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죽은 시인의 사회: 이장희, 「비인 집」
[시민 시인의 얼굴] 죽은 시인의 사회: 이장희, 「비인 집」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3.10.3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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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실내(室內)를떠도는그윽한냄새

좀먹은비단(緋緞)의쓸쓸한냄새

눈물에더럽힌몽환(몽환)의침대(寢臺)

낡은벽(壁)을의지한피아노

크달은말러버린따리아

파랏게숭업게여윈고양이

언재든지모색(暮色)을띠인숲속에

코기리같은고풍(古風)의비인집이있다

—이장희, 「비인 집」

죽은 시인의 사회

1929년 11월 8일 동아일보에 짤막한 부고가 뜹니다. 시인 이장희가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그것도 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내용입니다. 세상을 비관한 끝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대구 큰 부자 이병학의 아들인데다 촉망받던 시인인데 왜 서른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하는 궁금증이 깊이 배인 기사였습니다. 자살 원인을 생활고나 정신병력, 신병에서 찾을 수 없으니 복잡한 가정사를 빌미 삼은 거지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두 명의 계모 밑에서 아버지와 불화했던 이장희는 분명 이 세상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인이 죽은 이후 남겨진 사회일까요. 아니면 시인이 살 수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요. 어쨌든 시인의 죽음은 곧 위기에 처한 사회를 함축하는 은유입니다.

시 「비인 집」은 1925년 9월 신민(新民) 5호에 실린 작품으로 5년 후 죽음을 예감한 듯한 분위기입니다. 죽음은 쓸쓸하고 낡은 감각 속에 전해집니다. 그의 대표작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고 감탄했던 삶의 생기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푸른 봄 생기 넘치던 고양이는 파랗게 주눅 들어 여윈 고양이로 변신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처연하게 몰아 부친 것일까요. 기형도의 「빈집」도 그랬습니다. 모든 사물과 정리와 작별을 고하고 스스로 갇힌 모습처럼 이장희도 빈집에 갇혔습니다.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1951년 한국전쟁 중 전봉래는 부산 스타다방에서 바흐의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5번을 튼 채 음독자살했습니다. 전쟁은 스물 셋 청년을 무참히 무너뜨렸습니다. 시인이 죽고 사회는 아수라장인체 오래도록 죽음의 그늘 속에 있었습니다. 김종삼은 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에서 시인은 “엄청난 고생되어도/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시인도 숨 쉴 수 없습니다. 이장희가 자결한지 5년 후 김소월도 아편을 먹고 목숨을 끊습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상은 봉건적 억압과 식민지의 폭력과 비인간적 자본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장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친일부역자 아버지의 패악과 속물근성이 그를 옭아매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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