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노동절
여인의 노동절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4.01.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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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시媤’ 자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 있다. 이 글자가 들어가는 시금치조차도 보기 싫다는 친구 말이 그것이다.

친구는 수십 년 결혼 생활에 익숙한 황혼 나이 아니던가. 며느리가 시댁과 겪는 갈등 중심엔 항상 시어머니가 존재한다. 이런 고부간의 갈등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아직도 진행형이란다. 예전처럼 극심한 시집살이는 많이 없어졌다고는 한다. 하지만 요즘도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심술에 가까운 시집살이는 생각만큼 거둬지지는 않는가 보다.

비근한 예로 결혼한 지인의 딸 경우만 해도 그렇다. 그녀 딸은 회사 일로 어느 땐 휴일도 없이 업무에 시달린단다. 직장 업무보다 지척에 사는 시댁과의 불협화음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토로하곤 한단다. 시어머니 생일일 경우, 며느리를 불러, “스파게티 해 달라, 탕수육 해 달라”라는 주문은 예사란다. 뿐만 아니라 두 달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집안 제사 때마다 며느리에게 제사 음식을 만들라고 지시하곤 한단다.

이러한 시댁의 무리한 요구에 물론 법도와 가풍을 중시하는 의도는 이해가 간단다. 하지만 딸이 맞벌이, 육아로 심신이 지쳐서인지 이 또한 너무나 버겁다며 하소연해 오기 일쑤라고 했다. 이런 말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을 때마다 미혼인 딸들이 있는 필자로선 왠지 은근히 걱정부터 앞선다. 다름 아닌 혹여 딸들이 이런 시댁을 만난다면 그 고충을 어떻게 해결해 주어야 할지 난감할 듯해서다.

이것이 아니어도 요즘 젊은이들 맞벌이로 인해 시댁에 얼굴 비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직장 일로 바쁘고 휴일엔 그동안 밀린 집안일 하랴, 육아에 시달리랴, 시댁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젊은이들이 추석이나 음력 설 또한 우리 세대처럼 꼭 쇠어야 한다는 마음이 희석된 듯하다. 어찌 젊은 세대뿐이랴. 명절 때 많은 인파로 공항이 붐비는 현상만으로도 이런 세태라면 지나치려나. 명절 때마다 외국 및 국내 여행객으로 공항 안이 북적이잖는가.

이 현상을 대하노라면 기성세대인 필자로선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그러고 보니 어찌 보면 지난 세월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도리는 지켰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과정 자체는 매우 힘든 인생 여정이었다고나 할까. 수십 년 전 명절마다 빠트리지 않고 장거리에 위치한 시댁을 찾을 때 겪은 고생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안에 갇혀 무수한 차량들이 정체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몇 시간을 교통지옥에 시달리노라면 온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이 몸으로 정작 시댁에 도착하면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으리만치 지치곤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부모님 생신, 훗날엔 기일 때도 어김없이 장거리를 달려 시댁을 찾았다. 이때 일 년에 몇 번씩 시댁 찾는 일은 당연히 자식 된 도리로 여겼다. 또한 이에 대한 불평불만을 한다는 것은 불효로 생각했다. 설령 어린 딸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씩 차가 밀려도 추후 시댁을 안 가겠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이와 달리 남자들은 귀소본능歸巢本能 때문인지 명절만 돌아오면 만면에 희색을 띠곤 한다. 명절 며칠 전부터 싱글벙글한다. 심지어 평소 삶에 짓눌려온 심사를 고향 집을 찾아 한껏 위안받을 눈치까지 엿보인다. 이토록 좋아하는 남편의 심경을 모른 체 할 순 없었다. 이에 ‘울며 겨자 먹기’로 명절 전날 독감에 걸려 고열이 나도 죽을힘을 다하여 시댁으로 향하곤 했다.

이렇듯 가까스로 아픈 몸을 추슬러 시댁에 도착하면 그 순간부터 가사 노동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명절 음식 준비하랴, 설날엔 손님상 차리랴,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피곤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필자 역시 꼭 명절 증후군을 앓곤 하였다. 요즘도 명절 며칠 전부터 까닭 없이 온몸이 이곳저곳 아프고 불면에 시달리곤 한다.

설날은 모처럼 고향 집을 찾아 부모 형제끼리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덕담도 나누는 행복이 있다. 하지만 명절 음식은 첫째가 정성이라는 담론談論이 존재하는 한 여인들에겐 어쩌면 지긋지긋한 고초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추석 및 설날은 여인의 노동절이나 진배없다. 그러므로 2024년도 올해 구정 때만큼은 이날만이라도 아내를 위하여 남자들은 소매를 걷었으면 한다. 아울러 필히 앞치마도 둘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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