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팔판동에 있는 호젓한 한옥 ‘호호재’(蝴蝴齋). 볕이 잘 들고 나무 향이 감도는 이 아늑한 곳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작가 7인의 작품이 펼쳐지고 있다. 회화, 조각, 설치, 가구, 도자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 공간의 주인이자 전시 <관계로그>를 총괄 기획한 한정현 작가는 지난달 30일 프레스 데이를 열고 호호재에 얽힌 추억을 들려줬다. 그는 “사실 이곳은 저희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터전이다. 제가 20여 년 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을 때 무언가를 해보라며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호호재의 호는 ‘나비 호’자이다. 어머니가 미술에 열정적이셔서 외국 할머니께 ‘버터플라이’라고 불렸는데, 어머니의 별명에서 따왔다”고 말했다.
‘호호재’는 한옥의 현대적 변화를 추구해 온 구가도시건축 대표 조정구 건축가의 손길에 의해 새롭게 단장했다. 한정현 작가는 “그동안 잘 운영하다 작년에 요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신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공사를 했고, 준공 승인이 나자마자 전시를 열게 됐다. 마침 내년이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호호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각양각색의 도넛들이다. 이 도넛은 반짝이는 페인트를 입히고 화려한 글리터와 크리스탈로 장식한 ‘맛있는’ 세라믹 조형물이다. 김재용 작가는 2008년 개인적으로 우울했던 시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운지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세라믹으로 제작한 도넛 조형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왼쪽으로 이동하면 자개장의 문짝을 세로 방향으로 조각내어 목재에 채워 넣은 가구가 보인다. 한정현 작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개장을 창의적으로 새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고전적 가구 디자인 문법을 초월하는 자신의 스타일을 더했다. 전통과 비정형성이 공존하는 이 작품에서 소리 없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2층을 둘러보는 것도 놓쳐선 안 된다. 서울 신라호텔 로비의 아름다운 샹들리에로 잘 알려진 박선기 작가가 이 공간을 위해 특별히 맞춤 제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니 말이다. 가공한 숯 조각을 투명한 줄에 이어 붙여 물방울 형태의 샹들리에를 완성했다. 기와지붕 위로 늘어선 가로수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지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경계에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최종 3인 후보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린 산업 디자이너 잭슨홍, 대담한 색채와 화면 구성의 페인팅으로 주목받은 작가 정영도,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감성을 담은 작품을 선보여온 도예가 이혜미, 전통적 단조 기법을 이용한 공예 작업과 금속 조형 작업을 동시에 모색하며 넓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김영옥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컨템퍼러리 아트 작품들이 호호재에 모여 새로운 관계를 맺는 전시 <관계로그>는 12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전시된다. 별도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휴관일인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된다.
한편, 전시 종료 후 호호재는 각종 클래스 및 예술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공간 임대 문의는 체어스온더힐을 통해 할 수 있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