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감푸른 바다 바닷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元山)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王)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양명문, 「명태」
괜찮을까
시인들이 모인 자리라면, 술잔이 오가고 불콰해질 무렵이면 누군가 일어나 한 자락 노래를 뽑습니다. 전사(戰士)라 불렸던 김남주가 짝다리를 짚고 구성지게 불렀던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가 귓전에 생생합니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시인들의 단연 애창곡이지요. 그리고 목청깨나 좋다는 사람이 ‘명태’를 불러 갈무리합니다. 이 노래가 양명문의 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더더욱 전후 북한에서 발표된 시이라는 사실도 그렇습니다. 아마 남북 모두에서 인정(?)한 드문 시가 아닐까요. 양명문은 월남 시인입니다. 늘 그렇듯 그가 남한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를 두고 ‘반공 시인’, ‘순수시인’이라 부르는 까닭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시 「명태」는 1945년 12월 북한에서 발간한 시집 『화성인』에 실린 작품입니다. 북한에서는 ‘이상주의’라 비판 대상이었다가 전쟁 때 부산에서 변훈 작곡으로 명곡의 반열에 오릅니다. 명태만큼 수많은 이름으로 변신하며 불리는 생선도 많지 않을 겁니다. ‘생태’였다가 ‘동태’가 되기도 하고 ‘코다리’, ‘북어’, ‘황태’, ‘먹태’, ‘짝태’가 되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더 많은 이름으로 불릴 겁니다. 이 시는 이러한 삶의 곡절을 담았습니다. 이리저리 쫓기는 우리 모두의 삶이 아닐까요. 사실 이름이라도 남는다면 다행입니다. 이 시에서 어떻게 이념과 순수만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환멸의 습지’에서 ‘한 걸음이라도 흠 잡히지 않으려고 생존하여갔다’는 김종삼의 시(「평범한 이야기」)가 새삼스럽습니다.
양명문은 1968년 6월 16일 김수영이 적십자병원에 사고로 입원했을 때 임종을 지킵니다. 김수영이 1921년생이니 나이차가 꽤 나지만 친구로 지냈습니다. 김수영은 양명문의 시 「민락기」를 평하며 순수하지만은 않은 생활의 양상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힘의 마력이 구사하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색채 언어군’의 이미지에서 공포를 뚫고 나가는 시의 힘을 느꼈다고도 합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더없이 여유롭게 그리는 포만감을 경계합니다. 그래도 ‘괜찮을까’ 회의합니다. 세간의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문에 전향서를 쓴 김수영이기에 양명문의 형편을 모를 리 없건마는 시인은 더 긴장해야 하는가 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과 전쟁의 힘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