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고전’ 시리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기획 뒷이야기
‘미지의 고전’ 시리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기획 뒷이야기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10.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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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하면서도 아무도 읽지 않는 책’.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고전(古典)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고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기도 하다. 문학사적 의의나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무언가 울림을 주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책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게 정말 고전 작품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일까? 천편일률적인 고전도서 목록과 마치 교과서처럼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읽기, 낡은 번역… 이처럼 ‘고전’이라는 단어에 쌓인 더께를 모두 걷어 낸다면?

고전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다. 편견을 깨 줄 미지의 고전을 찾아 전 세계를 항해하는 새 시대의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을 총괄하는 이성근 편집자에게 기획 뒷이야기를 들어 봤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1 ‘여성과 공포’. 『프랑켄슈타인』을 제외한 4권이 국내 초역 작품이며, 5권 모두 여성 번역가들이 맡았다. [이하 사진=휴머니스트]

Q.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휴머니스트 편집부에서 세계문학 책을 만들고 있는 이성근이라고 합니다. 문학 편집자로 일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또 다행히) 문학 책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Q. 지난해 봄 시작된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리즈’가 어느새 2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집 기준으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길 잘했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처음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이미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다른 시리즈도 있었고, 더구나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은 낯선 초역 작품을 대거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안정감을 주는 시리즈, 작품들과 경쟁해서 독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지 두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미지의 고전 중에서 지금의 우리 독자들에게도 유효한 가치와 즐거움을 담은 작품들이 분명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2년이 되어 가는 지금, 독자들이 낯설지만 새로운 작품들을 얼마나 원했는지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Q. 인문학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새 고전문학 시리즈를 론칭하려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듯한데요. 이러한 도전이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철학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대표님이 큰 용기를 내 주셨죠. 휴머니스트는 ‘가치 있는 삶의 동반자’를 모토로 세대별로 한평생을 읽을 수 있는 책을 모두 갖춰 나가고자 하는데, 역사와 인문, 어린이, 실용 분야에 이어, 어찌 보면 이제야 문학 책들을 본격적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에요. 일반적으로 독자들에게 가장 접근성 높은 분야가 문학이잖아요. 문학 편집자로서 전 세대가 평생에 걸쳐 읽을 책이라면, 고전문학이 가장 맞닿아 있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이 시리즈는 특히 ‘1년에 세 번, 하나의 테마로 다섯 편의 고전을 소개한다’는, 시즌제 큐레이션 형식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획 당시 참고한 해외의 유사한 시도나 관련 콘텐츠가 있나요? 실제로 정기 구독 형태의 판매 모델을 도입할 생각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컬렉션의 형태로 비슷한 작품들을 묶어 출간하는 일은 자주 있지만, 시즌제 큐레이션 출간을 시리즈의 전체 콘셉트로 설정한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다만 출판계가 아닌 다른 콘텐츠의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미 자리를 잡은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독자들은 넷플릭스처럼 큐레이션된 상품을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구독형 플랫폼에 익숙한 세대니까요. 시즌제 큐레이션 시리즈라는 새로운 접근이 독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질지 걱정도 많았지만, 범람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좀 더 빠르고 확실하게 양질의 작품을 골라낼 방법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의 줄임말)의 테마를 따라 읽는 독자들이 좀 더 강력한 동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Q. 시즌 5까지 출간된 현재, 25권 중 절반 이상인 14권이 국내 초역 작품이에요. 기존에 잘 다뤄지지 않았던 작품,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작품을 의욕적으로 다루는 만큼 편집자들의 검토 범위도 방대하고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텐데요.

“세계문학 독자들은 낯선 작품, 새로운 작품,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작품에 항상 목말라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이 ‘초역’이라는 귀중한 딱지를 붙이고 출간되는데, 고전은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작품이 대다수인 만큼 오래 준비한 작품의 ‘초역’ 딱지를 한순간에 다른 출판사에 내어 주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출간이 임박해서 그런 일이 생길 때는 조금 허탈해지기도 하지요. 아울러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고전에 분주하게 촉수를 뻗어야 하는 고단함도 있지만, 반대로 남들이 모르는 좋은 소설을 찾아냈을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Q.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그간 ‘도련님’ 캐릭터로 주목받았던 작품인데 이 시리즈에서는 ‘할머니라는 세계’ 테마에 포함됐고, 표지에도 ‘기요 할멈’이 주인공처럼 그려져 있어요. 적극적으로 새로운 독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시리즈의 특성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주로 밤늦은 시간에 아름다운 표지를 만들어 내서 ‘일몰 후의 마법사’라 불리는 디자이너님이 『도련님』에도 ‘기요 할멈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림을 찾아 주었어요. 『도련님』을 ‘기요 할멈’에 집중해서 읽는다면 완전히 다른 책이 되거든요. 정수윤 번역가가 해설에도 써 준 것처럼 친부모에게 일찌감치 버림받은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적인 이력이 ‘기요 할멈’이라는 이상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 셈이니까요. 『도련님』은 두고두고 여러 번 읽을 만한 책이 분명하지만, 매번 남들과 똑같은 입구로 작품에 들어선다면 그 매력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은 고전으로 입장하는 새로운 방향의 입구를 제시하면서 작품의 외연을 넓히고 독서 본연의 즐거움을 되찾아 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입니다.”

