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에는 항상 중요한 키워드로 ‘연대’를 꼽는다. 물론 어떠한 상처를 극복하는데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우선이겠지만 거기엔 늘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와 연대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고 그것을 또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데까지 이르러야,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잘 받고 잘 준다’라는 말처럼 내가 받은 호의를 다시 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게 성장소설의 특징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완벽이 온다』는 그룹홈에서 만난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다. 민서, 해서, 솔은 열여덟이 되자 그룹홈을 떠나 떠밀리듯 사회로 나간다. 가진 거라곤 자립 준비금으로 받은 오백만 원이 전부다. 이들이 독립 후 자립하는 일은 순탄치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과정을 겪는다. 개개인이 짊어지고 있는 짐과 처한 상황까지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바닥이 있더라. 이것보다 더 바닥도 있을까 봐 사는 게 너무 무서워.
관계의 어려움, 비전없는 직업, 경제적 빈곤 등 자립준비청년들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어린 시절 관계 속에 남아있는 트라우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민서와 해서, 가정폭력으로 떠밀린 솔이. 트라우마는 여전히 잔재해 각자의 삶을 꿈꾸고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민서는 “나는 아빠와 닮지 않기 위해 아빠가 해 온 모든 것들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아빠가 살던 방식과 최대한 멀어지려 한다. “난 엄마처럼 살기 싫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게 내 소원이야”라고 말하는 해서는 완벽한 가정을 이뤄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한다. “다들 아빠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는거 같아”라고 말하는 솔이는 불행은 한때였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은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어설프게나마 서로를 위하고 연대하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꽤 멋져 보이기도 한다.
나는 솔 언니와 해서 언니를 끊어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두렵다는 이유로 사람을 끊어내는 게 아빠 같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부질없더라도, 다시 상처받더라도, 결국 실패하더라도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느슨하게 이어진 관계가 핏줄로 촘촘히 연결된 관계보다 더 끈끈할 수 있을까? 소설은 갈수록 진심에서 멀어져가는 우리 시대의 가족관계, 그 역할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소식, 그리고 무늬만 가족관계에 지나지 않은 가정들을 보면서 결코 정형적이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완벽이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완벽이를 마주하는 일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해서의 아이는, 나아가 다음 세대는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내가 겪은 상처를 대할 때 ‘너도’가 아니라 ‘너라도’라는 마음으로 연대한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자립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자립은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으며 삶을 꾸려나가는 것, 서로 부족한 면을 채우며 함께 서는 것이라고.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