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클래스’ 번역가 안톤 허 “K-문학은 없다”
‘월드 클래스’ 번역가 안톤 허 “K-문학은 없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10.1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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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정확히 말하면 『Cursed Bunny』 광풍이 꺼질 줄 모른다. 부커상에서 이번엔 전미도서상으로 옮겨붙었다. 지난 3일(현지 시각) ‘2023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최종 후보가 발표됐는데, 번역 부문 최종 후보에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영어 번역본인 『Cursed Bunny』가 이름을 올렸다. 2022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 노미네이트에 이은 믿을 수 없는 성과다.

이 광풍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한국 문학 번역가 안톤 허다. 2022 부커상 국제 부문 롱리스트 (1차 후보)에는 『Cursed Bunny』외에 안톤 허가 번역한 작품이 또 있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영어 번역본 『Love in the Big City』이다. 이로써 안톤 허는 부커상 역사상 한 해에 두 권의 책을 올린 세 번째 번역가이자 유색인종으로서는 첫 번째 번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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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 영역본 『Cursed Bunny』와 1차 후보에 오른  『대도시의 사랑법』 영역본 『Love in the Big City』

안톤 허는 첫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에서 그 감격의 순간을 생생하게 회상한다. “기쁜 소식이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주, 아주 멋진 교통사고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치는 것도 모자라 지옥으로 떨어질 지경인 이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부커상 국제 부문은 작가만이 아닌 번역가에게도 주는 상이다. 즉 그 책의 원서에 수여한다기보다는 영문 번역본에 수여하는 상이다. 이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거듭 언급한 사항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은 부커상 후보에 한국 책 두 권이 올랐다는 사실에 무게를 둘 뿐, 번역가 한 사람이 그것도 유색인종 번역가의 작품이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는 무심한 편이었다. 한 해 동안 부커상 후보작을 두 편이나 배출한 것은 한국문학이 대단해서라는 결론이 한국 언론의 전반적 반응이었다.”

안톤 허는 13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에서 “K-문학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해외에 한국문학 시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는 “K-팝이 잘나간다고 해서 한국문학도 잘나간다고 하면 오산이다. 블랙핑크에 열광하는 팬들이 갑작스레 황석영 소설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까? 영미권 도서의 단 5%만이 번역서다. 한국어 번역서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언어의 번역서를 합친 수치다. 이 5% 중 단 1%만이 한국어 번역서다. 그러니 영어권을 통틀어 한국문학 작품의 비중은 고작 0.0005%인 것이다. 업계에서는 일 년에 한국문학 작품이 열 권만 출판되어도 많은 편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13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안톤 허 번역가가 관객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게다가 한국문학 번역 출판 계약을 따내는 일은 순전히 번역가의 몫이다. 번역가는 출판사, 에이전트,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일감을 받아 우아하게 번역만 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무식할 정도로 맨땅에 헤딩하고 기나긴 세일즈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제로 부커상 광풍 뒤에는 안톤 허의 고독하고 눈물겨운 사투가 있었다. “그 어떤 출판사도 제게 번역하라고 책을 주지 않는다. 특정 책의 번역가가 되기 위해 저는 항상 싸워야 한다. 작가에게 호소하고, 한국 출판사들에게 호소하고, 번역 지원 기관에 호소하고… 그런 다음 영미권 출판사들, 영미권 인플루언서들 그리고 영미권 독자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이처럼 문학번역가의 일은 8할이 호소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온 안톤 허는 이 자리에서도 번역가에게 주는 지원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해야 했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할 때마다 ‘우리 제발 돈 좀 더 달라’라는 말을 한다. 자꾸 돈 얘기를 해서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이 모든 것을 견인한다. 지원금 액수가 올라가야 우리 위상도 올라간다. 샘플을 번역할 돈이 필요하고 해외에서 출판인들을 만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에 다 돈이 들어간다”라고 강조했다.

13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안톤 허 번역가가 관객과 대화를 하고 있다.
13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안톤 허 번역가가 관객과 대화를 하고 있다.

그렇게 고생했으니 보상을 바랄 법도 한데, 안톤 허는 전미도서상 수상을 기대하냐고 묻는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는 이미 받은 게 너무 많다. 부커상 역사상 부커상 후보에 오른 사람은 셀 수 없지만, 롱리스트에 두 작품을 올린 번역가는 저 포함 세 명뿐이다. 부커상을 수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더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생 다시 상을 안 타도 정말로 상관없다. 저 대신 젊은 작가와 번역가들이 받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저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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