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소리 없이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그 고래들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예외적으로, 인간이 시적인 뭔가를 발명한 거죠!」 <75쪽>
「아빠 말로는 내가 현실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대요.」
「넌 어떻게 생각해?」
「아빠가 말하는 현실이라는 게 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죠.」
아들이나 아버지나 현실감 결핍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나에게는 그레구아르 루세르의 결핍이 훨씬 심각해 보였다. 돈을 어마어마하게 버니까 실재 세계에 더 가깝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75~76쪽>
「20세기 이래로, 이전 세대가 이후 세대에게 물려주는 유산이란 바로 죽음이에요. 심지어 그건 즉각적인 죽음도 아니에요. 오히려 상처 입은 바퀴벌레가 짓밟혀 죽기 전에 질질 끌고 다니는 오랜 불안 같은 거죠.」 <95~96쪽>
「나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줘요. 나에게는 그게 꼭 필요하니까.」 <155쪽>
우리는 트램펄린을 타러 갔고, 피는 아이처럼 깔깔대며 점프했다. 그는 먹은 것을 토할 정도가 되어서야 뛰기를 멈췄다.
「좋아. 놀이공원에 와서 속을 게워 내지 않으면 정말 재미있게 놀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내가 그를 축하했다.
(……)
「당신은, 당신은 토하지 않나요?」
나는 승객들을 공중에 띄워 놓고 빙글빙글 돌리는 놀이 기구를 올려다보았다.
「나한테 5분만 줘.」 내가 말했다.
나는 다음번 차례에 놀이 기구에 올라탔다. 놀이 기구에서 내린 나는 후닥닥 피 근처로 달려가 토했고, 피는 손뼉을 쳐댔다. 뿌듯했다. <158쪽>
「내게는 삶이 없어요. 진실은 바로 그거예요. 난 그게 유전적인 게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요. 아빠, 엄마를 관찰해 보면 그들에게도 삶이 없거든요. 우리 반 애들에게도……. 솔직히 말해, 내 주변에서 삶이 있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해요. 가르쳐 줘요.」 <171쪽>
「뭔가에 도달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해 봐. 죽기 전에 살란 말이야. 움직여!」 <173쪽>
피는 실재하는 사람일까? 그랬다, 하지만 겨우 그랬다. 피는 아직은 실재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2년이 지나면 그는 자기 부모처럼 변할 것이고, 실재 세계를 떠나 가짜 존재 중 하나,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을 다루는 딜러, 가상 공간 속 도자기 수집가가 될 것이다. 그 소년은 자신이 겪고 있는 비극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나에게 되풀이하는 사랑 고백은, 실재 세계를 향해 제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간청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177쪽>
내가 그에게 끼친 영향은 그를 위대한 문학의 독자로 변모시킨 데 있었다. 위대한 문학은 무해성(無害性)의 학교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이들만 예로 들어도, 그들은 뛰어난 젊은이에게 그런 쓰레기들을 제거해 버리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난 그에게 무기를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범행의 문학적 기반을 가져다주긴 했다. <186쪽>
젊음은 하나의 재능이지만, 그것을 획득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나는 마침내 젊은이가 되었다. <187쪽>
[정리=한주희 기자]
『비행선』
아멜리 노통브 지음 |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펴냄 | 200쪽 | 12,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