈높이가 딱 맞는 거예요. 그 시간들이 참 좋았죠.”
국립국제교육원 류혜숙 원장은 다이어리와 만년필을 앞에 두고 정갈하게 앉아 전투적으로 책을 읽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은 현재까지 이어져 국립국제교육원을 ‘책 읽는 직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다. 취임 직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리모델링이었다. 1층에 있는 ‘NIIED BOOK CAFE’와 ‘글로벌 라운지’, 옥외에 있는 ‘책 읽는 정원’ 등 청사 곳곳에 독서와 사색을 위한 공간을 조성했다. 그리고 2023년, ‘독서경영 우수직장’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3일 류혜숙 원장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국립국제교육원을 소개해 주세요.
우리 원은 1962년 설립 이후 60년간 국제교육협력 대표기관으로서 국제교육교류를 통한 글로벌 인재 양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소속기관입니다. 현재 총 150여명의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요 사업 중 해외 인재의 전략적 유치와 학업을 지원하는 In-Bound 사업으로는 온‧오프라인 한국 유학박람회를 개최하고 온라인 유학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학생 유치·지원 사업, 해외 우수 인재들을 선발하여 국내 대학(원)에서 학위과정 이수를 지원하는 국제장학프로그램인 정부초청외국인장학사업(GKS: Global Korea Scholarship), 외국인의 국내 유학, 취업, 체류자격 취득 등에 활용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이 있습니다.
아울러 국내 인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Out-Bound 사업으로는 국비유학생 선발·파견 사업, 미국에서의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 한·미 대학생 연수(WEST: Work, English, Study, Travel), 상호 교류를 통해 학생과 교원의 양국 간 이해를 높이는 한‧중, 한‧일 교육 교류 사업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우수한 교원을 파견하여 ODA 국가의 기초교육 향상을 지원하는 교원 해외 파견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래세대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글로벌역량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영어·중국어 원어민 보조교사를 초·중등학교에 선발‧배치하고 있으며, 특수외국어교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Q. 국립국제교육원 주요 사업의 성과는 무엇인가요?
우리 원은 국제교류 업무를 하는 기관으로서 글로벌 트렌드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지속적인 혁신을 이뤄내 왔습니다.
먼저 고등교육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외 우수인력의 국내 유입 기반 마련을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유학박람회를 개최하였습니다. 2023년 6월, 처음으로 지자체, 지역 대학들과 협력해 개최한 지역 특화 온라인 박람회에는 무려 122개국의 41만여 명이 찾기도 했고, 코로나 엔데믹 시대인 만큼 오프라인으로도 각국의 재외공관, 한국교육원과 협업해 꾸준히 유학박람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초청외국인장학사업(GKS)은 매년 신규 선발 장학생 규모를 확대하여 2023년에는 1,334명, 올해는 2,400명으로 대폭 증가해 신규 선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 유학생활 이후 GKS 동문들이 문화·경제·교육 등 다방면에서 본국과 우리나라의 가교(架橋)가 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K-컬처 확산에 따라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확대·운영하고,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터넷 기반 시험(IBT)을 도입하여 시험 응시 기회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토픽 홈테스트 서비스도 준비 중입니다.
Q. 국립국제교육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2023년 독서경영 우수직장’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독서경영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직문화는 조직운영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공공, 민간조직 구분 없이 조직문화 형성에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를 조직 운영에 활용할 수 있는 독서경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예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독서경영 우수직장 인증제‘의 인증기관이 2014년 20개 기관에서 2023년 206개 기관으로 대폭 증가한 것만 보더라도 그 관심도가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2016~2019년까지 울산시교육청 부교육감으로 재직할 당시 독서중심 교육과 소통 행정을 강조하며, ‘사람책 도서관 운영’, ‘울산학생 책읽는데이~’, ‘나만의 책이야기 토크 콘서트’ 등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독서를 통한 소통문화 형성에 노력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2022년 10월 국립국제교육원 원장으로 취임 후 독서를 매개로 토론과 의견공유를 활성화하고 구성원 간 교류와 소통을 제고할 수 있는 ‘북택트(Book-tact)’ 조직문화를 형성하고자 독서경영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Q. 국립국제교육원만의 독서경영은 무엇인가요?
