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 누구나 여러 요인으로 잠시 꺾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꺾여도 계속하려는 마음, 그게 꾸준함이다. 비교적 싫증을 잘 내고 끈기가 부족한 건 소수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기자 역시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꾸준함도 하나의 재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사랑스런 한 아이의 ‘엄마’를 통해서.
『햇살보다 더 눈부시게 웃어줘』, 유튜브 ‘진정부부’와 ‘다정모녀’를 운영하는 김민정 작가가 책을 출간했다. 육아에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슈퍼맘, 알파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다. 육아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응석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자랑도 아니다. 육아를 하면서 어떤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이 오가는지 그때그때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가 가진 힘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는 책이다. 무엇을 통해 성장과 삶의 행복을 이룰 수 있었는지 지난 8일, 서울 신수동 한국출판콘텐츠센터 사옥에서 김민정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책을 내야지’ 했던 건 아니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해도 책을 내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저는 작가도 아니고, 스토리를 창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에 대한 일상적인 기록만 담겨있으니 책을 내는 건 좀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그런 걸 떠나서 책으로 남겨놓으면 나와 아이에게, 우리 가족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더라고요. SNS는 언젠가 없어질 수도 있고, 오래된 기록은 찾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책은 항상 남아있으니까, 그런 점이 좋았어요. 거창하게 뭔가를 생각한 건 아니에요. 일기를 쓰다 보니까 책이 된 거죠.
Q. 기록을 계속해서 남기는 이유가 있을까요.
어른들은 어제나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제와 오늘이 너무 달라요. 지난주와 이번 주는 더 다르고요.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이 자꾸 보이는데, 글로 써놓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더라고요. 물론 재밌어서 하는 것도 있어요. 그날그날 아이가 하는 말들이 되게 재밌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재밌고요. 최근엔 아이가 점점 더 말이 늘고 있어서 책에 담지 못한 말들이 많아요. ‘이런 말까지 한다고?’ 놀랄 때도 있어요. (웃음)
Q.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하지만 정겨운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대화가 많은 가족이라고 느껴졌어요.
남편하고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해요. 근데 대화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커피를 빌미로 대화를 시도한 적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억지로라도 얘기하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꼭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어요. 단 5분 만이어도 충분해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뭘 먹었는지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런 시간이 계속 쌓이니까 ‘이따가 이 얘기해야지’ 하고 대화거리를 생각해둘 때도 있어요.
Q. 고정적인 대화시간을 갖는다는 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특히 육아할 때는 부딪히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모든 것은 대화에서 시작해요. 다툼이 있을 때도요. 싸움이라는 건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화해방식은 한결같아요. 상대방의 잘못을 내 입으로 말하지 않기. 내 잘못은 내 입으로 얘기하는 게 원칙(?)이에요. 먼저 나의 잘못을 언급하고 그다음에 상대방에게 화가 났거나 서운했던 점들을 말하죠. 그럼 감정이 누그러져요. 내 입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꺼내버리면 그때 감정이 다시 올라와서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대화가 정말 중요해요.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 저희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됐으니까요. 대화는 하면 할수록 좋아요. 부부로서도 성숙해지고 부모로서도 성숙해지니까.
Q. 육아하는 데에 애정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훈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두 사이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근데 쉽지 않아요. 저도 엄마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몸이 힘들고 피곤할 때는 평소보다 좀 더 큰 소리를 내게 되더라고요. 자책하진 않아요. 그 대신 아이에게 사과를 해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남편과의 화해방식하고 같은 거죠. ‘엄마가 큰 소리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안 그러도록 할게’ 이렇게 얘기하면 ‘나도 미안해, 괜찮아’라고 말해줘요. 고맙게도. 아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려고 해요. 아이에게도 배울 점은 분명 있으니까요. 아이가 잠들고 나서 ‘아까 화내지 말걸’ 혼자 생각만 하고 되뇌기만 하면 몰라요. 잘못했으면 사과해야죠. (웃음)
어린아이들은 잘 웃는 만큼 잘 울고 뜻대로 안 되면 짜증 내고 소리 지르고, 그러다가도 금세 또 해맑게 웃는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단지 겉으로 조금 더 다듬어졌을 뿐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감정과 행동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자책하지 않아요’라는 그의 말은 아이에게 큰소리를 냈다는 걸 긍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힘들거나 아이에 관련한 걱정과 불안, 부담감 등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이 육아를 하면서 흔히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이성적이기도, 감정적이기도 하니까.
