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퉁. 트럭이 왼쪽에서 내 몸을 치었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졌다. 힘없이 자전거에서 나가떨어지며 앞으로 굴렀다. 구르면서 살벌하게 깨져 있는 아스팔트와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내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고 결국 내 몸을 덮쳤다. (…) 자전거가 트럭 뒷바퀴에 말려 들어간 후에야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트럭이 멈추었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일까? 아직 죽지 않은 뇌가 감각기관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해석하고 있는 것뿐일까? <18~19쪽>
이제 다리가 하나 없는 것은 나의 특징이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다시 다리가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루한 고통 속에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병상에 마주앉아 어머니와 점심을 먹던 나는 문득 말을 꺼냈다. “엄마, 그러고 보니까 저 무지외반증이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무지외반증이 있었어? 어디 봐.” “아니, 이제 없다고요.” 황당해하는 표정과 함께 어머니가 풋, 웃음을 지었다. 사고 후 처음으로 보는 웃음이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없이 밥만 먹던 무거운 분위기가 한번에 환기되었다. 성공적이었다. 이로써 나의 암살 개그는 계속되었다. <57~58쪽>
나는 스스로를 최대한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의족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절단장애인과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절단장애인도 이렇게 잘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겠다. 온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좋은 의족보행을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아가 절단환자들이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어야겠다. 세상에 나를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올림픽에 나가자. 자전거 선수가 되어서 올림픽 무대에서 달려야겠다. <193~194쪽>
내 사고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가해자를 악마화했지만 내 머릿속에 그런 악마는 없었다. 가해자를 악마로 만든다고 해서 내게 돌아오는 것도 없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곱씹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그때 몇 초만 비껴 지나갈걸, 그날 자전거로 퇴근하지 말걸, 처음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하지 말걸, 애초에 자전거라는 걸 시작하지도 말걸 하면서 후회해봤자,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결과만 낳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자기혐오의 수렁으로 뛰어드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나는 그냥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251쪽>
나는 이제 다리 하나로 살아간다. 다리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 다리 두 개로 살아가는 것에 비해 절반만큼의 재미를 주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보너스로 얻은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보다 더 섬세하게 행복을 느끼고, 함께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더 멋진 일들을 해내고, 무엇이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지 또렷하게 아는 채로 살아간다. 그렇게 한 개뿐인 내 다리에는 한계가 없다. <255쪽>
[정리=한주희 기자]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박찬종 지음 | 현대지성 펴냄 | 296쪽 | 16,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