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가 2023년에도 ‘통하는’ 이유
쇼펜하우어가 2023년에도 ‘통하는’ 이유
  • 한시은 기자
  • 승인 2023.1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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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유명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현하면서 ‘미디어셀러’로 낙점됐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물론 미디어의 힘은 강하다. 예스24에 따르면 11월 3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강용수 작가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차지했다. 쇼펜하우어 소품집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6위,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9위에 올랐다. 교보문고도 마찬가지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62계단 상승해 종합 6위에 올랐다.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철학자로, 니체를 철학의 길로 이끌고 헤르만 헤세와 톨스토이 등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꾸준히 책이 출간되고 있으며 그만의 객관적이면서도 냉철한, 유머 있는 격언과 조언은 특유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대표적인 염세주의자로 꼽히기도 했지만, 최근 국내에서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위 ‘팩폭(팩트폭격)’을 날리는 철학자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사실과 현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욕망)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능력)을 분별하는 자기 인식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中

백세시대. 인생의 분기점인 40대를 앞두고 누군가는 자신이 일군 절반의 삶에 만족할 수 있지만 아마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위기의식을 느끼는 40대라면 버거운 긍정의 힘도 아닌, 무기력에 빠지는 염세주의도 아닌, 쇼펜하우어식의 효율적이고 실존적인 인생철학을 배워야 할 때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 가치 있는 이유다. 쇼펜하우어도 실제로 40대에 들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그를 통해서 더욱 진실한 ‘나이 듦’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와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에서도 쇼펜하우어의 냉철한 격언과 진리 추구는 이어진다. 사람들이 ‘행복’을 삶의 목적에 두고, 행복한 상태를 기본값으로 생각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여기에 반기를 든다.

그에 따르면 “행복한 삶에 끝없이 집착하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행복한 생활 자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행복의 진짜 의미는 ‘덜 불행함’이라고 말하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주변과 세상에 매우 무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신의 본래 모습 그대로 있을 때는 홀로 있을 때뿐이다. 따라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자유롭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中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인간과 인생을 사랑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해지는 현대인과 달리, 그는 비관 속에 낙관이 있음을 알려주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한 고민 끝에 인생과 인간은 많은 것을 덜어내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절망할 것도 없다는 것을 특유의 유머와 간혹 칼날처럼 비정한 언어로 전달했다.

톨스토이는 쇼펜하우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여태껏 한 번도 몰랐던 강력한 기쁨을 만끽했다”고. 쇼펜하우어가 주는 것은 비관과 염세가 아니라, 우리가 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을 때의 희열과 기쁨에 가깝다. 그는 그 짐이 우리 스스로 진 것이었다는 걸 알려주었을 뿐이다.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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