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세상에 아름답게 맞서기…연극 ‘선인장 키우기’
부당한 세상에 아름답게 맞서기…연극 ‘선인장 키우기’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1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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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를 코피노라고 부릅니다.”

연극 <선인장 키우기>는 코피노 ‘준희’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관객은 준희가 코피노라서 겪는 일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무슨 책 읽어?” 다음 장면에 같은 반 친구 김이 등장하고, 그는 준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준희는 그런 김을 귀찮아한다.

김이 준희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코피노라서가 아니다. 자신과 달라서일 수도 있고, 비슷해서일 수도 있고 둘 다여서 일수도 있다. 어쩌면 김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모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 없는 것 처럼. 이렇게 코피노라는 정체성은 준희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준희를 타자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우리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다 준희와 김은 시험지 유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공부하느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던 두 사람은 학원에 돈을 받고 시험지를 훔쳐다 줬다는 누명을 쓴다. 학교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경비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준희와 김 탓으로 돌린다. 김은 억울해하지만, 준희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라며 어른들의 지시를 순순히 따른다. 체념했다기보다는 달관한 태도로. 그리고 김을 부당한 세계에서 불가해한 세계로 이끈다.

“지구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냐고. 지구의 자전, 맨틀의 대류, 지각 판 이동 그런 거! (…) 그렇게 당연한 것도 난 지금 아무것도 증명할 수가 없잖아.”

준희 역을 맡은 배우 박해용과 김 역을 맡은 배우 김나온 (왼쪽부터) [사진=이츠라이크컬쳐 인스타그램]

‘부당하다’는 ‘옳지 않다’는 뜻이고 ‘불가해하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들은 부당한 세계에 맞서지 않고 불가해한 세계로 떠나기를 택한다. 부당한 세계에서는 이해받지 못해 화가 나지만, 불가해한 세계는 이해하지 못해서 아름답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는 그 순간 교실을 박차고 광활하고 신비로운 우주로 떠오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해 할 수 없는 부조리로 꽉 찬 세상을 견디게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인 세상이다.

“별을 보려면 어둠에 익숙해져야 해”

마지막 장면에서 준희와 김은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본다. 곧이어 별똥별이 떨어지고 두 사람은 황급히 소원을 빈다. 김은 선인장이 잘 자라기를… 준희는 혹시라도 유성이 떨어진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 떨어지기를… 선인장이 꽃을 피울지 안 피울지, 유성이 어디에 떨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뿐. 그래도 두 사람은 세상을 포기 하지 않는다. 별을 보기 위해 어둠에 익숙해지듯,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간다. 무력하지만 아름다운 둘만의 방식으로.

연극 <선인장 키우기> 무대 [사진=이츠라이크컬쳐 인스타그램]

연극 <선인장 키우기>는 문화예술 프로덕션 이츠라이크컬쳐가 창단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극이자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이다. 11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소극장 혜화당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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