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의 세계는 생각 외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치열하고 냉정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하느라 바쁘고, 유튜브 등 화려한 콘텐츠에 둘러싸여 지내는 요즘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그러면서도 교육적으로 유익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가 고심을 거듭한다. 그렇게 한 권의 새로운 책을 내놓아도 몇 년째 추천도서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구관’들 틈에서 눈에 띄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파워 없이도 책이 품은 반짝임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은 신인 작가의 책이 있다.
‘도도 언니’라는 신비로운 도깨비 캐릭터가 어린이들의 일상에 나타나 제각기 품고 있던 고민을 알아주고, 소원을 하나씩 들어 준다는 설정의 시리즈 동화 『도깨비 언니』다. 1권 출간 당시 다음 출간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특히 오프라인 서점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얻어 한 달 만에 2권을 출간하게 됐다고.
마치 이야기 속 도깨비처럼,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단 아이들의 속마음을 헤아려 주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윤슬 작가와 『도깨비 언니』, 그 뒷이야기를 나눠 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판화를 전공했습니다. 복제예술이라는 점에서 출판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죠. 한 시간에 몇천 장씩 인쇄하는 인쇄기를 대학생 때 처음 접하고, 인쇄와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어린이책 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했고, 이후 출판 마케터로 전향해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다 돌고 돌아 지금은 다시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저라는 사람보다는 제가 쓴 이야기로 기억되고 싶어서, 책이 아닌 저를 소개하는 건 아무래도 책보다 더 재미없는지라 부끄럽네요.”
Q. 필명으로만 활동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사람마다 고유한 사회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데, 이런 인상이나 선입견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BS의 유아 교육 프로그램인 <모여라 딩동댕>의 인기 캐릭터인 ‘뚝딱이 아저씨’를 혹시 아시나요? 1983년 데뷔한 MBC 3기 공채 개그맨 김종석 님이 연기하는 캐릭터죠. 김종석 님은 연기할 때만큼은 본인의 나이나 사회가 규정하는 본인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철저히 주의하시는데, 아이들의 세계에선 자신이 ‘뚝딱이 아저씨’이지 60대 코미디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명 성우들도 본래의 자신이 아닌 작품 속 출연자의 목소리로 살아가잖아요. 때론 노인이 아이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하고요. 마음 같아선 저의 이름이나 성별, 나이, 모든 걸 지우고 그저 흐릿한 이야기꾼으로만 남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야기꾼은 기억나지 않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Q. 데뷔작인데, 동화 집필에 입문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근무했던 출판사 대표님께서 제게 ‘동화 한 편 써서 가져와 봐라’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림책 기획위원이었던 분도 제가 만들었던 그림책 더미(가제본)를 보시고 ‘조금만 손보면 책으로 내도 되겠다’고 하셨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기지 않았어요. 일을 하면서 어린이책이 너무 어렵다고 느꼈거든요. 출판에 입문할 때만 해도 어린이책을 직접 쓰다가 종국에는 전문 출판사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막상 어린이책의 세계에 들어와 보니 닿지 않는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겁 없이 했을 텐데, 짧은 분량 안에서 교과서에 준하는 바른 말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린이책을 직접 쓰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소설 집필을 계약한 건이 있어서 기획 회의를 하던 중 동화 이야기가 나온 순간 ‘지금이라면 쓸 수 있겠다.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쳤어요. 그래서 쓰던 소설을 덮어 두고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출판계에 입문하던 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많이 변했으니 이제는 써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거예요. 스스로의 허락이라고나 할까요? 오랜 기간 돌고 돌아 다시 집에 돌아온 느낌입니다.”
Q. 3~4학년 대상의 동화예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는 1, 2년 차이에도 크게 달라지잖아요. 대상 독자를 이 연령대로 잡으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은 새로운 환경을 살피고 적응하는 특유의 풋풋함이 있어요. 실수해도 용인되는 시기죠. 반대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3, 고3은 진학이나 입시 등 지극히 현실적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요. 이때는 자신이 ‘세상을 다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죠. 풋풋한 저학년과 세상을 다 아는 듯 구는 고학년 사이에 낀 초등학교 3~4학년이나 중2, 고2는 섬에서 섬으로 건너는 다리 한가운데에 선 존재 같아요. 고민에 흔들리고, 자신의 방향이 옳은지 무의식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할 시기죠. 그렇게 여물지 않은 시기라 곁에서 읊조리는 누군가의 말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들어줄 사람이 있는 곳에서 제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거든요.”
