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 “내게 글은 어쩌다 보니 아직 쓰는 것”
위근우 “내게 글은 어쩌다 보니 아직 쓰는 것”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12.01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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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의 문장이 공들여 깎은 연필처럼 뾰족한 이유는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면, 책, SNS에서 대중문화, 정치적 사건, 일상에 스민 성차별 등 구체적인 문제를 구체적인 글로 풀어낸다. 논의가 구체화 될수록 틀릴 확률도, 공격받을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주저하지 않는다.

혼탁한 언어를 걷어내고 본질에 가닿으려는 부단한 시도. 첫 에세이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에도 그 흔적이 녹아있다. 이번엔 외부가 아닌 내부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인정 욕구, 직업윤리, 분노, 정치적 편향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떤 인과를 부여해 깨달음이나 교훈을 도출하려 하지 않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오래된 격언은 그의 인생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삶은 그저 파편화된 경험들이라며 그 단단한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놓을 뿐이다. 그중 몇은 반짝이고 더러 흙이 묻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진짜다. 지난달 2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칼럼니스트 위근우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위근우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위근우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Q. 첫 에세이입니다. 17년 동안 글을 써오셨는데 ‘이제야?’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 기회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계획은 딱히 없었어요. 처음엔 글쓰기 작법서에 가까운 느낌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쓰다 보니 제가 예시만 바꾸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뭐가 문제지? 고민했는데 글의 형식에 대해서만 얘기하려다보니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려면 나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 설명이 될 것 같았어요. 일단 대학 시절 대중문화 평론가가 되겠다고 했던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하니까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쓰기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나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고 어떤 고민들을 거쳤는지 얘기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글 쓰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에세이가 된 거죠.

Q. 지금까지 에세이를 낼 생각을 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내 얘기 누가 재밌어하겠나 라는 생각이 가장 컸고요. 무엇보다 저는 지나간 일들에 대한 저의 기억력을 믿지 않아요. 어떤 일이 있었지 라며 회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당 부분이 자기 위주로 편집되잖아요. 결국 에세이를 쓰다보면 과거의 경험을 서사화하게 되는데 불확실한 기억들을 어림짐작으로 채워 넣으려니 미화와 왜곡이 생길까봐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에세이를 쓰면서 에세이스트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수십 번 했습니다.

Q. 그래서인지 이번 에세이에서 시시콜콜한 일상,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의 다루지 않아요.

제 일상이라고 해봐야 늦잠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스포티비온 틀어놓고 커피 마시면서 NBA 하나 안 하나 보는 건데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친구랑 겨울이라고 굴보쌈 먹으러 종로 가는 걸 좋아한다. 물론 이런 취향과 삶의 모습은 있죠. 그런데 그걸 굳이 쓸 이유도 없지만 독자도 굳이 읽을 이유가 없잖아요. 일부러 숨기는 게 아니라 대단할 게 없어서 그래요.

Q. 글쓰기에 전환점이 된 사건이나 사람도 없었나요?

2008년 대중문화 비평 웹진 매거진t에서 개최한 TV평론 공모전에서 수상해 대중문화 전문기자로 일하게 된 게 굵직한 커리어 전환점이 되긴 했죠. 그때 글쓰기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백은하, 강명석 선배를 만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건 제가 인생을 바꿀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직전 공모전처럼 가작을 뽑지 않았다면 지금 제가 뭐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죠. 가능한 건 삶이 던지는 우연한 경험들 안에서 당장 안 넘어지려 아등바등 노력하는 거라고 봐요.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듯 성장이라는 것도 다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해요. 백은하, 강명석 선배가 해 준 말이 가슴에 탁 꽂혀서 글이란 이런 거구나 각성한 게 아니라, 원고를 쓰고 깨지고 고치고 깨지고 다시 쓰고 하다 보니까 서서히 감을 잡게 된 거지 인생을 바꾼 에피소드가 있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거든요. 누구든 뭔가에 숙련되는 과정은 대부분 그럴 거예요.

Q. 책에서 글 쓰는 이유에 대해 “언어를 통해 세계를 나의 관점으로 재조립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본인의 삶이 재구성되는 것은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삶이란 건 파편적인 경험들인데 글로 쓰면서 서사가 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인접했을 뿐인 사건도 인과관계를 부여해 재구성한다면 실제 경험과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제 실제 삶보다 그럴싸하게 재구성된 서사를 스스로 믿어버리게 될까봐 지레 걱정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저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위근우 작가가 독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위근우 작가가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출간을 기념해 독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Q. 2017년 2월에 아이즈에서 퇴사하실 때 당시 편집장이었던 강명석 선배로부터 “근우 씨, 유명해지세요”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하셨어요. 그 말대로 5~6년이 지난 지금, 인스타그램 팔로워 9만 7000명, 트위터 팔로워 5만 3000명을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되셨어요.

당시에는 단순히 덕담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생존에 대한 충고였어요. 실제로 현재의 주목 경제에선 관심을 받는 것이 무척 중요해졌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허명과 악명이 조금 늘었을 뿐이죠. 그것들을 명성이라 쳐도 먹고 사는 일에 여유를 줄 정돈 아니니까요. 팔로워가 왜 늘었는지도 여전히 모르겠고요. 그럼에도 글을 올리면 여기저기 퍼지니까 책임질 일은 많아졌다고 봐야죠.

Q.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면 후련하다는 반응이 많아요. 불편한데 왜 불편한지 설명할 수 없을 때 두루뭉술한 생각을 날카롭게 다듬어 주시니까요. 어떻게 하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나요?

