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박아지를 아시나요: 박아지, 「나의 하루-조그마한 학원(學院)에서-」
[시민 시인의 얼굴] 박아지를 아시나요: 박아지, 「나의 하루-조그마한 학원(學院)에서-」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4.02.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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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애기에게만 찬밥을 주고

아내와 마주 앉아 멀거니 바라보는 아침!

조반(朝飯)도 못 먹고 교실(敎室)에 들어서며

어느 아이가 수업료(授業料)나 가져왔나?

은근히 눈치만 보는 쓰디슨 심사(心思)!

『내일(來日)은 수업료(授業料)들 가져오라』

이 말을 할까 말까? 설레는 감정(感情)을 아드득 깨물고

묵연(默然)히 돌아서는 하학시간(下學時間)

태연(泰然)히 돌아오는 나의 모양을

안보는 듯 은근히 살피는 아내의 표정(表情)!

「저녁은 어떻거나?」

혼잣말 같이 나의 주머니를 엿보는 그의 심사(心思)!

나는 또 묵연(默然)히 돌아나와

시름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박아지, 「나의 하루-조그마한 학원(學院)에서-」

박아지를 아시나요

박아지(朴芽枝)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1905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나 식민지 시대에서 해방기까지 존재하다 1959년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문학사에 적혀 있습니다. 박아지는 필명이고 본명이 박일(朴一)이라 알려졌습니다. 특히 카프 계열 농민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또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개성 출신 박재청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박일도 또 다른 예명이라고. 사실 이 모든 이름들이 낯설기만 합니다. 분명 존재했으면서도 왜 이리 흐릿할까요. 이 모두 분단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도 하늘에 별만큼 시인이 많다고 하는데 잠시 깜빡이다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건가요. 우리 삶도 그처럼 허허롭기만 합니다.

시 「나의 하루」는 ‘조그마한 학원에서’라는 부제가 달렸네요. 1935년 6월 카프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을 때 박아지는 박세영, 송영 등과 더불어 소위 ‘비해소파’의 일원이었습니다. 해체를 반대했던 작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시인입니다. 카프 해체 이후 많은 작가들이 친일 부역했다는 사실을 보면 더욱 그의 면모가 뚜렷합니다. 이 시는 1931년 작품입니다. 그가 서울 근교에서 교육 사업을 했다고 하니 그 무렵일 것 같습니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학원 선생과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정이 눈에 선합니다. 경제 논리로 따진다면 저러한 학원은 오늘날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모든 시인들은 논리가 무언지 모릅니다.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할 뿐입니다.

박아지를 이름 풀이하면 ‘후박나무에 싹튼 가지’는 아닐까요. 이 소박한 이름도 간직할 수 없는 반편의 문학이 우리 근현대 문학사이니 초라하기만 합니다. 박아지는 1946년 첫 시집 『심화(心火)』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이사하고 두어 번 집의 수색을 당하는 중에 원고는 어디서 없어졌는지 찾을 길이 없”어 빈약하게 시집을 묶는다고. 신산한 그의 삶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펴낸 두 번째 시집 『종다리』 서문에서 박세영은 이렇게 그를 말합니다. “시인 박아지는 사람됨이 겸허하고 소박한 것처럼 일련의 그 시에서 풍기는 진실성과 소박성으로 하여 특징적이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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