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엘리멘탈: 오늘의 모든 다름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엘리멘탈: 오늘의 모든 다름
  • 스미레
  • 승인 2023.12.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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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물의 사랑이라, 너무 뻔하지 않나?’ 팔랑이는 아이를 따라 극장에 드는데 문득 그런 걱정이 일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기우였을 뿐, 픽사는 역시 픽사였다.

처음엔 화면을 메우는 ‘엘리멘트 시티’의 웅장함에 시선을 빼앗겼더란다. 차차 드러나는 원소들의 생생함에 이내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고. 심드렁함이 무장 해제되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론 2시간 내내 영화에 빠져 울고 웃다 결국 N회 차 관람을 찍은 성인 관객. 맞다, 바로 나다.

영화는 ‘모든 것은 불, 물, 흙, 공기로 이뤄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說)에 토대를 둔다지만, 스토리는 간단하다. 불과 물의 사랑 이야기다. 너무 다른 둘. 그 둘이 암만 사랑에 빠진다 한들 순탄한 상생이 될 리 없다. 공감 능력 뛰어나고 눈물 많은 물-남자 웨이드와 태어나 단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 화끈한 불-여자 앰버. 둘은 서로가 자신의 상극임을 잘 알고 있다. 섞이는 순간 누구 하나는 증발해 버리거나, 꺼져버릴 테니 말이다. 주저하는 앰버에게 웨이드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 며 먼저 손을 내민다. 도저히 합쳐질 것 같지 않은 두 캐릭터, 불과 물이 손을 잡은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물론 둘의 사랑 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었다. 가족 영화인 만큼 앰버네 불 가족과 웨이드네 물 가족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영화의 감독이 재미 교포 2세인 피터 손(Peter Sohn)이라는 것은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고국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해 사는 불 가족의 애환과 문화 충돌, 인종 차별 등의 이야기는 손 감독의 경험담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영화를 보곤 나 역시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을 먼저 들여다봤다. 우리는 가족이기에 물과 불처럼 극렬히 다르진 않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물과 기름’이라던 웨이드의 대사는 영화를 볼 때마다 왜 그리 크게 들려오던지. 그건 아마도 요즘 사춘기인 아이와 나의 관계가 종종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 성질은 비슷해도, 섞이기 힘든 지점에선 꼭 부딪치곤 하니 말이다. 때마다 나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 언성을 높여 왔다. 나와 다른 존재인 아이를 맘대로 재단해 나와 비슷하게 만들려고도 했었다. 상대를 꺾어 이 관계에서 우위에 서고픈 미운 욕심 때문이었음을 이쯤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일까? 그날은 불쑥,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어른스럽게 말이다. 벌겋게 화 오른 아이에게 “그래 네가 옳아. 엄마가 미안해”라고 겸허히 말해 보았다. 그러자 아이의 격한 감정이 금세 쑥 수그러든다. “나도 미안해요.” 조그맣게 대답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자 아이 얼굴에선 환한 미소가 피어났고.

순간 요즘 아이가 자주 틀어두는 ‘네가 주인공이어도 괜찮아’라는 엘리멘탈의 주제곡이 마치 지금 우리의 배경 음악인 양 귓가를 스쳤다. 덕분에 ‘네가 내 삶의 주인공이어도 좋아’ 말하는 이 곡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 하는 이 시대에 이 얼마나 신선한 말인지. 주도권 싸움을 멈추고 상대가 나보다 더 빛나는 순간이 많아졌으면 하는 낯선 소망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날이 우리 삶에 더 많아지기를. 또, 한낱 모래알 하나도 다르게 빚어주신 하늘의 뜻에 감사하며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맘껏 누려보기를.

거세지는 북풍 속에서도 모두 다르기에 서로에게 유익이 됨을 알아가는 따뜻한 날들이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테다. 오늘의 모든 다름을 축복하며.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취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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