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중앙도서관에는 특별한 책 꾸러미가 있다. 이 꾸러미는 <꿈과 함께 도서배달> 서비스를 통해 다문화가정, 장애아동, 저소득층가정,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그룹홈 등 취약계층에 속한 어린이에게 전달된다. <꿈과 함께 도서배달>은 평소 도서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가정에 직접 찾아가 맞춤별 도서와 희망도서를 배달하고, 책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다.
이 사업의 근간에는 “도서관 자료가 잘 알려지고 많이 활용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공정자 안성시 도서관과 과장의 철학이 있었다. 그는 지난달 15일 독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책이 그저 서가에 꽂혀 있기보다는 이용자들의 손때가 묻었으면 좋겠어요. 찾아가는 책 배달과 책 읽어주기 사업을 추진한 것도 이러한 마음에서였어요”라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꿈과 함께 도서배달> 사업이 시작된 것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교육격차가 심각해지던 시기였다.
“코로나 때 많은 도서관이 문을 닫았잖아요. 그때 일자리경제과에서 기간제 사업으로 책 배달 사업을 제안했어요. 3개월 동안 책 배달을 했는데 단기간에 끝내기엔 아쉬운 아이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로나 시기가 끝나도 부모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취약계층은 여전히 도서관에 오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경기도 일자리 정책 마켓에 공모했고, 3년 동안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책 꾸러미의 자료를 직접 선정했으며 기간제 활동 선생님에게 책 읽어주기, 도서관을 활용하여 좋은 책 고르는 법 등을 교육했다.
“일자리 사업으로 채용된 선생님들이 도서관에 출근해 책 꾸러미를 가져가 아이에게 전달해 주세요. 만약 어린이가 자동차 같은 기계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 관련된 책을 자료실에서 골라 가시고요. 저희가 선정한 책 외에도 아이의 흥미와 관심사에 맞는 책을 배달하는 식인 거죠”
그렇다면 책 배달과 책 읽어주기는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어요.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이였는데, 이 아이의 담당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첫 방문 때까지만 해도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엄청 산만했대요. 저희가 이 사업을 한 아이당 최대 3년까지 진행하거든요. 그런데 1년 차가 되니까 아이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하셨어요. 숨겨진 원석을 뒤늦게 발견한 기분이었다고요. 이게 다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만약 더 빨리 이 원석을 발견했다면 이 아이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요?”
<꿈과 함께 도서배달> 사업의 성과를 인정받아 공정자 안성시 도서관과 과장은 ‘2023년 제29회 독서문화진흥유공 정부 포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독서문화진흥유공 정부 포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독서문화 진흥 활동과 독서문화 환경조성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렇듯 지식 정보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책 배달 및 책 읽어주기는 안성시 중앙도서관이 자신 있는 분야다. 작년엔 어린이를 넘어 어르신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각 마을의 독거노인이나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사업을 해요. 어르신 댁을 찾아가 건강을 체크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계시는지 살펴보는데, 이때 저희가 그분들에게 맞는 그림책 80권을 선정해서 책 꾸러미를 가져갔어요.”
책 꾸러미를 가져갔더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대화가 풍부해진 것이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어르신을 뵈면 ‘잘 지내셨어요? 밥은 드셨어요? 이번 주에 건강은 어떠셨어요?’와 같은 형식적인 말을 주로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책을 가져간 뒤로부터는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어요. 한 번은 『새색시』라는 그림책을 읽고 오시더니 어르신이 결혼했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예요.”
안성시 도서관은 ‘1면 1도서관’ 건립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최근 양성면, 미양면, 원곡면 청사에 작은 도서관을 차례로 개관했다.
“면에는 농가, 축산 농가, 과수원들이 많은데, 이곳에 오랫동안 사셨던 분들은 책이 없어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아오신 분들이에요. 지금까지 도서관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으니 이제 와서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도서관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스스로 오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렇지 않은 분들을 도서관에 오게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다 면 단위 도서관을 운영하게 되면서 비독자를 독자로 만들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재작년에 면민 체육대회가 있었어요. 8월이어서 더웠는데, 면 도서관을 홍보하기 위해 부스를 열어서 부채를 나눠줬어요. 면장님께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됐어요. 이렇게 하면 취약 계층 어린이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늦게라도 어르신 중에서 원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득 사서 실무 시절부터 안성시에 있는 모든 도서관을 지휘하고 있는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동안 책과 도서관을 꾸려오고 있는 공정자 과장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그림책도 되냐고 물으며 바버러 쿠니의 『미스 럼피우스』라고 말했다.
“주인공 미스 럼피우스는 어린 시절 꿈꿨던 대로 세상을 여행하고 바닷가에 살 집을 지어요. 그러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아요. 바닷가에 있는 집에서 이미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다가, 루핀꽃이 핀 언덕을 보며 자신이 할 일을 깨닫죠.”
아름다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미스 럼피우스가 곳곳에 씨를 뿌리자, 온 마을이 꽃으로 뒤덮인다. 미스 럼피우스가 꽃을 심었듯, 오늘도 공정자 과장은 안성시 구석구석에 책을 배달한다. 그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니 대화의 꽃이 활짝 피어있다. 아름다운 관계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우리 사이에 책이 있다면.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