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책 속 명문장]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11.15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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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엄마는 내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게 얼마나 좋은지 수시로 상기해주었다.
“넌 계약을 더 많이 따낼 거야, 아가. 더 많이 따낼 거라고.”
내가 성장하기 시작하면 엄마는 나를 지금처럼 많이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울면서 나를 꼭 끌어안고 내가 이대로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아이로 계속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1센티씩 자랄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성장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다. <125~126쪽>

아역 스타가 성장하면서 자기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순간, 그들은 미디어의 미끼가 된다. 그저 성장하려고 애쓸 뿐인데 반항적이라느니 문제를 일으킨다느니 학대를 받았다느니 온갖 소문에 시달리게 된다. 성장 과정은, 특히 10대의 성장 과정은 불안정하고 실수투성이다. 그런 실수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테니까.
하지만 아역 스타가 되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 아역 스타라는 자리는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이다. 막다른 골목이다. 내 눈엔 그게 훤히 보였지만 엄마 눈엔 보이지 않는가 보았다. <170쪽>

가끔 엄마를 보면 미운 감정이 들었다. 그러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감사할 줄 모른다고 나 자신을 나무랐다. 엄마가 없으면 나는 아무 쓸모도 없었다. 엄마는 나의 전부였다. 나는 애초에 느끼지 말았어야 할 감정을 꾹 삼키며, “엄마, 정말정말 사랑해요”라고 말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했다. 아주 오랫동안 내 일을 위해, 또 엄마를 위해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다. <171쪽>

양껏 먹고 나서 드는 포만감이 좋았다. 나한테는 참 새로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건 엄마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 드는 죄책감. 엄마가 나한테 실망할 거라는 생각에서 드는 죄책감. 그런데 죄책감이 들면 들수록 더 많이 먹었다. <187쪽>

내 인생의 목적은 엄마를 살리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지만 이젠 허사가 되었다. 엄마에게 집중하며 보냈던 숱한 세월이, 엄마를 가장 기쁘게 해줄 거라고 여겼던 일에 쏟았던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이 죄다 무의미해졌다. 이젠 엄마가 죽고 없으니까. <305쪽>

엄마가 그리울 때면 가끔 이런 상상에 빠지곤 했다. 엄마가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쩌면 엄마가 내게 사과한 후 서로 부둥켜안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약속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내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주고 내 꿈과 희망을 지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음 순간, 내가 그저 남들과 똑같이 죽은 사람을 미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변화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지금껏 살아 있다면, 엄마는 여전히 나를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살도록 조종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415쪽>

[정리=한주희 기자]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제넷 맥커디 지음 | 박미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 420쪽 | 1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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