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4월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현대사만 생각해도 4월은 여러 아픔의 단어들로 소환되는 사건들과 맞닿아 있다.
도서관 사서들에게 4월은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달이다. 바로 ‘도서관주간(4.12~18)’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슬프고도 잔인한 달 4월에 하필 도서관주간이라니...’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왜 독서의 달은 9월, 독서주간은 4월로 정했는지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 도서관의 효시가 ‘영혼의 치유소’임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가장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 도서관주간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곧 있을 2024년의 도서관 주간은 올해로 벌써 60주년을 맞게 된다. 벌써 환갑에 이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주간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아마 극히 소수에 그칠 것이다. 그만큼 효과적으로 홍보하지 못한 책임이 도서관계에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도서관의 현실이기도 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서관의 역할이 많이 달라지고 문화자본으로서의 도서관을 활용하며 정보제공, 문화교육, 공동체적 기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첨단 IT 서비스에 이르기 까지 매우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시민군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공부방 기능의 도서관 시절에 머문 오해와 편견의 시민군 사이에서 극한의 냉온탕을 경험하기도 한다. 30여년 넘게 도서관 현장의 사서로 근무하면서 그 둘 중 더욱더 절망스러운 것은 당연히 도서관에 대한 해묵은 편견을 접할 때이다.
“도서관에서 일하시면 한가하시겠네요. 책 많이 보시겠네요. 도서관? 애들 공부나 하러 가는 곳 아닌가요?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나 한가한 사람들이 가는 곳 아닌가요? 돈도 한 푼 못 벌어들이면서 예산이나 낭비하는 곳 아닌가요?...”
공공도서관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제공되었던 지적 정보를 누구나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시민 스스로 자각과 각성을 통해 쟁취해낸 민주주의의 꽃이다. 따라서 도서관은 당연히 돈을 벌어오는 곳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투여하여 가진 자에게나, 못 가진 자에게나, 배운 자에게나 못 배운 자에게나, 여성이나 남성, 아이나 노인, 그 누구도 차별과 장애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향상해야 마땅한 곳이다. 도서관을 무료로 개방하고 야간이나 주말에도 문을 여는 이유도 도서관이 이런 민주주의의 가치를 대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화와 정보가 그 자체로서 자원이 되는 시대에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도서관을 가는 것이 한 사람이 사회적 배제, 실업 가난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되도록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도서관인 것이다.
이제 공공도서관은 아이들이 공부나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동네에서 이웃을 만나고 연결과 소통을 경험하는 만남의 광장이자 연결의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제3의 공간이자 마음을 돌보는 ‘쉼’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서들은 결코 한가하지 않다. 시민 정보서비스와 독서증진, 평생학습 커리큘럼 개발, 지역사회 공동체 공간 조성 등 절실한 시대적 요구 앞에서 녹록치 않은 현실만을 탓하기에는 도서관의 역할이 너무 막중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답을 찾는 사람들의 창조적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그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서들 스스로의 단련과 자기성찰도 물론 필요하다. 도서관의 부족한 인력과 예산, 사회적 인식만을 탓해서는 결코 도서관에 대한 해묵은 편견과 오해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월 도서관 주간은 더 많은 시민들을 향한 도서관의 ‘말 걸기’이다. 완전한 관대함이자 무한한 우주인 도서관에서 마음을 돌보며 마음껏 치유하라고 부르는 환대의 손짓이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키워온 운명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냐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공도서관 현장의 사서로서 느끼는 막중한 책임감만큼이나 간절히 도서관을 태동시키고 지켜온 민주주의 주체로서의 시민들의 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갈구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도서관에 모여 다가오는 4월의 도서관 주간을 축제의 마당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