우리 원은 ‘독서를 기반으로 성장·발전하는 조직 운영’이라는 비전 아래 ‘전 직원이 독서를 통해 소통하는 조직문화 확립’의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서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독서환경 기반 조성, 책 읽는 조직문화 확산, 독서경영 인재개발 및 역량강화 총 세 가지 단계적 전략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세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였습니다.
먼저, 기관 내 독서환경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청사 공간혁신의 일환으로 ‘NIIED BOOK CAFE’, ‘글로벌 라운지’를 구축하고, 기관 옥외정원을 활용하여 책을 읽거나 휴게할 수 있는 ‘책 읽는 정원’을 조성하는 등 내부 직원 및 외부 방문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독서 공간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전략으로 책 읽는 조직문화를 확산・지원하고자 하였습니다. 독서경영의 마중물 역할을 위해 독서토론 모임(NBC(NiiedBookClub))을 수시・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매주 실시하는 월요정책회의(임원회의)에서 동료 직원들에게 소개하고 관련 내용에 대해 기관장, 임원과 소통하는 ‘NIIED의 서재’를 통해 책을 읽고 함께 공유하는 소통문화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직원 독서관리 프로그램인 ‘북러닝’은 자발적인 독서학습 동기를 직원들에게 부여하였고, 양서(良書)의 한 구절을 선정하여 청사 안내판(현수막)에 게시하는 ‘NIIED 글판’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와 함께 공유하는 등 독서문화 확산 콘텐츠를 개발‧운영하였습니다.
마지막 전략으로 독서경영 인재개발 및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기관 내 독서경영을 이끌어 갈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독서경영 지도사’ 자격취득을 지원하고, 외부초청 ‘북 퍼실리에이터’를 활용하여 독서 방법 교육, 내부 독서 프로그램 컨설팅을 통해 직원들의 역량 개발을 도모하는 등 전문성 강화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독서경영 후 기업 내부 문화는 어떻게 변했나요?
청사에 들어오면서부터 ‘글로벌 라운지’, ‘NIIED BOOK CAFE’ 등 환경에서 느낄 수 있듯이 책 읽는 조직문화 확산을 통해 ‘독서경영’을 추진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 직원들이 ‘독서경영’이라는 말을 접했을 때 막연히 ‘독서를 많이 해야 하는구나, 회사에서까지 책을 읽어야 해?’라는 분위기였으나 책 읽은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고 ‘독서토론(NBC) 동아리’, ‘NIIED의 서재’, ‘NIIED글판’ 등 직원들이 직접 독서를 통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와 가까워지고, 또 각자 읽었던 책을 소재로 토론을 하거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소통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NIIED의 서재’에서 다뤘던 도서나, ‘북러닝’ 프로그램 운영으로 개인이 구매하여 읽었던 책들을 ‘NIIED BOOK CAFE’에 기증・비치함으로써 본인만 읽어 본 책이 아니라 직원 모두가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독서문화가 크게 확산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은 ‘독서를 기반으로 성장・발전하는 조직 운영’이라는 비전과 ‘전 직원이 독서를 통해 소통하는 조직문화 확립’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독서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기업이나 공공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구성원의 지식과 정보의 활용 능력은 조직발전의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직원 개개인의 분석력·응용력 등의 역량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량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개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독서이며, 독서를 통해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이를 사고함으로써 문제 해결력·창의력·통찰력 등의 다양한 사고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개발한 역량을 발휘하여 구성원들이 소통하고, 생각을 나눔으로써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기에 많은 기업이나 공공조직 등에서 독서경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독서경영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고민하는 조직에 조언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서경영은 직원 개개인의 독서활동이 밑거름이 되어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기에, 직원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독서경영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할 수 있는 분위기, 환경 등을 단계적으로 조성하고, 조직 내 독서모임 등 책 읽기를 통해 동료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활성화한다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독서를 접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등 자연스러운 ‘북택트(Book-tact)’ 문화가 형성될 것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창조된 정보·아이디어를 업무·조직운영 등에 적용하여, 독서경영의 발전 단계로 나아가 조직발전과 문화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Q. 원장님의 독서 생활과 취향이 궁금합니다. 독서신문 독자를 위해 책을 추천해 주세요.
