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잘하면 될 줄 알았지...책 『공정하다는 착각』
나만 잘하면 될 줄 알았지...책 『공정하다는 착각』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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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0명 중 4명 “부모 찬스 없이 성공 어려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부모의 지원이 없이도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물음에 우리나라 청년 5명 가운데 1명만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은 청년은 응답자의 42.7%로, 동의한 청년 비율(23%)의 두 배에 달한다. 특히 부모 소득 수준이 ‘낮은 편’인 청년의 경우 절반 이상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이 사회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고 그 능력에 의해 부와 권력을 쥐게 되는 능력주의 사회다. 그리고 이 밑바탕에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부를 비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껏 정의로워 보이는 이 말 속엔 허점이 보인다.

책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는 능력주의하에서 굳어진 ‘성공과 실패에 대한 태도’가 현대사회에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공평한 기회 제공과 능력 발휘의 보장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통제하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SAT는 수학능력이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타고난 지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반대로 SAT 점수는 응시자 집안의 부와 매우 연관도가 높다.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 평균점수는 올라간다. (…) 고득점자들은 또한 압도적으로 그 부모가 대학 학위 소지자이다.

집안의 소득이 높을수록, 부유하고 고학력인 부모의 자녀일수록 SAT 점수가 높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수능 점수 또한 이러한 흐름(돈)을 따라가고 있다.

작년 서울대 입학생 10명 중 4명이 특목고·자율형사립고 졸업생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4년제 일반대·산업대·사이버대의 3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학교뿐만 아니라 출신 지역의 편중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서울대 신입생 가운데 서울 출신은 37.08%로, 수능 응시원서 접수 기준 서울 지역 수험생 비율(21%)보다 높다. 특목고·자사고와 서울 출신 쏠림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거주지역 배경에 따라 교육 기회와 대입 실적의 차이가 뚜렷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교육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취업의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청년들이 가장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한 분야가 ‘일자리’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의 59%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노동자가 중소기업에 입사한 노동자보다 더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능력주의 신화’가 이러한 임금 격차와 사회적 지위 차이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실제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능력에 대해서 같은 잣대로 평가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대기업 CEO와 일반 직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임금 격차를 정당화할 수 있는 능력 차이를 평가해서 비례적으로 반영한 것인지 누구도 확인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현실이 능력주의의 이상에 미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능력주의가 공정한 것이며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통념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여러분이 성공했다면, 여러분과 함께한 누군가가 어떤 도움을 주었을 겁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다. 아무리 부모의 지원이 있다 하더라고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이 주변의 크고 작은 지원을 배제한 채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우리의 능력을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패한 사람은 극심한 패배주의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공정하지 않은 환경에서 능력주의 잣대만으로 누군가의 실패를 ‘불성실함’과 ‘노력 없음’으로 돌리며, 상처와 모욕을 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향상심 있는 간호사와 배관공들이 야심적인 경영 컨설턴트보다 민주적 논쟁에서 뒤떨어질 까닭은 없다.

이쯤 되면 적절한 능력주의까지도 배격한다는 비판적인 입장도 나올 수 있겠다. 출발점이 다르긴 하나 기회의 평등에서 생각해 본다면 공정한 경쟁이고,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출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절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요인들 때문에 경쟁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부모의 경제력, 뛰어난 재능과 같은 것들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끊임없이 말한다. 이런 불공정한 경쟁에서의 패한 사람들도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노력과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실패는 아니라고.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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