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연구가 드크로센조, ‘빛을 향한 여정’을 담다
한국문학 연구가 드크로센조, ‘빛을 향한 여정’을 담다
  • 고재권 기자
  • 승인 2024.02.0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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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이라도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이국 작가의 중후한 음성에는 희망과 설렘이 공존하는 부드러운 떨림이 깃들여 있었다. ‘한국문학 연구가’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작가가 『빛을 향한 여행』(퍼블리온)의 출간을 기념하여 내한했다. 그는 엑스마르세유대학교 한국학 창설자이자, 문학평론가, 번역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를 만나 그와 한국문학과의 특별한 인연과 이번 신간에 대해 물었다.

한국문학 연구가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Q. 프랑스인으로서 한국문학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언제 처음으로 한국문학을 접하게 되었나.

약 20여 년 전으로 기억한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청준이라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가 쓴 여러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다른 한국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생겼고 그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한국문학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Q. 이청준 작가의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유럽 작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한국의 이청준 작가의 작품은 처음부터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의 작품에는 전 세계 어느 문학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유럽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특별한 상징적 세계가 있었다.

Q.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이청준 작가의 상징적 세계에 대해 더 듣고 싶다.

보통 독자는 책을 읽으며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그런데 이청준 작가의 작품은 유럽 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역동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그의 한 작품에서 ‘섬’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유럽인에게 ‘섬’은 그저 휴양지와 같은 단순한 이미지로서의 ‘섬’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의 ‘섬’은 다양한 차원을 넘나드는 매우 역동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유럽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차원의 사고이다. 그런데 이것이 내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고 깊이 잠자던 내면의 열정을 깨웠다. 이문열, 이승우 같은 한국의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렇게 내면에 깊이 숨어있는 열정을 깨우는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한국문학은 아주 특별한 운명으로 다가왔다.

19 세의 드크레센조
19 세의 드크레센조

Q. 엑스마르세유대학교에서 한국학 주임교수로 활동하다 2011년에 한국문학출판사 ‘드크레센조’를 직접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처음부터 한국문학출판사를 시작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독자들에게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2009년부터 ‘글마당’이라는 웹진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작품들의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프랑스어로 번역되는 한국 작품이 일 년에 5~10권 내외뿐이었다, 그것도 한국의 대표 특정 작가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소개할 한국의 작품도 작가도 없어졌다. 결국 다양한 한국의 작품과 새로운 작가들을 직접 프랑스에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첫 번역서로 김혜란 작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김중엽, 편해영 작가의 작품을 프랑스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이승우, 한강, 은희경, 김애란, 정유정과 같은 소설가들과 고전문학가인 박지원, 이태준, 그리고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작품 등을 출간했다. 현재는 일 년에 약 75권 이상의 한국 작품을 번역해 출간하고 있다.

Q. 이번 책의 구성이 특이하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70~80년대의 사진이 등장하고 그 사진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더해졌다. 이렇게 기획한 특별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 책은 한마디로 ‘노스텔지어’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보통 ‘노스텔지어’는 내가 경험했던 과거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70~80년대 한국의 ‘노스텔지어’에 대한 책이다. 살아보지도 않은 과거에 대한 향수라니.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70~80년대를 살았던 한국의 인물들을 사진으로 처음 접했던 순간, 과거에 함께 했던 가까운 형제, 자매, 친구와 같은 친근감을 느꼈다. 그 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동대문 시장이나, 중고 서적을 파는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의 옛 사진들을 모으고 그 사진에 대한 나만의 감상들을 적어나갔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어느 사진 전시회에서 만난 김기찬 작가의 사진에 깊은 감동을 받아 본격적으로 감상평을 쓰게 되었다. 그 후 조세화, 마동욱 작가와 이름 모를 작가들의 감상평을 더해 이렇게 한국에서 출간을 하게 되었다. 물론 더 많은 사진들과 감상평들이 있었지만 저작권 문제 등으로 모두 책에 담을 수는 없었다.