Q. 1권 출간 후 좋은 반응에 한 달 만에 2권을 출간하게 되셨다고요. 독자들의 호응이 체감됐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온라인 서점 한 줄 평 중 ‘처음’이라고 말하는 분이 몇 분 계셨어요. 어린이책 특성상 독자인 아이보다 책을 사 준 보호자가 평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가 두 번 보는 책은 처음이다’, ‘2권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본 건 처음이다’와 같은 의견들을 남겨주셨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책 말고도 재밌는 게 너무 많잖아요. 부모님이라면 십분 공감하실 텐데, 아이 스스로 책을 읽는 것 자체를 보기 어렵고, 읽은 책을 한 번 더 읽는다거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게 정말 드문 일이거든요. 장르의 특성 자체가 노래는 수없이 반복해 듣고, 영화도 여러 번 볼 수 있지만 책은 보통 아예 안 보거나 한 번 읽으면 끝이니까요. 특히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고요. 그런데 진심이 담긴, 처음을 고백하는 한 줄 평을 보니 글쓴이로서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었죠.”
Q. 사실 데뷔작이신 만큼, 『도깨비 언니』에 대한 관심은 작가보다는 책 자체가 좋아서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어떤 점이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보시나요?
“편집자로 일할 때 편집자는 그림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드러나야 할 건 작가이고, 편집자는 판권에 이름 석 자 새기는 것으로 족하다, 편집자가 작가보다 더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늘 생각했죠. 작가와 작품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봐요. 설령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다 해도 작가가 아닌 책이 드러나야 한다고, 이야기의 힘이 아닌 작가의 입을 주목하게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도깨비 언니』가 관심을 받는 건, 한마음으로 좋은 책을 만들자는 마음이 잘 드러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부족한 텍스트를 던졌을 뿐인데 편집자와 그림작가, 디자이너가 너무 애써 주신 덕에 표지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예쁘게 잘 나왔고, 부제와 책을 소개하는 글 역시 이 책을 집어 들게끔 재밌게 나왔어요. 좋은 인연을 만나 저보다 더 고민해 주신 흔적이 모여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왔기에 생소한 작가의 책인데도 관심을 얻는 거라 생각합니다.”
Q. 미술을 전공하셔서인지 색깔에 대한 묘사나 회화적인 표현이 돋보였습니다. 특히 1권 도입부에서는 ‘바다 녹색 크레파스’가 주인공의 서사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는데요. 집필하면서 이런 부분을 특별히 신경 쓰셨나요?
“크레파스를 아이들 미술 도구로 가볍게 보는 분이 많은데, 크레파스로도 정말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거든요. 단지 그걸 모를 뿐이죠. 모름과 앎 사이의 간극이 이처럼 커요. 관계와 마음 역시 모름과 앎 전후의 변화가 타인과 내 사람으로 천지 차이잖아요. 마음이 가면 결국 보이니까요. 바다 녹색 크레파스는 모르는 사람이 볼 땐 그저 흔한 크레파스 중 하나지만, 아는 이에게는 어디에 가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색이예요. 알게 됐을 때 비로소 타인이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걸 은유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소품이 크레파스인데, 모든 아이가 바다 녹색 크레파스처럼 저마다의 독특한 색을 지닌 소중한 존재라는 걸 꼭 말해 주고 싶었어요.”
Q. 슬픈 사연을 가진 도깨비 ‘도도 언니’는 어린이들의 가장 간절한 소원을 들어 줍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판타지적인 설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도도 언니’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민담 등에서 참고하신 특성이 있는지도 궁금했어요.
