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우파’란 비상식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좋은 사회는 결국 상식적인 우파와 상식적인 좌파의 조화로 지속될 수 있다. 서로를 견제하며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통해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책 『프랑스의 자살』은 프랑스 우파 지식인인 에릭 제무르를 지난해 프랑스 대선 후보로 만든 그의 저서다. 에릭 제무르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7% 득표하며 결선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을 지지하며 우파 연합이 결선 투표에서 41.45%의 득표를 기록하는 데 힘을 더했다.
『프랑스의 자살』은 프랑스 우파의 논리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68혁명과 강력한 대통령 중심주의로 프랑스를 이끌었던 ‘국부’ 샤를 드골의 사망이 어떻게 프랑스를 약화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를 우파적 시선으로 보여 준다. 에릭 제무르는 프랑스의 쇠퇴 원인을 좌우 진영 모두에게 묻는다. 자유와 세계화의 구호 아래 공동체를 와해시킨 좌파와, 이에 동조하면서 이득을 챙긴 우파의 무책임을 지적한다.
한국의 좌파는 민족주의, 반세계화, 반민영화를 주장하며 자유시장경제의 무분별한 확대를 경계하는 이들로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극우’인 에릭 제무르가 가진 이념을 살펴보면, 한국의 좌파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미국 경제의 경쟁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너무 많이 소비하고 충분히 저축하지 않았다. (중략) 그것은 병든 사회이며,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지 못한 채 그것을 충족시키라고 속삭이는 광고에 의해 끊임없이 장려되는 사회다.”
또한 역자에 따르면 에릭 제무르는 이 책에서 민영화된 과거 국영 기업들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어려워진 프랑스 내 노동자의 삶을 돌아볼 것을 촉구한다. 세계화로 인해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를 경계하는 우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에릭 제무르가 철저히 국가의 이익을 판단 기준으로 두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우파는 민족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힘들고, 세계화와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좌우의 개념이 만들어진 프랑스에서 극우로 평가받는 인물의 주장을 한국에 옮겨놓으면 좌파의 주장이 되는 셈이다.
책에서 보면, 2016년 프랑스의 한 설문조사에서 프랑스 내 거주하는 젊은 무슬림의 절반이 프랑스법보다 샤리아법이 위에 놓여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세계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정체성 정립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프랑스만의 정체성이 흐릿해질 수 있는 다양성과 세계화를 우려하는 우파적 시선이 무의미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우파는 어떠한가? 견고한 고정 지지층이 있으며 현 대통령도 보수 정당이 배출했지만 진정한 우파가 존재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에릭 제무르는 프랑스가 ‘자살’했다고 표현했다. 한국의 우파는 ‘헬조선’이라는 언어조차 용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파는 존재해야 하며, 그리고 고쳐져야 한다. 우파의 논리와 비전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맹렬한 애국심을 가진 보수주의자, 한국의 에릭 제무르가 필요하다. 얼마나 간단한가? 이 나라를, 죽도록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니. 학문적 전문성을 갖춘 우파가 ‘진심’까지 갖춘다면 젊은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에릭 제무르의 이 저서는 절절히 애국하고 있음을 보여야 ‘우파’로서의 자격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