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도서관 유현미 관장 “하루 종일 있어도 눈치 보지 않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죠”
배다리도서관 유현미 관장 “하루 종일 있어도 눈치 보지 않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죠”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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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곳뿐만 아니라 책 읽는 문화를 경험하고 사유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공간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찾아오는 안온함이 있는 것이다. 바스락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소곤소곤 대화하는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사뿐사뿐 발걸음, 오래된 책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냄새 등 적당한 느림의 감각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다. 지난달 31일 평택 배다리도서관에서 유현미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평택시립배다리도서관
평택시립배다리도서관

Q. 평일인데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들이 많아요.

작년 기준으로 56만 명의 이용자들이 다녀갔습니다. 저희 시 인구가 60만이 채 안 되는데 한 번씩은 다 들렸다고 볼 수 있죠. 주 연령대는 자녀를 동반한 30~40대가 가장 많지만, 노년층이라든가 청년층, 청소년층도 꾸준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꼭 책을 읽으려고 온다기보다 도서관 시설을 이용하려고 오는 분들도 계세요. 공원도 잘 갖춰져 있어서 도서관 주변을 둘러보고 평택으로 이사를 오셨다는 분도 계시고, 더불어 도서관이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말과 도움이 되는 여러 피드백을 주시기도 하고요. 감사하게도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Q.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소개해주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아메리칸 코너’라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공공외교정책, 교육 및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택시는 미군 부대가 주둔해 있고, 다문화 인구도 많죠.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글로벌 사회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오랜 주둔지로서 국제교류 차원에서는 미 외교부에서 담당하고, 프로그램이나 강사 지원은 그쪽 도움을 받아 저희가 운영하는 형태로 진행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다문화 가정뿐만 아니라 탈북인 가족, 여성, 청년들의 국제교류나 문화 교육 프로그램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주작가의 방’은 작가들에게 집필공간과 집필하는 기간 동안의 일정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작가분들과 협업해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작가와 시민들이 같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때로는 시민들이 글쓰기 작업을 통해 책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작가들은 집필실에서 온전히 작가다운 일상을 보낼 수 있어 좋고, 시민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와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할 수 있죠.

Q. 올해 새롭게 추진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독서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는 어떻게 보면 나와 타자를 연결하는 행위이고,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함께한다면 공감대를 두텁게 쌓고, 차이를 좁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죠. 그런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우리 지역사회도, 우리 각자 개개인의 삶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기존의 독서동아리를 올해 새롭게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Q.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공도서관은 책 볼 권리를 시민들이 쟁취한, 민주주의 공공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포용적 공간이라는 점이 도서관의 가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도서관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 문제들과 관련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만큼은 소외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문제를 뭉뚱그리지 않고, 장애·인권·기후·청년 문제 등 세분화해서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Q. 시민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고 들었어요.

집단 지성의 힘이 있어요. 시민들과 모여서 도서를 선정하고, 같이 읽고, 강의를 듣고, 후속 동아리를 만들어 강의와 관련한 활동을 하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반영하려고 합니다. 사실 지역사회에 일조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저희가 별도로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리는 것도 아닌데 매번 적극적으로 도서관 활동에 임해주셔서 감사하고 반가운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Q. 새로운 세대에 맞춰 새로운 도서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다른 공공도서관과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지역 커뮤니티 센터나 시민의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설을 무료로 대관할 수 있게 운영하고 있죠. 여러 예술단체라든가 학교, 동아리들이 와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게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마중물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와서 각자의 사는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그게 또 공론화되는 역할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공부하고 책을 보는 시설이었다면, 최근에는 도서관이 ‘제3의 공간’이나 ‘시민의 거실’ 이라는 용어가 어울리도록 변화하고 있죠. 직장, 집 외에 종일 체류할 수 있도록 로비, 계단, 자료실 곳곳에 시민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고요. 체류형 공간으로서 전시도 보고 공연도 즐기고 책도 보고 쉴 수 있는. 하루 종일 머물 수 있는 문화 공간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도서관과 관련해서 한 청년이 댓글을 달았던 걸 본 적이 있는데, ‘하루 종일 머물러도 눈치를 보거나 뭐 사라고 하지 않는 공공도서관이 너무 좋다’라는 글이었어요. 이거다 싶었죠. 고립 문제가 심각해지는 지금, 청년들도 소외계층이니까요. 이런 청년들조차 편하게 와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 돼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죠.

Q. 최근 독서인구가 꾸준히 줄고 있는데, 도서관이 바뀌면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시나요.

저희 도서관을 보면 이용률은 꾸준히 늘고 있고, 책 대출량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평택시의 인구가 점점 늘고 있으니까 특수한 상황이거나 착시 효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도서관 접근이 어려웠다면 이용자들이 찾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접근 가능성을 좀 더 높여주는 사회적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죠. 보는 사람들만 보고, 못 보는 사람들은 못 보는 빈익빈 부익부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하고요. 실제로 저희 국민 독서율을 가장 견인하고 있는 계층이 초등학생입니다. 우리 도서관만 해도 50%가 아동 책으로 대출이 되죠. 청소년층, 청년층, 그리고 노년층이 책을 보기 힘든 건 그만큼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회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고, 나아가 접근성을 높이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을 더 조성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지역사회와 시민의 요구를 반영해 책 외에 공공도서관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죠. 책을 못 읽어도 도서관은 이용하고 싶은 욕구까지도 다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요.

Q.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이 있을까요.

대부분 한 권 꼽기를 어려워하는데 저는 한 권 꼽을 책이 있습니다. 포레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이죠. 인디언 조부모가 어린 손주를 키우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 책의 제목처럼 읽을 때마다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내 삶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사람이나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도서관 이용자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와 같은 걱정이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펼쳐보는 책입니다. 제가 살아온 삶에도 영향을 주지만,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죠. 책 속 “좋은 것을 만나면 이웃에게 먼저 알려라”라는 구절은 도서관이 지닌 의미와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Q. 끝으로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제가 전작주의 독자라 책보다는 작가를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한강 작가와 아니 에르노 작가입니다. 한강 작가는 문학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훌륭한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작가가 가지고 있는 소명 의식이 특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외면할 수 있는 걸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사회적인 위로를 전하죠. 마음을 보듬어주고 치유해줌과 동시에 아픔이 많은 사회와 역사를 이야기하는 작가는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죠. 아니 에르노 작가의 책은 대부분 자전적 소설이긴 하지만 책을 들여다보면 우리 삶에 파동을 일으키는 깊숙한 질문들을 던지는 걸 알 수 있죠. 그래서 읽기만 해도 생각의 변화를 주고, 스스로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책 한 권씩 추천해드린다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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