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어떻게 살까. 방 안에 콕 박혀 밥 한술 뜨지 않고 글만 쓸 것도 같고, 구름 위에 서서 인간계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도 같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기사식당 저 한 편에서 아침 6시쯤 콩나물국에 소주를 마시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궁금증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최근에는 원로시인부터 젊은 시인들까지, ‘방’을 나와 대중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몇 해 전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친근한 매력을 보여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구절을 쓴 주인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자존심은 높지만 자존감은 낮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집에 와서도 자존감을 찌그러트리지 말자는 그의 말에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이들을 향한 진심이 담겼다. 나태주 시인이 나온 방영분의 동영상 클립은 여전히 ‘핫클립’ 중 하나다. 우리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착한 어른’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므로.
‘섬진강 시인’이라고 불리는 김용택 시인은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에 시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서정시의 대가이기도 한 김용택 시인은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로 유명한 사랑시를 썼다. 이 책과 시의 구절은 MZ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용택 시인은 홀로 섬진강에 머물고 있는데도, 그의 시구절을 따라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겪고 있는 중이다.
신달자 시인도 지난 6월 매거진 ‘엘르’에 화보를 공개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80세를 맞아 이제야 자신의 몸을 마주했다는 시인은 화보 사진을 통해 “육신과의 화해”를 시도했다고 전했다. 시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늙은 몸을 마주한다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 그러나 새로운 일. 여든을 맞은 여성 시인의 이 고백은 ‘늙는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럽다고만 할 수 있는 일인지, 늙음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화두를 던져준다. 이 역시 시인의 용기 덕분이다.
젊은 시인들은 보다 적극적이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쓴 박준 시인은 조현철 감독이 연출한 영화 ‘너와 나’에 특별 출연해 연기를 펼쳤다. 이후 GV 등 영화 관련 행사에도 참석했다. 황인찬 시인은 LG유플러스와 협업해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면서 시집 시장도 함께 경직됐지만, 놀랍게도 시집의 판매율은 높아지고 있다. 2022년 교보문고에 따르면 최근으로 올수록 20대 여성의 시집 구매율이 높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 시집 판매율을 갱신하기도 했는데, SNS에 올릴 수 있는 짧으면서 감성적인 시의 구절을 보고 시 자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 것일 수 있다.
시인들이 방을 나온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일반인이든, 공인이든, 연예인이든 누구나 가감 없이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는 ‘비신비주의’ 흐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시인들이 가진 일종의 책임감 때문일 수 있다. 시인들은 이 작지만 분명한 시집 시장의 부흥을 견인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MZ세대와 소통할 수 있도록 얼굴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가장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을 동시에 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세계에 관한 태생적인 책임감을 타고난 것 같다. 독자들도 용기 있게 방을 나온 시인들의 손을 반갑게 잡고 인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보기 좋은 일이 있을까.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