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 한하운, 「손가락 한 마디」
[시민 시인의 얼굴]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 한하운, 「손가락 한 마디」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3.10.1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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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한하운, 「손가락 한 마디」

호모 사케르(Homo Sacer), 벌거벗은 생명

198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한축이 나게 읽었던 시가 있습니다. 「손 무덤」입니다. “(프레스에 잘린)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멈췄습니다. ‘노동자의 피땀’이 새삼 사무쳤기도 했지만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보다도 손이 제 스스로 날뛰는 환지 현상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끔찍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뒷덜미를 잡아챘습니다. 지금도 나는 노동자요 외치는 사람 앞에 서면 저절로 몸이 옴츠러듭니다. 하얀 내 손이 부끄럽기도 하고 떨어져 나간 몸이 훈장처럼 박혀 있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해서입니다.

시 「손가락 한 마디」가 「손 무덤」의 원조 격이라 말하면 과하겠지요. 몸 일부로 삶 전체를 제유했다는 데서 이 두 시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는 고백은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곡진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손 무덤」에서 엄습했던 무거운 고통을 이 시에서는 찾을 수 없네요. 다만 내 몸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듯합니다. 이 두 시의 차이가 아닐까요. 누군가의 희생은 영웅처럼 떠받들려 신화가 됩니다. 그런데 한센인의 자기 절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호모 사케르는 말 그대로 ‘신성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리스 시대 호모 사케르 하면 희생물로도 쓰지 않을 만큼 가치 없는 존재를 일컫습니다. 그를 죽인다 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니 벌거벗은 생명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모든 추방당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실제 한하운은 시 「보리피리」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곤란을 겪었습니다. 1953년 8월 한국 전쟁이 막 끝나고입니다. 그가 실체 없는 ‘문화 빨치산’이라고 언론이 소위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세상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프랑스를 들끓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 같았습니다. ‘월남 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달랐습니다. 그를 끝까지 희생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호모 사케르, 저주 받은 존재였습니다. 미당이 시 「문둥이」에서 악마처럼 그렸던 사람이 격리된 채 지금도 우리 곁에 신음하고 있지는 않나요. 한하운은 설움만 내뱉은 저주받은 ‘시인’이 아닙니다. 인간 군상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줬던 벌거벗은 생명입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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