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에서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소감을 올린 동영상을 우연히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카페에서 휴대폰이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훔쳐 가지 않는다고 신기해하며 감탄합니다. 심지어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그런 영상들을 보고 믿을 수 없다며 실제로 한국인들의 양심을 시험해 보는 영상마저 올리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외국인들이 놀라는 사례가 또 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모든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무인 판매 시대를 앞당겼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가 터진 후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과자 판매점, 무인 커피점 등 무인 점포가 우후죽순 생겨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편의점이나 가게 앞에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나라에서는 가게 밖에 내놓은 제품들을 다 훔쳐 갈 것이라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우리는 일상처럼 당연한 듯 지나치지만 낯선 이방인에게는 신기한 일인가 봅니다. 물건을 훔치는 절도 사건들이 심심찮게 벌어져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서로 믿고 함께 살아가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자본의 차이다.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995년 발표한 책 『트러스트(Trust)』에서 국가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신뢰'를 지목했습니다. 한 국가의 미래와 경쟁력은 그 사회가 가진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이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한국을 이탈리아, 프랑스와 함께 저신뢰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혈연이나 지연과 같은 태생적 신뢰가 아니라 사회 공통의 규범을 바탕으로 서로 믿고 존중하며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하는 신뢰가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후쿠야마 교수는 2020년 팬데믹 체제에서 지도자와 정부, 국민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극복한 나라로 독일과 한국을 꼽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반세기가 지난 시점에 그는 과연 한국을 저신뢰 사회에서 고신뢰 사회로 격상한 것일까요?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인 운크타드(UNCTAD)는 만장일치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했습니다. 명실공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 자산을 낮게 평가한 충격적 결과도 있습니다. 2021년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 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교육, 보건, 개인의 자유, 경제의 질, 투자 환경, 기업 여건 등이 고루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개인과 개인의 신뢰, 국가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부문에서는 전체 167개국 중 147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가봉, 콩고, 페루 등 개발도상국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아직도 저신뢰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선진국 수준에 맞게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정부와 국민 모두 법과 제도를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여전히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와 부조리도 철저히 근절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아주 흥미로운 취업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함께 일했던 부하직원이 어느 중소기업에 대표이사의 최종 면접도 없이 부사장 면접에서 합격하여 이직했다는 뜻밖의 소식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표이사가 그 부하직원의 평판 조회를 했는데 너무 좋은 평가와 함께 적극적으로 채용을 권유하는 바람에 굳이 면접을 볼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면접자의 얼굴도 직접 보지 않고 채용하기로 마음먹은 대표이사의 용기와 결단도 대단합니다. 아무리 평판 조회 결과가 좋아도 부사장의 면접만으로 최종 합격을 통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평판 조회에 응답한 분도 필자가 잘 아는 지인이었습니다. 만약 필자에게 똑같이 평판 조회를 부탁했다면 역량과 능력, 경험과 스킬, 자질과 태도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인재이니 무조건 뽑으라고 강력하게 추천했을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신뢰자본의 차이를 강조한 후쿠야마 교수의 말처럼 개인에 대한 신뢰자본도 무척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평판이 자신의 신뢰자본이 되며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나’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직장인, 특히 리더급이라면 평판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 작가 소개
조환묵
(주)투비파트너즈 대표이사 & 헤드헌터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IT 벤처기업 창업, 외식프랜차이즈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 헤드헌팅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헤드헌터로 일하면서 터득한 직장인의 경력관리와
이직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서로는 『당신만 몰랐던 식당 성공의 비밀』과 『직장인 3분 지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