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청년 박제천 선원빈을 만나다
문학청년 박제천 선원빈을 만나다
  • 이재인
  • 승인 200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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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교수의 문학회고록③
삶은 관계에서 비롯
 사람의 삶은 관계에서 좌우된다. 불가에서 쓰이는 ‘인연’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관계를 중시하는 말인 줄 안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관계’라는 저울을 주었다. 그것을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는 ‘조절’이라는 핸들을 함께 주었다.

 무슨 음식이든지 알맞게 그것을 양과 수위와 온도와 더불어 조절해 먹으면 약이 되고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면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관계 그것은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한 기회와 역할도 만들어낸다. 우리가 친구와 학우와 향우들과 어울리고 사귀는 것이 바로 관계를 맺고 거기에서 배우며 느끼며 생각한다.

 두 번째 가출도 실패한 나는 낭패와 좌절감을 겪으면서 몇 개월을 지냈다. 그러나 온통 공부하려는 열정만 가득 찼다. 그러다보니 나는 노동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일에도 건숭건숭했다. 공부도 내놓고 하는 처지도 못되었다. 주위에 머슴 가라는 압력만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나는 이로 인해 반거충이가 되고 말았다. 반거충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것을 가리키는 충청도 말이었다. 나는 다시 서울에 가고 싶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고 싶었다. 고학생이 고시도 합격하고 국회의원도 되었다고 소문이 구구했다. 그것은 나에게 불같은 열정을 심어주었다.

▲ 필자가 어린시절 기도하던 샘물가 (80년대초)

 그래, 가자! 나는 여름날이 거을거을할 즈음 야반도주, 세 번째의 도전으로 근엄한 출가(出家)를 결행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오영수 선생 댁을 찾았다. 입성이 남루했지만 또렷또렷한 음성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선생께서 딱 두 마디 했다.

「알았다……. 내 김동리한테 알아보겠구마……. 그 예산에 예당저수지라카는데 붕어가 좀 있다카노?」
「예. 감사합니다. 예당에는 고기반 물반이라던걸유…….」
「예끼, 과장이 심하다이. 무신 물반 고기반이가?」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과장된 것이 들통이 난 것이다. 나의 과장은 오 선생님을 한번 유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허풍을 섞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 있거라. 내가 알아보마. 언제 내 예당에 갈끼라. 내 연락하마…….」

 난계 오영수 선생은 우리 문단에서 과묵하기로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신중하고 깊이 있어 문인들의 신뢰를 받는 것을 어린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고향에 가 있으라는 말에 나는 세 번째의 가출에서 절반의 공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나의 발걸음에 힘이 있었다.

 「내려가 열심히 대핵교 입학 공부 하것십니다. 저는…….」

 나는 허리를 꺾어 정중히 인사를 했다. 부리나케 대문을 나서면서 아래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바지라고 했지만 군복 중고에 검정물감을 들인 바지였다. 가출 하루를 보냈으니 차비와 용돈이 아직도 건재했다. 가자, 고서점으로.

 나는 어제 미아리 고개 넘어서기 전, 태극당 제과점 골목의 헌책방을 떠올렸다. 거기에 가면 좋은 고서(古書)를 골라낼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한동안 수숫대처럼 설렁이고 있는데 고서점 문짝이 마치 피부병 딱지가 페니실린에 들썩이듯 열려졌다.

 「책좀 구경왔는디 봐두데쥬?」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동안 읽지 못했던 「현대문학」 몇 권의 과월호와 전관용의 <흑산도> 김성한의 <오분간>등을 뽑아냈다.

 「이게 월만가유?」
「합해서 삼천원!」
「쫌 깎아주슈. 시굴서 왔싱께…….」
「안돼여.」
「깎아주슈. 내 이댐에 올테잉께…….」
「살라먼 다 내여!」

 이렇게 주인과 책값 때문에 옥신각신 하는데 한 청년이 들어섰다. 주인과 내가 책값 때문에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곤 내 편을 들었다.

 「좀 깎아 주세요. 보아하니 촌에서 온 젊은이 같은데…….」
「좋다. 그러면 이천오백원!」

 나는 이천오백원에 일 미터 높이의 과월호 문예지와 단편집 두어 권을 새끼로 가로세로 묶었다. 새끼에서 집비늘이 떨어졌다.