날카롭다 뾰족하다 라는 것들은 사실 구체성인 것 같아요. 구체적인 사안에 접근하면 언어도 구체적으로 될 수밖에 없거든요. 예를 들어 ‘차별은 나쁘다’라는 원론적인 맞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이것이 차별이냐 아니냐’부터 시작할 것이고 그 사건에 밀착될수록 언어는 구체성을 띨 거예요. 그러니 필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문제의식이라고 봐야죠. 그래야 내 사유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어휘를 찾을 테니까요. 그러다 막히면 책이라도 찾아보며 공부할 테고요. 이런 과정이 작문 테크닉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쓸수록 틀릴 확률도 공격받을 확률도 높아진다고 하셨는데요. 가끔은 위험부담을 내려놓고 안전하고 편한 길을 택하고 싶으실 때는 없나요?

칼날 위를 걷는 정도는 아니지만, 제가 종종 누군가를 화나게 하긴 하죠. 저에게 화난 사람들이 항상 틀린 것도 아닐 거고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잘 쓰고 있다는 증거일 순 없겠지만, 잘 쓰고 있다면 당연히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언어가 현실의 구체적 대상을 지시할수록 그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지닌 이들과 부딪힐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안전하고 편한 길 대신 어려운 길을 걷는다기보다는, 세계에 밀접한 글을 쓰면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법을 모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갈등이 더 생산적이길 바랄 뿐이죠.

Q. 원고를 완성해 담당자에게 송고한 뒤부터 지면에 게재할 때까지 ‘쫄려 있다’고 하셨어요. 사실 후폭풍이 있을 것 같으면 안 하면 되는데, 안 하는 게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건 작가님이 가지고 계신 어떤 기질 때문인가요?

최근 경향신문 칼럼에서 박진성 시인의 형사 2심 유죄와 함께, 그를 성범죄 무고의 아이콘처럼 활용한 이들을 다섯 명이나 실명 비판했었는데요. 원고를 송고하고 꽤 전전긍긍했습니다. 그 얘길 못할 거면 그냥 다른 주제를 썼어야 했겠죠. 그런데 다른 주제 중에 그 주간에 그 지면에 제가 쓰기에 딱 적절한 뭔가가 떠오르진 않더라고요. 종합일간지의 지면이란 일종의 공적 공간인데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공적 가치가 있는 글감을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누구는 신문 한 줄에 자기 사연을 올리기 위해 고공 농성을 벌이는데, 격주로 20매 가까운 지면을 허락 받으면서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 주제로 글을 쓸 수는 없잖아요. 용기나 고집 같은 기질 보다는 지면에 대한 책임감에 가까울 듯합니다.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위근우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위근우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Q. 팔로워, 고정 독자들과 강박적일 만큼 거리 유지를 하고 계세요. ‘여러분’ 같은 말로 호명하지도, 댓글에 개입도 하지 않으시고요.

제 구독자 중 상당수는 저보다 젊은 분들인데 사십대 아저씨가 그걸 사적 친근감이나 호감 같은 걸로 받아들이고 소통을 시도하면 징그럽지 않을까요? 구독자의 거리를 느슨하게 두다가 정신 못 차리고 셀럽놀이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저는 저 자신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Q. 공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만큼 사적인 관계를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아요.

저의 SNS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적인 관계는 거의 드러내지 않아요. 배우자와의 관계가 언제나 제 삶의 1순위고, 우리만의 아늑한 공간을 남에게 노출 하고 싶지 않아요. 또 제가 친구가 많이 없어요.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구랑은 한 달에 1~2번은 만나거든요. 그 친구는 제가 뭘 하는지 전혀 관심 없어요. 제 인스타그램을 보고 네가 뭔데 팔로워가 이렇게 많냐고 해요. 그냥 같이 술 먹으면서 실없는 농담하다가 코인노래방 가고 그래요. 반대로 문화계 인사와 교류한다거나 그런 것도 없고요.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웬만하면 구분하고 싶어요.

Q.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기만을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자아성찰을 하시는 건가요?

사실 배우자와의 사이가 되게 좋고 대화가 잘 통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이 시기에 조심할 건 무엇인지, 어떤 함정에 빠질 수 있는지와 같은 주제로 흘러가요.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저러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사례들이 차고 넘치기도 하고요. 따로 시간을 내 자아성찰을 한다기보다는 미리 조심하자는 주의인 거죠. 말씀드렸듯, 저는 저 자신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언제 실수하냐면 스스로 충분히 성찰하고 있다고 착각해 자신감에 차 있을 때예요. 그런 자신감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Q. 거리 유지하느라 팔로워와 고정 독자들에게 표현하지 못하셨는데, 마음 한편에 늘 고마운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자리를 빌려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제 어떤 면을 좋게 보시는지 저는 여전히 잘 몰라요. 살던 대로 살다가 이렇게 된 거니까요. 그분들이 저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실망할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적어도 위근우의 글을 읽는다고 했을 때 그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르잖아 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제 글을 읽어주시는 일이 부끄럽거나 민망하지 않도록 수신(修身)하며 살겠습니다. 이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Q. 책에서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하셨어요. 그럼에도 굳이 쓰겠다는 그 마음에 대하여 말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내셨고요. 그 마음은 계속 이어질까요?

글을 쓰게 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출발점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그건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었고요. 그런데 그 마음은 그냥 제가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 마음을 유지하려고 특별히 노력할 것 같지는 않아요. 만약에 더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졌다면 의무감을 가지고 쓰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글쓰기는 제 삶의 일부일 뿐이에요. 제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저의 본질도 아니고요. 저에게 글이라는 건 아직 쓰는 거예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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