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은 덜 예민한 사람보다 많은 걸 느끼는 사람이다. 이들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 말하자면 고성능 카메라이자 민감한 악기다. 하지만 점점 예민한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언제나 손에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에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콘텐츠로 가득하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24시간 내내 연결된다.
3년 전,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출간하며 ‘예민러 멘토’가 된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예민한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권했다. 실제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초판 인세 1,000만원을 기부하고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200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로 돌아온 전홍진 교수에게 예민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물었다.
Q. 4대 서점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르고 14만 부라는 판매고를 올린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후속작이 3년 만에 출간됐습니다. 바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인데요. 전작과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과 예민성을 잘 극복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 인문서였다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는 사례 위주로 풀어내 대화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에요. 그래서 제목도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에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가 됐어요.
Q. 책 표지 그림도 고슴도치 그림에서 고슴도치 가족이 모여있는 그림으로 바뀌었어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니 속은 따뜻하고 착한데 겉은 가시가 돋친 점이 고슴도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슴도치 사진으로 정했고요. 이번 표지에서는 고슴도치 가족이 다과를 하고 있고 아빠 고슴도치가 책을 읽어주고 있어요. 가족 한 명이 예민하면 가족 전체가 예민해지거든요. 그런데 가족 목소리를 들었을 때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게 예민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니까 가족이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표지를 정했어요.
Q. 예민한 사람들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요. 점점 예민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한 50년 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어요. TV는 있었겠지만 편지가 주였죠. 한마디로 인풋이 적은 세상이었어요. 이렇게 정보가 굉장히 적은 시대에는 되게 편하게 지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정보가 너무 많죠. 게다가 편안한 정보가 아니라 자극적인 정보에요. 교통이 발달해 사람들도 예전보다 많이 만나게 됐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예민한 사람들에겐 정보 양이 무한대로 들어가요. 그러니 늘 긴장 상태로 지내게 되고 기진맥진해지는 거죠.
Q. 스마트폰, TV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받는 자극도 큰 것 같아요.
맞아요. 예민한 분들은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까지 다양하게 해석해요. 예를 들어서 상대방의 표정이 안 좋으면 ‘나에게 무슨 불만이 있나’, ‘내가 뭐 잘못했나’ 이렇게 생각 하는 거죠. 이런 걸 ‘관계 사고’라고 하는 데 자꾸 이렇게 관계를 지어서 생각하면서 그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곱씹어요. 그 사람이 이미 잊어버린 부분까지 들춰내는 거죠. 이렇게 대인관계에 민감하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Q. 예민한 사람일수록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주 간단하고 핵심적인 이유에서인데요. 책이 가장 자극이 적은 매체이기 때문이죠. 첨단 매체는 구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빨리 클릭하게 해야 해요. 그래서 점점 짧아지고 말초적이 되어 가고 있죠. 하지만 이런 식의 콘텐츠는 예민한 사람들하고는 완전히 안 맞아요. 그 잔상이 남고 예민성을 나쁜 쪽으로 발현되게 할 수 있어요. 책은 텍스트로 전달되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줘요. 우리 청소년들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대화에만 익숙하다 보니 긴 문장을 읽는 거에 약해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경우에는 다양한 고급 어휘를 사용하는 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돼요. 책이 이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거죠.
Q. 그래서인지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200권을 기증하셨어요.
2017년부터 4년 동안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했어요. 심리부검이란 자살로 사망한 경우 고인의 사망 전 성격과 행동 양상 등을 토대로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그때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하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학교 시스템을 바꿔도 보고 상담도 강화히고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자살자 중 많은 수가 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들이었어요. 그때 깨달은 거죠. 진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걸요. 그래서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센터장님께 아이들 명단을 받아 책에 사인을 해서 드렸어요.
Q. 책에서 '안전기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책이 좋은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안전 기지는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에 의해 제시된 이론인데요.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예민성이 조절이 되는 대상을 의미해요. 살다 보면 내 마음이 불안하고 힘든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예민한 분들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그 이벤트를 못 견뎌요. 남들보다 10배쯤 힘들어하는 거죠. 그럴 때 안전기지가 있다면 그 위기를 넘어가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사실 부모님이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꼭 부모님 탓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이기도 하죠. 그럴 때 책이 안전기지 역할을 훌륭하게 해줄 수 있어요. 힘들 때마다 책을 꺼내보며 책으로 안전기지를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죠.
Q. 안전기지가 더 이상 안전기지가 아니게 됐을 때가 오잖아요. 예를 들어 축구가 나의 안전기지였는데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남자친구·여자친구가 나의 안전기지였는데 헤어졌다거나… 이런 상황에 부닥쳤다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안전기지를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축구를 못 하면 야구를 하면 되고 테니스를 치면 되거든요. 안전기지를 잃었다면 다른 안전기지를 계속 찾아나가야죠. 문제는 가까워졌으면 멀어질 수도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안전기지를 너무 중요하고 심각하게만 여기면 안 되는 거죠.
Q. 예민성을 다루는 가장 안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요.
예민하게 만드는 상황을 피하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민성을 차단, 회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돼요. 대학생 같은 경우는 학교에 나가면 사람들 많이 만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그냥 학교를 안 나가요. 그럼 편하겠죠. 하지만 그다음엔 어떻게 될까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회사에 나가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집돌이, 집순이가 되는 거죠. 사람들과 부딪히며 대인 관계 능력과 커뮤니케이션을 능력을 키울 시기를 놓치는 거예요. 예민한 사람일수록 그런 시간과 기회가 더 필요한데 말이죠. 얼마든지 세상과 소통하며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자신만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너무 안타깝거든요.
Q. 마지막으로 ‘예민러 멘토’로서 ‘예민러’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예민한 건 절대 나쁜 게 아니에요. 남들이 놓치는 수많은 정보를 포착할 수 있고,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 캐치할 수 있으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연결될 수 있죠. 그러니까 예민성이 좋은 쪽으로 발현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해요. 예민해서 성공한 사람과 예민해서 실패한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그게 뭘까요? 예민하면서도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하고 대화할 때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어요. 그게 안 되는 사람은 낯선 사람을 상대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져요. 요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혼자 하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모든 일에는 대화와 소통이 필요해요. 스스로 예민하다는 것을 알고 예민성을 잘 관리해야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어요. 그때서야 비로소 예민한 사람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죠.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