여학생 기숙사에서 햇볕 좋은 주말을 홀로 보내야 했던 지방 출신 대학생이 탐독했던 책들은 『지리산』, 『장길산』, 『태백산맥』, 『삼국지』 등 이었습니다. 작가로는 당시 유명세가 컸던 이문열, 황석영, 이청준 등의 작품들은 무엇이든 찾아서 읽었습니다.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총 32권은 30대 후반쯤에 감명 깊게 읽었고 이에 더하여 박완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토 에코, 무라카미 하루키 등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책들도 꾸준히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울산 부교육감으로 재직하면서 ‘책 읽는 학생, 책 읽는 울산!’이라는 비전을 선포하고 ‘나부터 책 읽기’를 실천하였는데 그때 이후 더욱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울산-수서역을 오가는 SRT 안에서 2시간 10여분 동안 내게 주어졌던 소중한 시간들에 감사하며,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괴테, 빅토르 위고, 헤르만 헤세, 제인 오스틴, 헤밍웨이, 조지 오웰,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가브리엘 마르케스, 이사벨 아옌데, 밀란 쿤데라,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벡, 가즈오 이시구로, 박경리 등 모두 다 나열하기 어려운 세계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에 열광했습니다. 신영복, 김영하, 한강 작가의 작품은 전작주의로 거의 13~15권의 책을 한꺼번에 구입해서 정주행 탐독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김금희, 김초엽, 정세랑, 최은영, 김숨, 황정은, 김애란, 편혜영 등 신예 작가들의 책들도 좋았습니다.
특히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누구나 아는 장발장 이야기이고 영화나 뮤지컬로도 보았지만, 책을 통해 그 한 줄 한 줄을 읽어낼 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때론 숙연하리만큼 뭉클한 순간들과 함께 역사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 그 본래 모습과 그들 속에 흐르는 감정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거장의 필치에 큰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만상(萬象), 거의 모든 인간상이 다 펼쳐지고 드러나지만, 줄곧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진실한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19세기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 내 삶이 좀 힘겹다 싶을 땐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고, 두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고민이 많을 땐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같은 암울한 시기에 『페스트』를 읽으며 실낱같은 희망을 보기도 했고, 죽음이라는 과정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삶을 통찰하게 된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여자보다도 더 여자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보며 허식을 벗어던진 클래식한 사랑을 그려놓은 걸작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또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그 존엄성을 성찰해 보게 되는 『소년이 온다』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추천드립니다.
좋은 책을 만나는 방법으로는 북클럽 활동을 권해드립니다. 북클럽에서 선정하는 책들은 적어도 여러 명의 의견을 모아 추천되므로 늘 양서(良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지금 세 개의 북클럽 활동을 하고 있는데 두 개는 온라인 미팅이고 하나는 매월 1회씩 오프라인 미팅입니다. 대개 문학과 비문학을 교대로 선정해서 읽는데, 저의 한정된 독서 취향에만 매몰되지 않고 두루두루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어서 특히 좋았습니다. 또한, 북클럽 멤버들이 개별적으로 읽으면서 공유하는 책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국내‧외 문학상 수상 작품을 두루 구해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할 지하철 정거장을 수도 없이 놓쳐본 기분 좋은 몰입! 책 읽기는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한 가장 좋은 친구이며 마르지 않는 자양분입니다.
Q. 국립국제교육원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요?
우리 원은 ‘세계와 소통하며 글로벌 교육을 선도하는 국제교육협력 대표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여 지원하고 국내 인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특히,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학업을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취업·정주까지도 적극 지원하여 ‘유치-학업-취업·정주’의 유학 단계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또한, 국내 인재들이 국제교류 등을 통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도 교육청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운영하여 초중등 글로벌 교육교류·협력의 허브기관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