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와 병영속에 꽃핀 사랑
입대와 병영속에 꽃핀 사랑
  • 이재인
  • 승인 200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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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교수의 문학회고록⑤
 
학내 르네상스에 불붙여
 나의 대학 2년은 가난과 허기의 연속이었다. 일정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하루는 고모님댁, 하루는 친구집, 하루는 절간 또 하루는 큰댁, 또 하루는 이렇게 연속적인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었다. 이러한 삶 속에 머리를 짜내어 고안한 것이 양주동편 국어대사전 한권을 사들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었다.

 내 속을 모르는 학우들은 낱말 공부에 열중하는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내가 친구집에 가서 잠을 자게 되면 베개가 필요했다. 혹시 그 집에서 베개 제공을 해도 높낮이가 맞지 않아 불편했기에 반드시 국어사전을 끼고 다녔던 것이다.

▲ 문학지망생 이재인이 대학때 즐겨 읽던 책

 하루는 학과장 김태균 교수로부터 후배들을 데리고 「경대문학」(경기대) 창간호를 만들라는 권고를 받았다. 필자를 포함, 국어국문학과 이태수·이흥우·송영희가 기획 편집을 하였다. 책을 탄생시킨 우리는 기고만장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가난과 허기 속에 자취방조차도 없어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휴학을 하기 위해 휴학원서를 가지러 학생과에 갔다. 그런데 학생과 게시판에 영남대학교 영남대학신문사 주최 전국 대학생 문예작품 현상 공모가 눈에 들어왔다. 옳지 저놈이나 따먹자……. 나는 이를 사리물고 응모사항을 머릿속에 담았다.

 그리곤 휴학계를 써냈다. 사실 이제 휴학하면 군대에 갔다 와서 다시 대학에 다닌다는 보장도 없었다. 보장이 없는 바에는 큰돈인 영대문학상이나 따먹자 하고 시 3편을 급조하여 투고했다. 정지하와 마포 다락방에서 연구하고 탐색한 작품이었다.

「야, 이정도면 신춘문예 정도 수준이다…….」

 정지하가 칭찬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내가 학업을 포기하려는 눈치를 읽고 있었다.

「자네 입대 전 내가 예산에 한번 갈게. 내 집안조카도 함께……. 그 조카 알지? 찬경이라구 홍대미술과 댕기는 조카 청량사에서 봤던…….」
「좋지! 꼭 와…….」

 나는 입대차 고향에 내려왔다. 물론 정지하가 다녀갔다. 그와 문학적 대화를 나누었다. 헤밍웨이처럼 전쟁에 대해 경험을 살려 글을 쓰도록 권유했다.
 
「영대문화상」에 시 당선과 입대
 논산훈련소에 입대하려고 하는데 영남대학신문사 주최로 공모했던 시가 당선됐다는 통보를 학교측에서 받았다는 소식이 묻어왔다. 학생과장이 연락을 받고 손창수 형이 대신 당선 소감을 썼다는 것이다. 나는 잘 됐다 싶었다. 지금처럼 전화가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당선 소감을 대신 써주었으니 고맙다고 할 수 밖에.

 시상식은 김시한 형과 함께 갔다. 시상식에 가보니 심사위원이 김춘수 조동일 박철희 윤혜승 시인이었다. 내가 당선작이었고 내 밑에 가작으로 둘이 있었다. 아무튼 굉장한 상금을 받아 들고 돌아왔다. 경기대학의 이름을 나름대로 떨친 것이었다.

 군에 입대, 6주 훈련을 받고 나는 부산 통신기지창 본부대에 떨어졌다. 부관학교를 거치지 않았으니 설익은 칠공공 부관, 일반서기병이었다. 나와 함께 부대 배치된 사람이 두 명. 덕산 출신 서정수는 삼촌의 빽으로 방첩대로, 온양출신 생선장수 「황해상회」황의명은 보급반으로, 나는 본부중대 보급반 병기계로 배치되었다.

 병기계는 제대군인과 신입병에게 병기(총)를 보급하고 회수하는 일이었다. 산언덕에 탄약고에서 병기정리를 한 후에는 하루 종일 혼자서 책을 읽다가 지치면 소설을 쓰곤 했다. 이러한 특과가 없었다. 후방이기 때문에 군 생활이 너무 편했다. 내무반 생활도 너무 편했다.