「문학공부허슈?」

 눈이 크고 키가 작달만한 청년이 신기한 눈으로 나한테 물었다.

 「예.」
「나와 이야기좀 합시다. 나두 소설을 쓰려구 하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소설을 쓴다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 그러나 시골에 갈 차비 외에는 돈이 없었다. 그는 나의 마음을 읽은 듯이 말했다. 과자값은 걱정 말라는 당당한 태도였다.

 나는 그가 부축해 주는 책 보따리를 들고 옆에 태극당 빵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가 경동고를 졸업한 재수생 선원빈임을 밝혔다. 경동고의 <학해>편집장 출신이니 더러 「학원」잡지에 발표한 경력을 쭉 나열했다.

 나는 그의 신기한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다. 두 시간 가량 그의 문학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고모님 댁으로 가서 하룻밤을 묵고 가기로 작정했다.

 「어디로 가쇼?」
「신흥사 밑에요…….」
「신흥사 밑이면 우리집 근처네…….」

 그는 신기해하면서 내 고향 예산에 놀러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환영한다고 하면서 그에게 주소와 차편을 적어 주었다.

▲ 선원빈 박제천이 와서 잠잤던 필자네 사랑방(80년대)


박제천, 선원빈 예산에 오다
 그런데 그렇게 헤어진 몇 개월 후 선원빈은 고수머리에 젓가락같이 비쩍 마른 청년 한사람을 대동하고 운산리 나의 집을 찾아왔다.

 그는 나의 문학적 열정과 삶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자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인사를 하면서도 나는 박이요 했다. 박? 흥부네 박은 아닐 테고……. 한참 있다가 선원빈이 말했다.

 「저애는 말이 적어요. 성동 출신인데 나와 같은 애야. 제천이라고…….」

 나와 같은 애? 그는 문학청년에 재수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재수생? 재수? 나는 그때까지 재수라는 용어에 대해 깜깜했다. 머리가 좋은 친구가 在秀(재수)인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후에 알아보니 대학, 자기가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 상처 받은 영혼과 육체를 학대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나와 함께 3박 4일 합숙을 했다. 물론 우리집 사랑방이었다. 우리집 사랑방은 훌륭한 인물들이 묶었던 방이다. 오영수 박제천 선원빈 정영일 배택인 홍희표 유문동 등등 한국 문단에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유숙하고 간 사랑방.

 나는 선원빈과 박제천을 이끌고 면소재지에 있는 광시 양조장을 찾아갔다. 안주인이 제법 이름난 여류 시인 서창남(徐昌男) 선생이었다. 창덕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을 중퇴했다던 그는 윤석중 선생의 소개로 「네잎 클러버」라는 시집을 출간한 분이었다.

 나와 두 친구를 맞이한 서선생님은 광시면 출신 김광회(金光會)시인이 이곳에 고향을 두고 있다면서 그분의 초록색 표지의 시집 「시원에의 연가」를 들어 보였다.

 앞으로 우리 셋에게 기대를 걸겠다면서 과일접시를 내왔다. 그러나 우리들은 과일 접시보다 양조장 진국 약주 두 사발쯤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여기서 오늘의 내가 주목하는 점은 박제천과 선원빈은 내 서고에 감춰 놓은 책들을 들추어냈다.

 자기네들이 아직 읽지 않은 장서를 골라냈다. 사흘 동안 식사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독서를 했다. 지독한 녀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들은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이었다. 박제천은 나와 오영수 선생님 댁을 함께 드나들어 바둑을 두거나 독서 정담으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이때의 독서력은 박제천의 시를 놀랍도록 발전시켰다. 그가 지금 한국시단의 중요한 시인이 된 것은 젊은 시절 그 많은 독서의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누가 독서 지도를 하는가? 전자오락, 컴퓨터게임 그것이 우리 청소년들의 영혼을 갉아 먹는 무서운 벌레들이다.

 이 즈음 나와 선원빈 박제천과 함께 오선생님댁을 드나든 친구들이 대략 다음과 같이 기억된다. 서종택 한용환 윤정규 윤진상 김용운 강준희 강인수 조정래 등등이었다. 서울로 돌아간 박제천 선원빈과 나는 수시로 편지를 교환했다.

▲ 이재인(경기대 국문학과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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