Q.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한 권을 꼽으면 다른 책의 번역가 선생님들이 굉장히 서운해 하실 듯해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몇 권만 꼽기가 정말 어렵네요. 많은 편집자들이 그렇겠지만, 그때그때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마지막으로 만든 책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시즌인 ‘할머니라는 세계’(『도련님』, 『사라진 모든 열정』, 『4월의 유혹』, 『마마 블랑카의 회고록』, 『불쌍한 캐럴라인』)의 다섯 할머니에게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이 시즌을 편집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할머니’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뭉뚱그려 왔는지 생각해 보게 됐거든요.”

Q. 세계문학 편집자들이 직접 만드는 뉴스레터 ‘흄세 레터’부터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작품을 먼저 읽고 쓴 리뷰나 에세이, 짧은 소설을 묶어 부록처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한 미니 매거진까지, 작품 외적으로도 끊임없이 고전의 세계로 다정한 초대장을 보내는 느낌이었는데요. 이러한 시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요?

“매 시즌이 출간될 때마다 국내 작가들이 작품을 먼저 읽고 쓴 리뷰나 에세이를 묶어 소책자 형식의 『매거진 흄세』를 펴내고 있어요. 무척 감사하게도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님들이 함께해 주셨지요. 시즌제 큐레이션 출간이라는 방식과 더불어 고전 특유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도록 거리감을 크게 좁혀 주는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참여 작가들의 아름다운 문장과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래서인지 『매거진 흄세』만 따로 모아서 소장하는 독자들도 많고, 온라인서점과 독립서점에서도 수요가 많은 편입니다. ‘흄세 레터’나 흄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 감사 피드백도 계속해서 받고 있고요.”

Q. ‘고전에 대한 엄숙주의 이면으로 밀려난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기획의 출발점이었다고 하셨어요. 쉽고 화려한 콘텐츠가 사방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지금,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자꾸 불어나는 콘텐츠의 양만큼이나 나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찾아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져요. 특히나 고전은 시간적으로 지금의 우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지요. 저는 고전이 인생에서 실패의 확률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좋은 고전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실패하지 않고자 선택한 책에서 실패를 맛보는 일은 좀 안타깝잖아요. 그 선택을 돕고자 각 언어권을 대표할 수 있는 번역가들과 함께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언어로 고전을 번역하며, 영미권 문학 중심, 남성 중심, 순수문학이라는 기왕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작품을 두루 출간하고자 합니다. 또 비슷한 유형의 작품이라면 좀 더 분량이 적고 다가가기 쉬운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순전하게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5 ‘할머니라는 세계’.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에서 주인공인 ‘도련님’이 아닌 ‘기요 할멈’에 주목하는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Q. 오는 12월이면 지금까지 다룬 주제인 ‘여성과 공포, 이국의 사랑, 질투와 복수, 결정적 한순간, 할머니라는 세계’에 이어 새로운 테마 ‘소중한 것일수록 맛있게’가 공개됩니다. 이번 테마를 선정한 이유와 주제, 도서 라인업 등이 궁금합니다.

“시즌 6에는 ‘소중한 것일수록 맛있게’를 주제로 수많은 세계문학 고전 중에서 ‘음식’을 중심으로 읽을 수 있는, 그러니까 식욕을 자극하거나 음식을 통해 소중했던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다섯 편의 소설을 모았어요. 그중 한 권인 오 헨리 소설집 『식탁 위의 봄날』에 수록된 「크리스마스 선물」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서로에게 쓸모없어진 선물을 주고받는 부부의 뒤에 ‘뜨겁게 데운 살코기 요리’가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서로에게 쓸모없어진 것을 선물함으로써 부부의 사랑이 더 뜨거워진 것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는 장치예요. 이처럼 음식은 의미심장한 복선의 효과나 작품을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서사의 전환을 담당하는 주요한 매개체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여러모로 몸에 좋은 소설들이지요. 작품 목록은 처음 공개하는 것인데, 오 헨리 소설집 『식탁 위의 봄날』, 비키 바움 소설집 『크리스마스 잉어』, 나카 간스케 장편소설 『은수저』, 빌럼 엘스호트 장편소설 『치즈』, 허버트 조지 웰스 장편소설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입니다. 특히 이번 시즌은 알라딘 북펀드를 통해 깜짝 특별판을 준비하고 있으니 더욱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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