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친구의 이사를 도우러 갔다. 새집에 들여온 짐들을 정리하는데 낯선 언어가 들린다. 돌아보니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가 이삿짐을 나르고 있다. 자주 가는 식당에는 서툰 한국어로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있다. 알고 보니 그 식당 사장님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베트남 아주머니였다. 이제 한국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이주민은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다.
한 번도 이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개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사랑과 학업을 쫓아 생면부지의 곳에서 삶을 이어 간다. 기자의 고향은 전주이지만 현재 사는 곳은 서울이듯이. 이는 여러 국가에서 온 이주민의 삶과 꽤 닮아있다.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는 이주노동자, 이주 배경 청소년, 귀화이주민 등 ‘이주’라는 공통의 배경을 가진 스물네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이주민의 삶을 증언하고 재현한 게 아닌, 이주민 당사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직접 발언하고 기록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 이주민들이 마냥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한다.
너 그거 몰랐어? 주민번호 같은 거 우리는 없어. 우리는 몰래 사는 거야.
책에 등장하는 이주민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등록’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주민 문제는 모두, 분명히 존재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누군가의 삶에서 비롯된다. 떳떳하게 등록을 안 하고 왜 미등록으로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등록’으로 가는 통로는 너무 좁다. 노동자들은 정규적인 절차를 거쳐 기업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아동들은 한국에 태어났어도 6~7년은 거주해야 한다(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15년이었다). 또 누군가는 한국인한테도 어려운 한국어 시험을 고득점으로 통과해야 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생긴다. 지금 당장 길을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저 멀리 있다면 대다수는 무단횡단을 한다. 그런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면, 횡단보도를 새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가 회사를 옮기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는 겁니다. 고용주가 계약을 해지해 줘야만 노동자가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를 찾을 수 있다니, 말도 안되죠.
고용노동부는 지난 1일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송출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주민의 수가 많아지자 20년 전에 설계된 고용허가제 원칙을 재검토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12만 명까지 늘어난 외국인 고용 한도를 내년에 더 키운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노동력을 더 내놓으라는 아우성에 정부는 다급한 모양이다. 국내 거주 이주민 200만 명. 전체 인구가 5,100만 명이고 취업자 수가 2,800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이주민과 공존하게 되고,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놀라울 만큼 변했다. 고용허가제를 처음 설계하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인구 소멸’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마주한 세상이다. 그런 지금, 눈에 보이는 차별을 이용해 값싼 이익을 만들어내던 제도를 여전히 고집하면 곤란하다.
한국도 우리 노동력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좋은 시민이 되고자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등록 이주민들을 내쫓아 낸다면 그 일자리에는 한국사람이 가서 일하는 걸까? 아니다, 그 일자리는 본래부터 한국사람이 꺼리는 곳이다. 일할 사람은 내쫓고,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공장과 농장들은 누구의 일손으로 굴러갈 수 있을까. 저자는 사회를 함께 책임질 구성원을 어떻게 초대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을 빼놓고 ‘노동력만 도입’할 방법은 없다는 건 이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웠다.
‘저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인권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정말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인권이 보장된다면 당연히 나의 인권도 보장되는 거고 내가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납작하게만 인식되었던 이주민의 존재를 입체화시켜 내 앞으로 쭉 당겨보자. 남의 얘기가 아니라 결국 우리의 이야기다.
이주민을 포함한 공정한 사회를 이루느냐, 이주민과 더불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느냐 여부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거예요.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