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비밀 세계에서 걸어오시는 분: 오상순, 「가위쇠」
[시민 시인의 얼굴] 비밀 세계에서 걸어오시는 분: 오상순, 「가위쇠」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3.10.23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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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바느질하던 나의 누이

「오라버니, 그게 웨 그러오?」

10년 전에 어머니 쓰시던

가위를 들어 코에 대었다네

어머니 살내음

혹시나 남아있을까 하고

무심중(無心中)에--.

—오상순, 「가위쇠」

비밀 세계에서 걸어오시는 분

시인들 중 기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천상병, 김종삼, 김관식 등을 꼽지요. 오상순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술이라 하면 수주(樹州)를 뛰어넘을 자가 없고 담배라 하면 공초(空超)를 뛰어넘을 자가 없다.”고 했으니까요. 수주는 시 「논개」를 쓴 변영로이고 공초는 오상순을 일컫습니다. 1950년대 명동을 중심으로 어울렸던 문인들의 이야기이지요. 이 전설 같은 에피소드가 시인의 진면목은 아닙니다. 시민 시인의 얼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초가 ‘꽁초’로 와전돼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무엇이든 우스개로 넘기려는 것은 현실에 눈감는 일은 아닐는지요. 1927년 동아일보 3월 18일 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뜨기도 했습니다. “군위군(軍威郡) 내에 상해가정부(上海假政府)의 엇던 요임(要任)을 띤 오공초(吳空超)(三五)가 잠입”. 오상순이 오로지 담배 연기에 삶을 날려 버린 것은 아니니까요. 그는 무언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일본과 중국을 넘나들었습니다.

시 「가위쇠」는 어머니를 그리는 시로 읽힙니다. 세상에 없는 어머니의 체취를 생전에 쓰던 가위 쇠 내음에서라도 맡으려는 자식의 마음이 담겼습니다. ‘허무’, ‘방황’은 오상순을 읽는 핵심어입니다. 『개벽』, 『동명』, 『폐허』 등에서 활동하면서 산문 「폐허행」, 「허무혼의 선언」, 「방랑의 마음」 등을 발표했으니까요. 그렇게 볼 때 이 시는 식민지 사람들의 향수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대표 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도 1920년대 비애와 상실을 담은 작품으로 읽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오상순이 추구했던 생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글에서 어머니는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여신’으로 비유됩니다. 허무와 방랑의 세월로 허송세월한 것 같지만 그는 끊임없이 인간 생명의 본질에 가 닿으려 했습니다. 그러한 나라를 ‘어린애 왕국’이라 표현합니다. 어머니에서 나온 어린이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적입니다. 이 시는 그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비밀 세계에서 걸어오시는 분입니다.

이육사를 민족시인, 저항 시인으로 부르지만 의열단원으로 아나키스트라는 점을 문학사는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처럼 오상순이 루쉰(魯迅), 저우쭈어런(周作人), 예로센코와 교류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이들 모두 봉건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인간 중심 세계를 지향했으니 오상순도 그들과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루쉰은 쇠퇴한 중국에서 새롭게 ‘입인(立人: 사람을 세우다)’하고자 했고, 저우쭈어런은 ‘새로운 마을’ 운동을 통해 시민 공동체를 꿈꾸었고, 러시아 맹인 시인 예로센코는 착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세계 공동체를 조직하려 했습니다. ‘공초’는 허무(空)를 뛰어넘으려는(超) 뜻이 아닐까요.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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