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책 속 명문장]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12.12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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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기후 위기에 이어 신종 전염병의 출현까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전 지구적 변화가 연이어 나타나는 시기가 분명해졌다. 인간의 시대, 인류세가 명징해진 것이다. 인류세의 기점으로 유력한 1950년대까지 가지 않고 2019년 이후에 일어난 변화들만 놓고 보아도 세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기후 위기는 더 심각해졌고, 금방 종식될 줄 알았던 전염병은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포장재 소비는 늘었다. 그런데도 인간의 지구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은 답답한 수준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지구적 문제 앞에서 갈라파고스라도 되는 양 사회 분위기가 무덤덤하다. <8쪽>

‘인류세’는 그런 단어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의 우선순위를 뒤바꿀 수 있는 소행성 같은 존재. 대한민국이라는 신흥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당신이, 실은 인류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고, 그 문명과 시스템은 이 지구라는 행성을 소행성 충돌과 같은 거대한 힘으로 파괴하는 중이다. <16쪽>

기후 위기가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이면 서사가 달라졌을까? 미세먼지와 황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런 의심을 하게 만든다. 누런 공기 입자가 내 눈앞에 보이고 저게 내 폐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서, 위험성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지자체, 국가뿐만 아니라 중국 같은 인접국에도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적극성을 발휘했다. 미세먼지와 황사 또한 탄소 발생과 사막화로 인해 벌어지는 지구의 위기 중 일부인데, 눈에 보인다는 이유로 기후 문제와는 대응의 수준이 다르다. 원인은 같은데 반응은 다르다. <44쪽>

김형준 교수는 그것을 ‘재난의 일상화’, 다른 말로 ‘비정상의 일상화’라고 부른다. 비정상의 일상화라. 두려운 말이다. 정상이 아닌 것이 정상이 되는 시대. 그 말을 과학자의 입을 통해 들으니 섬뜩하다. 그의 연구팀과 슈퍼컴퓨터는 계속 섬뜩한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 24시간 가동 중이다. <54쪽>

더위를 피한다는 뜻의 피서(避暑). 폭염과 열대야의 증가로 인해 고전적인 피서가 집에서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즐기는 ‘홈캉스’나 가까운 도심 호텔 방에서 예상 가능한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로 바뀌고 있다. 공기가 서늘한 자연환경으로 이동하지 않고 공기가 쾌적한 인공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피서의 형태가 전환됐다. 인간이 내뿜는 온실기체가 지구의 공기 조건을 뒤흔들며 더 강하고 긴 폭염이 오고 있는데, 이에 대항해서 인간은 더 많은 온실기체를 배출하는 것이다. <72쪽>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막아 인류에 희망을! 코펜하겐은 그렇게 희망의 땅 ‘호펜하겐’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각국 정상들이 모이자 국가별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협상장에 등장했다.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당초 목표한 협약은 무산됐고, 반대를 뜻하는 노펜하겐(NOpenhagen)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때 됐어야 했는데…. 될 것처럼 흘러가다 막판에 안 되는 바람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실망했어요. 결국 2015년에서야 그때 하기로 한 게 파리에서 체결됐죠”
2009년에서 2015년으로. 이 긴급한 시대에 6년의 시간이 그렇게 허비됐다. 그때 6년을 아꼈다면 지금의 기후 위기가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그때 어른들이 뭔가를 보여줬다면 2018년에 스웨덴의 15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어른들을 비난하면서 등교 파업에 나서지 않았을 수도,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기후 행동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102쪽>

[정리=한주희 기자]

『우리에게 남은 시간』
최평순 지음 | 해나무 펴냄 | 260쪽 | 1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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