Q.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로서 특별히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것이 나의 관점이었다. 예를 들면, 평범한 어린 소녀가 집 앞에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 소녀의 오른쪽 뒤에는 닫힌 문이 있고, 왼쪽 뒤에는 열린 문이 있었다. 그 사진을 몇 시간을 바라보다 ‘이 소녀의 운명은 과연 무엇일까?’,‘과연 이 소녀는 어느 쪽 문으로 들어갔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 사진의 어린 소녀는 더 이상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소녀의 삶이, 미래가 내 가슴속에 울림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독자들이 독자들만의 눈으로 책에 담긴 사진들의 이면을 바라보고 마음이 흔들리기를 바란다. 그 흔들림의 감동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드크레센조의  옛 집
드크레센조의 옛 집

Q. 작가님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사진은 큰 의미로 여행이다. 사진은 두 가지 관심이 존재한다. 사진을 촬영하기 전과 후이다. 그런데 나는 특히 사진을 찍은 후의 인물의 행동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어린아이는 사진을 찍은 후에 어떤 행동을 할까’, ‘바로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놀이터로 갈까?’ ‘그도 아니면 친구에게 갈까?’하는 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은 내 상상력의 열쇠이다. 그 열쇠를 통해 상상의 문을 열고 창작의 문을 연다. 비로소 내면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Q. 이번 책을 관통하는 단어가 ‘노스텔지어’다. 작가님에게 ‘노스텔지어’는 어떤 의미인가.

나이가 들수록 미래보다는 자연스럽게 과거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된다. 그래서 때론 ‘향수’와 ‘후회’가 공존하기도 한다. 나는 가족들과 매우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그 때에 함께 했던 가족들이 영원히 곁을 떠나는 사건들을 목도하며 잡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매우 컸다. 물론 나에게 ‘노스텔지어’는 돌아가고픈 유년의 따듯함과 행복이다. 그래서 더욱 현재가 고독하고 아프다. 하지만 그래서 또한 현재와 미래가 의미가 있고 귀하다. 독자들도 각자의 노스텔지어가 있을 것이다. 그 시절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현재와 미래를 위한 귀한 의미가 될 것이다.

Q. 책의 서문에 “...이 책은 빛을 향한 여정이다...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빛을 찾으려 했다”는 작가의 말이 있다. 작가님에게 ‘빛’은 어떤 의미인가.

빛은 나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생명’이다. 프랑스의 프로방스 집 근처 숲을 자주 산책한다. 그런데 숲을 산책하다 보면, 덤불 속에서 한 줄기 빛을 향해 치열하게 솟아나는 어린 꽃들을 볼 수 있다. 처절할 정도로 강렬한 생명력이 경이롭고 아름답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누구나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나에게도 빛은 ‘생존’이고 ‘생명’이다. 내가 자주 과거를 여행하는 것은 오늘의 생명이 필연적으로 나의 과거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과거로의 여정도 결국 생명의 여정이고 빛의 여정이다.

군 복무 중인 드크레센조
군 복무 중인 드크레센조

Q. ‘한국문학 연구가’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나.

너무 과분한 타이틀이다. 그저 한국문학을 프랑스에 알리는 중재자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Q. 『독서신문』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저자와 독자가 서로 사랑에 빠지면 좋겠다. 내가 처음 한국문학을 접하며 사랑에 빠졌듯이, 한국의 독자들이 나의 책을 읽고 나와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대인은 돈, 일, 경제에만 몰두해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하나의 색으로만 인생을 채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른 곳으로도 시선을 돌리길 바란다. 특히 문화, 예술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으며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색이 아닌 무지개와 같이 다양한 색으로 채워나가길 바란다.

Q. 그동안 많은 일들을 성공적으로 일구어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늘 그랬듯이, 한국의 우수한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일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승우 작가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그분이 출간한 책들 속에 있는 ‘작가의 말’을 모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또한 유럽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재미있고 놀라운 점을 이야기로 담았다. 현재 교정중이다. 하루 빨리 출간이 돼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Q.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 추천을 부탁한다.

고전 작가 중에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앙드레 지드를 추천하고 싶고, 현대 작가 중에는 피에르 미숑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세계문학사에 꼭 거론되는 작품이다. 마담 보바리는 사랑받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인간 내면의 깊은 욕망을 너무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 장클로드 드크레센조(Jean-Claude De Crescenzo)

엑스마르세유대학교 한국학 창설자. 문학평론가, 번역가. 1952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출생, 릴 제3대학교 대학원 박사. 2002년 엑스마르세유대학교 한국학과를 창설하고 2018년까지 주임교수로 재직했다. 2017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2009년 부인 김혜경 교수(엑스마르세유대학교 한국어과 교수)와 함께 프랑스어판 한국문학 문예지 ‘글마당’을 창간하고 이후 ‘드크레센조’ 출판사를 세워 프랑스 출간 한국 문학작품을 정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독서신문 고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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