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어머닌 자식들 실수에도 모른 척 눈감곤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다름 아닌 부엌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다가 여러 개를 실수로 깨트린 적 있다. 그때 어머닌 오히려 그릇 파편에 의하여 내가 다친 곳이 있을까 봐 걱정만 할 뿐이었다. 단 한마디도 꾸중을 안했다. 더구나 그 그릇들은 어머니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예쁜 그릇들이 전부였다.
요즘 구순에 가까운 친정어머니는 코로나19를 앓고 난 후 그 영향인지 폐섬유화가 되어 병마의 고통에 시달린다. 어디 이뿐인가. 노인성 인지저하증도 앓는 중이다. 지난 가을, 어머닌 방안에 놓인 플라스틱 통에 용변을 보고 있었다. 화장실이 코앞인데 어머니의 그 행동에 갑자기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유를 묻자 어머닌 아파트 화단에 심어놓은 꽃에 거름을 주려고 소변을 모으는 중이란다.
어머니의 인지 저하 증세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순간 어머니께, “엄마, 소변을 화단에 주면 악취로 이웃에서 민원이 들어오니 제발 이런 일은 하지 마세요.” 라고 격앙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어머닌 마치 어린 날 부모로부터 꾸중 듣는 어린 아이처럼,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마.”라며 필자 앞에서 두 손까지 모으며 빈다. 그런 어머니 모습을 보자 어머니가 몹시 안쓰러웠다. 폐가 섬유화되어 병원에선 더 이상 손 쓸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시한부 어머니 아니던가.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께 괜스레 심기를 상하게 해드리는 말을 했다는 심한 자책마저 들었다. 뿐만 아니라 종전의 말에 겁먹은 표정으로 두 손까지 싹싹 비는 어머니를 바라보자 살을 저미는 듯 마음이 아팠다. 어린 날 웬만해서 자식들에게 손찌검을 안 한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화에 푹 빠져 만화 가게를 쥐구멍에 생쥐 드나들 듯 뻔질나게 찾았던 필자다. 어느 때는 만화 보는 일에 혹하여 학교도 몇 날 며칠 결석하며 만화 가게를 드나들다가 어머니께 딱 걸렸었다. 그때 어머닌 만화를 본 것보다 학교 간다고 거짓말한 것에 크게 노했다. 그리곤 최초로 필자 종아리를 회초리로 다섯 대나 때렸다. 이때 필자는 지금의 어머니처럼 무릎을 꿇고 다시는 만화 가게에 들리지 않겠노라고 두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었다.
이제는 자식인 필자가 머릿속 지우개를 지닌 어머니 행동을 이해 못한 채 힐책을 한 것이다. 버럭 화를 내는 필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머잖아 필자도 어머니 연령에 이를 것이 아닌가. 암보다도 더 무섭다는 일명 치매에 걸린다면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는 것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크나큰 짐이 될 게 뻔한 듯하여 지레 걱정이다. 사실 인간은 한 치 앞도 못 내다 보잖은가. 더구나 질병과 죽음은 어느 누구도 장담 못한다. 이것 앞에는 나이 및 성별, 사회적 신분도 없잖은가. 평소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필자 곁에 생존해 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머잖아 곁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고 보니 인생이 참으로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염세적인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그토록 복사꽃처럼 아름답던 젊은 날 어머니 모습이었다. 이런 어머니 모습은 간데없고 어느 사이 노쇠한 어머니다. 어디 이뿐이랴. 소심 줄보다 질긴 병마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목전에 둔 어머니 아니던가.
평생을 당신 자식들만큼은 누구보다 반듯하게 키우려고 질곡의 세월을 헌신과 희생으로 맞선 어머니였다. 어쩌면 어머니는 한 인간으로서, 여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꾸린 적이 없었지 싶다. 지난날 단 한 번도 어머닌 화려한 옷차림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디 이뿐이랴. 기름진 음식, 산해진미는 더더구나 맛보지 않았던 어머니다. 자신 위해 쓰는 돈은 단 한 푼일지언정 벌벌 떨었으나 오로지 자식 위해 쓰는 일엔 인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식들 위해 사랑만 베풀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떤가.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득달같이 요양 보호사를 집안으로 부를 것을 논의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식 중 어느 누구 한 명 나서서 직접 모시겠다는 말 역시 아끼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는 부모가 병들면 직접 간병을 하는 자식들이 드물어서 일 것이다.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으로 모시는 게 유행처럼 돼 있잖은가. 그러나 필자는 힘닿는 데까지 어머니를 봉양할까 한다. 지난날 우리 자식들을 온몸에 짊어진 채 역경과 삶의 고통을 헤쳐 온 어머니다. 비록 어머니 병구완과 공경이 힘에 부치더라도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에 어찌 이를 비견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