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려은의 데일리 소나타] 사랑의 힘으로 읊은 시
[이려은의 데일리 소나타] 사랑의 힘으로 읊은 시
  • 이려은
  • 승인 2024.02.0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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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려은(민재)      수필가 / 비올리스트 / 목포시립교향악단 viola 상임 수석 연주자 역임
이려은(민재) 수필가/비올리스트
/목포시립교향악단 viola 상임 수석 연주자 역임

안방 화장대 귀퉁이에 새초롬하게 놓여있는 보습용 화장품의 홍보문구가 재미있다. ‘힘센 보습’. 지금까지 별 눈길을 주지 않고 사용한 제품인데, 그동안 소리 없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던 이 녀석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오늘은 왠지 든든하다. 아마도 제조사에서 이런 문구를 당당하게 겉 포장에 새긴 이유도 피하 깊숙이 힘 있게 침투하여 피부의 습윤을 돕는다는 자신감? 힘의 발로일 듯하다. ‘힘’이야말로 모든 생의 원천이니까 말이다.

하긴 우리 인체도 이 힘의 작용으로 움직인다. 섭취하는 음식이 체내에 흡수돼 영양분이 되어 에너지가 되고, 이렇게 이루어진 에너지는 신체의 활동을 돕는 힘으로 승화해 우리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죽하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힘이 빠진다’하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힘을 얻었다’라고 할까.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요즘 말로 힘의 끝판왕 하면 ‘사랑의 힘’일 것이다. 인생사에서 사랑의 힘만큼 아름답고 강렬하며 폭발적이기까지 한 힘이 또 있을까?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1810~1849)은 이 사랑의 힘으로 서양의 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음악가이다. 그가 작곡한 즉흥 환상곡, 이별곡, 빗방울 전주곡, 영웅 폴로네즈 등은 그 제목만 들어도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렵다. 쇼팽의 애잔한 선율을 들을 때면 겨울의 매서운 달빛은 어느새 무뎌지고 그 달빛은 가슴에 사르르 녹아내리니 말이다. ‘위대한 사랑의 힘이여!’ 새삼 감탄하게 한다.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예술의 힘을 불어넣어 준 연인은 바로 소설가 조르주 상드였다. 쇼팽은 1838년 리스트의 주선으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당시 상드는 프랑스 문단에서 주목하는 소설가였다. 쇼팽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사랑이 넘치는 진취적인 여인이었지만 매우 병약했던 26살의 청년 음악가에게는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여인이었다. 당시 폐결핵에 걸려 파혼의 아픔을 겪었던 쇼팽에게 상드는 구원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병약한 쇼팽을 위해 함께 마요르카로 여행을 가고 여름이면 노앙으로 거처를 옮기며 쇼팽을 극진하게 보살폈다. 쇼팽이 그토록 병약한 상태에서도 후대에 수많은 명곡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9년을 함께하며 헌신을 다한 연인 조르주 상드의 사랑의 힘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쇼팽의 건강은 점점 악화했다. 게다가 두 사람 간의 사랑에도 질투와 갈등으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1847년 결별하고 말았다. 헌신적인 그녀의 사랑의 힘으로 창작에 몰입할 수 있었던 쇼팽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자 쇼팽은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건강 역시 더욱더 심하게 악화하여 모든 음악 활동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축음기를 통해 흐르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가 어느새 잠자던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선율이 격정적이고 다소 음울하기까지 하다. 쇼팽의 우울한 성향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 곡은 그가 1830년 이탈리아로 연주 여행을 계획한 후에, 그곳으로 떠나기에 앞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고생하는 고향 바르샤바의 청중들을 위해 독주로 초연을 한 곡이다.

그런데 당시 쇼팽이 연주한 이 곡이 조국에서의 마지막 연주곡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가 이탈리아로 떠난 후 또다시 바르샤바는 전쟁과 반란의 혼돈 속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쇼팽은 그 이후 타국에서 이방인의 신세가 되어 평생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다.

어쨌든 쇼팽은 조르주 상드가 떠난 2년 후 프랑스 파리의 방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만약 쇼팽과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이 영원했다면 그의 음악은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저 축음기의 스피커에서는 그의 어떤 음악이 흘러나와 집안을 온종일 채우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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