Q. 육아를 통해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고 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긴 했어요. 딱 그 정도였죠. 근데 요즘 ‘노키즈존’이나 ‘아이혐오’에 대한 문제들이 많이 드러나잖아요. 납작하게만 인식되었던 문제가 입체화되어 제 앞으로 다가오니까 결국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더라고요.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점점 더 심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렇지 않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 그리고 그런 혐오들이 점차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된다는 게 안타깝죠. 어른이 어린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오래 산 만큼 배려와 인내를 익혔다는 점일 테고, 그 배려와 인내는 시민이 시민에게 나눠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때로 세상엔 더 많이 알아서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 있는데, 어른이 된다는 건 그걸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도 한때 아이였음을, 좋은 어른들 덕에 무사히 어른이 됐음을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해요.
Q. ‘모성애’가 처음부터 생기는 감정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마냥 예쁠 순 없어요. 시간이 좀 필요했죠. 아이랑 저도 처음 만나는 거잖아요. 제가 뱃속으로 품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제 아이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마주했으니까요. 엄마는 처음인데, 엄마에게 많은 요구를 하는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나 왜 이 아이가 예쁘지 않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죄책감만 심어지게 돼요.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쓸 수 없고, 잠도 두 시간 마다 깨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사람이 아무리 좋아하는 게 눈앞에 있어도 내 몸이 힘들고 피곤하면 그게 좋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이가 생기는 순간, 또는 태어난 순간에 모성을 장착해야 한다는 사회에 대해 한 번쯤은 얘기하고 싶었어요. 특히 유튜브에서는 예쁘고 평화로운 모습들이 더 많이 나오니까 책에 그런 메시지를 일부러 더 넣은 것도 있고요. 강압적인 모성애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요. 또 낳았다고 다 엄마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요. 아이를 사랑하는 건 그냥 사랑이지, 꼭 ‘엄마’이기 때문만은 아니니까.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뜨거운 모성애를 갖게 된다는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가 오히려 초보 엄마들의 마음을 다급히 부추긴다. ‘엄마’라는 이름하에 많은 것들이 당연시되고 요구되지만, 과연 그것들이 당연한 걸까. ‘모성애’라는 단어 하나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믿는 숭고하고 위대한 모성애는 없었다. 그보다는 모든 인간관계가 시간의 흐름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다 어느 순간 깊어진 것을 느끼는 것처럼, 추억을 공유하면 가까워지는 것처럼, 오래 보면 정이 드는 것처럼 아이에 대한 마음도 그렇다. “그런 감정은 바로 생기지 않아요. 점차적으로 커지는 거죠”라는 그의 말처럼. 모성애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Q. 나중에 아이가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를 상상해 본다면요.
어느 시점에 읽느냐에 따라 책이 다르게 와 닿을 것 같아요. 중학생 때 읽는다면 사춘기를 좀 더 순탄하게 보낼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고, 사회에 나가서 일에 치이고 사람들한테 치일 때면 ‘내가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았었지’하고 위로가 되는 책이었으면 해요. 나중에 엄마가 돼서 읽는다면 지금 저의 마음을 잘 알겠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게 줄곧 힘들지만은 않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 포기해야 할 게 많잖아요.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유하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나 해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경험해도 나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새로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또 새로운 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낯설고도 재밌어요. 특히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고요. 예측할 수 없어서 힘들긴 하지만요. 다마고치 키우는 그런 느낌이랄까? (웃음)
루다를 낳고 알았다. 내가 누군가의 두피에 뽀뽀할 수 있다는 걸. 쉬는 날이면 낮 12시, 1시까지 자던 내가 2시간마다 깨고, 잠을 못 자도 버티고, 아침 6시에도 눈을 번쩍 뜰 수 있다는 걸. 누군가의 토를 손으로 받고 똥도 만질 수 있다는 걸. 7킬로그램짜리 아이쯤은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려 안을 수 있다는 걸.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더 많았다는 걸 루다를 통해 앞으로 점점 더 많이 알게 되겠지.
햇살보다 더 눈부시게 웃어줘』 中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