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 줄곧 이런 소리를 들었다. “쉰 살이 되면 보일 것입니다.” 나는 쉰 살이 되었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에릭 사티,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中
‘에릭 사티’는 한국인에게 그다지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서른 개의 글귀를 담은 책 『에릭 사티,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가 한국에 출간됐다. 어딘가 건조하면서도 예리하고, 느슨한 듯하면서도 질긴 시선으로 사물과 세상,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에릭 사티는, 분명 일부에서는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먼저, 그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짐노페디’ ‘가구 음악’ 등의 곡을 남겼다. 들어본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익숙한 음악들이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벨 에포크 시대에서 활동했으며, 드비쉬와 많은 영향을 주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력보다 더 분명하게 그를 알 수 있는 말들이 있다. 괴짜, 이단아, 기인이다. 그는 선천적인 반골 기질의 소유자였다. 풍자와 해학을 사랑했고 음악과 글을 사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아카데믹한 음악에 반감을 가졌고, 생계를 위해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정통파들은 그를 두고 “음악의 격을 떨어뜨린다”며 비판했지만 사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런 반응들을 재료로 삼은 작곡가였다. 고전주의 작곡가 클레멘티의 소나티네 작품 36의 1번을 패러디한 ‘관료적인 소나티네’가 바로 그 예시다.
에릭 사티의 또 다른 곡 제목을 보자. ‘차가운 소곡집’ ‘엉성한 진짜 변주곡-개(犬)를 위하여’ ‘말의 옷차림으로’ ‘바싹 마른 태아(胎兒)’…. 악보에 표기된 지시어는 또 어떤가. ‘안단테’ 같은 것들이 써 있어야 할 자리에 ‘치통을 앓는 나이팅게일처럼’, ‘매우 기름지게’라고 표현했다. 요즘 말로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고서야 달리 표현하거나 해석하기 어렵다. 추상적이라거나 모호하다는 말도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차라리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인간을 알면 알수록 개가 좋아진다.”
사티가 죽기 전까지 친동생을 포함해 누구도 들이지 않은 집에 추위에 지친 들개들은 묵고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짧은 글귀 하나에 이런 뒷이야기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지은이 ‘시이나 료스케’의 정성 덕분이다. 일본의 음악학자 시이나 료스케는 사티가 남긴 서른 구절의 말을 포함해 그의 음악까지 이해하고 더욱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텍스트로써 이 책을 엮었다. 하지만 자신의 해석이 아니라, 사티의 해석과 사티의 주파수를 찾기 위해 그에 관한 대부분의 문헌을 읽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는 자제하고 있다. 다만 조심스럽고 사려깊게 추정할 뿐이다.
“예술에는 ‘진리’가 없다고 나는 항상 이야기 해왔으며, 내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이야기할 것이다.”
역사 속의 괴짜 예술인이나 천재를 우리는 더러 알고 있다. 실존 인물도 모자라 캐릭터도 만들어 낸다. 모차르트‧에디슨‧이상‧셜록‧그루누이…. 그들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영감과 즐거움이 무엇이기에 이렇듯 끊임없이 다양한 모양새의 해석본이 탄생하는 것일까. 이는 사티의 임종을 지킨 다리우스 미요의 아내, 마들렌 미요의 증언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종잡을 수 없지만 모종의 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그의 모든 행동은 논리적이었습니다. 극단으로 치달은 논리일지언정 말입니다. 냉정하게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시대의 관습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