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아름다움은 하나 밖에 없지만 추(醜)함은 무수히 많다: 노춘성, 「꽃 지기보다도」
[시민 시인의 얼굴] 아름다움은 하나 밖에 없지만 추(醜)함은 무수히 많다: 노춘성, 「꽃 지기보다도」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3.11.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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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나 없는 동안에 그 이는 와서

책상(冊床)위 파란 유.리.병 위에

장미(薔微)를 꽂고 갔더랍니다.

그러나 내가 돌아와 볼 때

꽃은 아직 웃고 있으나

그 이는 벌써 갔더랍니다.

아, 오기는 더디고 가기 빠른

그대의 짧은 생명(生命)의 자취!

꽃 지기보다도 더 속히 지는

그대의 자취는 어디로 가나?

-노춘성, 「꽃 지기보다도」

아름다움은 하나 밖에 없지만 추(醜)함은 무수히 많다

노춘성을 아시나요? 본명은 노자영입니다. 시를 쓸 때는 춘성으로 다른 글을 쓸 때는 자영이랍니다. 그를 문학사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온갖 악플 세례를 받은 셀럽입니다. 1920년대 춘원보다도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으니까요. 그가 쓴 연애 편지글 「사랑의 불꽃」이 실로 날개 돋친 듯 팔렸으니까요. 당시 조중곤이라는 사람은 이런 악담을 했지요. “의지가 박약한 소년소녀의 코무든 돈을 글거 먹는 문사(蚊士)”라고, ‘문(蚊)’이 모기이니 당시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는 글쟁이라 몰아붙인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춘성은 고아였습니다. 성격도 편벽돼 사람을 멀리하고 홀로 고독하게 지냈습니다. 그런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일까요.

시 「꽃 지기보다도」는 1928년 두 번째 시집 『내 혼이 불탈 때』에 실린 시입니다. 첫 번째 시집이 우리나라 낭만주의의 새로운 구경을 열었지만 현실을 담지 않았다는 비판을 들었습니다. 이 시는 사랑에 대해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네요. ‘파란 색’은 서구 낭만주의의 상징입니다. 자연 속에서 거침없이 자아를 펼치는 모습이지요. 삶은 유한하고 짧기까지 합니다. 사랑도 그럴 것입니다. 나고 든 흔적을 어디서 찾을까요. 사랑은 ‘그 이’가 꽂아 두고 간 ‘장미’에 온전히 남았네요. 춘성도 1940년 폐결핵을 앓다 돌연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 남짓 살았는데 그의 향기는 좀체 찾을 수 없네요.

이런 춘성을 생각하면 김종삼 시 「장편」에 나오는 소설가 방인근이 떠오릅니다.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늙은 몸으로 생계를 챙겨야 하는 처지가 핍진하게 담겼습니다. 특히 잡지사에 들러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원고료를 받아들고 조금 경련을 일으키는 그의 손이 잊히지 않습니다. 노춘성과 방인근은 친구 사이입니다. 노춘성이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름다움은 하나의 유형밖에 없지만 추(醜)한 것의 유형은 무수히 많다”고 빅토르 위고가 『크롬웰 서문』에 서 말합니다. 춘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아름다움에 경도된 채 다른 곳에 눈길을 두지 못했습니다. 시민의 삶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질시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한 가지로 묶여 있지는 않습니다. 낭만주의의 원천이 자연처럼 자유롭습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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