 밤 7시 이후에는 도서반에 가서 책을 골라다 읽거나 책표지, 서문, 발문을 읽는 것이 일과 중에 일과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이었다. 부대 내 여군 한명이 책을 빌리러 왔었다. 키도 크고 인물도 괜찮은 여군이었다. 덧니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욕망 같은 것은 없었다.

「문학을 좋아하시오?」
「?…….」

 여군은 계급이 병장이었는데 나는 일병. 이 일병이 병장에게 하대하는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나중에 그의 고백이었지만 ‘세상에 뭐 이런 작자가 있어? 반말이나 지껄이고…….’라고 어이없어했다는 것이다. 여군은 우물쭈물 했다. 특유의 a의 혈액형인 것처럼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문학 좋아하시는가 본데…. 나는 오영수 선생 박영준선생님의 제자요…….」

▲ 군에 가서 연애하던 애인 장정숙병장.그의 후원으로 「악어새」가 나왔다.


여군 병장을 애인으로
 그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가에서 자기가 읽을 책에 시선을 줄 뿐 나에게 호기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은 된장에 박혀 있다가 나온 무우짱아치. 계급은 한심한 일병. 여군 병장의 눈에 나는 강아지만도 못했으리라. 나는 얼른 병기고로 달려가 내가 신문 잡지에 투고하여 입선했던 종이 쪼가리를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제가 쓴 것인데 한번 읽어보슈. 나 이재인입니다….」

 나는 종이 쪼가리들을 그의 앞에 놓고 돌아서 나왔다. 며칠 후였다. 여군소대 장병장이라는 그가 직접 전화를 했다.

「그것 돌려 드릴려구요…….」
「그럼 밖에서 만납시다. 서면에서….」
「?…….」
「내일 토요일 4시 서면제과 어떠세요?」
「알았어요…….」

 그녀는 a형답게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옳다. 이제 장병장 그녀를 꼬득여보자. 나는 전신에 짜릿한 쾌감이 번져왔다. 아아, 물 찬 제비보다 살찐 중병아리처럼 통통한 그녀. 나는 그날 밤 육군병장 장정숙의 신상을 내무반 부반장에게 문의했다.

「갸, 고등학교 야간 3학년인가 봐. 강화 애라지. 해마다 육본에서 국군의 날에 차출되는 키가 크고. 그 애 아마 애인이 있을 껴…….」

 나는 그가 애인이 있다는 말에 실망을 하면서도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그날 밤 뜬눈으로 지새우면서 가슴을 떨었다. 멋진 여자. 키도 크고 덧니가 매력적이었다. 저렇게 멋진 여자와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에게 보여 줄 것은 오직 대학 다니다가 입대한 것. 그리고 유명한 작가 지망생이었던 것이 전부였다. 가정도 뭣도 내세울 것이 없었다.

 서연 로타리 제과점에 나타난 그녀는 군복이 아닌 사복의 빨간 코트의 단발머리였다. 전날 보다는 웃음기 머금은 것이 반가웠다. 이렇게 어색하게 만나 빵과 우유를 시켜 나누어 먹었다. 그녀의 동의 하에 해운대를 가는 합승을 탔다.

 바람은 찼다. 나는 야전잠바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녀는 싫지 않은가보았다. 냄새나는 야전잠바에는 된장국이나 도루묵국이 떨어져 배인 냄새를 그녀는 인연처럼 싫어하지 않았다. 그와 어깨를 스치면서 두 시간 이상 걸어서 통신기지창 앞에서 각각 떨어져 귀가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랑은 나날이 깊어갔다. 나의 일기 쓰기는 매일 시작되었다. 그 일기장을 며칠 후에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곤 돌려받아 이어 써나갔다. 사랑의 글발이었다. 주말마다 그녀는 사복차림으로 선암사 뒷산으로 영화관으로 시체말로 속화되어갔다.

 그러나 나의 음험하고도 집요한 공략에도 그녀는 자기를 잘 지켜나가는 것이 나는 좋았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녀는 군부대 문관으로 취직해서 고향의 동생들한테 학자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좋은 일이었지만 밖에 나아가 취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그 때의 장병장은 나의 요청에 다라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매월 월급을 모아 그녀에게 250환짜리 「여상」이라는 월간지를 사서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이제 이것도 몇 개월 후면 끝이라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그녀 모르게 월남 파병을 지원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 이재인(경기대 국문학과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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