“민담이나 민화는 오래 전의 것이지만, 결국 당대를 반영하는 것이잖아요? 일부 선택받은 소수가 누리는 게 아닌 대중의 애환이나 삶이 녹아든 이야기가 민담과 민화로 빚어져요. 괴롭고 힘든 현재를 담은 대중 콘텐츠들 역시 시간이 오래 지난 미래에 돌아보면 사회상을 반영한 민담이자 민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존재가 유니콘이나 마법사보다 더 희귀한 세상에서 살고 있잖아요. SNS도 결국은 내 작은 이야기를 확성기에 대고 크게 전하는 것이듯, 다 자기 얘기를 하는 채널뿐이죠. 그렇게 나와 남을 비교하며 갖지 못한 것으로 불행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조금만 달리 보면 결핍도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결핍을 겪은 자만이 결핍을 지닌 자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으니까요. ‘도도 언니’가 아이들에게 귀 기울이고 위로할 수 있는 건, 이 캐릭터가 결핍의 한가운데를 걸어온 슬픈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에요. 이 이야기를 구상했을 때 저 역시 결핍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는데, ‘도도 언니’ 같은 도깨비가 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 대중의 일원인 제가 바라는 이상이 구현된 것인데, 그러니 아이들을 비롯해 대중에 속한 다른 이들도 저와 비슷한 존재를 바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마음에 자라지 못한 아이를 품고 있으니까요.”
Q. 친구 관계뿐만 아니라 몰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빠, 치매에 걸린 할머니 등 어린이들의 다양하고 현실적인 고민을 작품에 녹여내기 위해서는 현장 취재 등도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평소 어린이들과 가까이 지내시는 편인가요?
“출판사 측에 『도깨비 언니』가 기존 이야기들과 다른 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어요. 출발 자체가 어른들의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고요. 아이들은 결국 어른이라는 커다란 원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원이에요.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탯줄을 통해 엄마의 감정이나 건강 상태를 공유하듯, 아이의 고민도 결국 어른의 고민을 초월할 수는 없거든요.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아동은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내리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 고통과 슬픔도 어른에게서 아이로 전염돼요. 이게 굉장히 무서운 현실이에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며 엄마를 미워하던 딸이 늙은 엄마가 되고 보니 결국 자신 역시 엄마와 똑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거죠. 미워하지만 벗어날 수 없고, 물리적으로 벗어나도 감정의 끈으로 얽혀 있다면,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미성숙한 아이와 공존하는 것이고요.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와 어른은 절대적인 존재라서, 자신에게 영향력 있는 어른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나 지속적으로 보이는 부정적인 행동은 존재 자체를 흔들어요. 아이들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때문에 힘들기보다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며 아빠와 싸우는 엄마 때문에 힘든 거예요. 사랑하는 엄마가 힘들어하니까 힘든 거죠. 집에서는 웃고 싶은데 집에 있는 엄마 아빠가 웃지 않고 싸우면 힘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이가 부모와 가정을 박차고 떠날 수 없듯이, 아이는 어른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어요. 차라리 친구와 친구 사이의 문제라면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어른의 문제에 대해 작은 원 안에 있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없다고 봐야 해요. 그렇기에 도깨비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고요.
어린이를 이해하고 어린이의 아픔을 보려면, 어린이와 가장 가까이 있는 어른을 살피면 돼요. 어른이 웃고 있다면 아이도 웃고 있고, 어른이 울부짖고 있다면 아이는 자기 때문에 어른이 울부짖는다고 생각해서 뒤에서 몰래 울고 있을 테니까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마음으로 울고 있을 거예요. 그게 아이니까요. 따로 취재를 하기보단,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삶들이 가라앉고 가라앉다가 가끔 떠오르면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Q. 주인공이 낯선 사람(‘도도 언니’)을 따라가도 될까 고민하는 장면에서 현실감이 느껴졌는데요.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낯선 존재에게 마음을 열었더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도도 언니’가 녹색 어머니회 봉사를 한다든지 하는 설정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안전장치일까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디테일인데 고민했던 지점을 정확히 짚으셔서 놀랐습니다. 독자는 ‘도도 언니’가 주인공이라는 걸 알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낯선 어른은 따라가면 안 된다’라는 아동 교육의 절대 명제와 부딪치는 부분이라 내심 고민이 컸거든요.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였다면 이런 고민 자체가 필요 없었겠죠. 오히려 낯설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야기가 더 재밌게 전개되기도 하는 게 성인 문학이니까요. 규범이라는 작은 도화지 안에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그려야 하는 게 동화의 한계이자 한편으론 매력이기도 합니다.
‘도도 언니’의 녹색 어머니회 봉사를 통해 주인공 ‘현아’가 얼굴을 이미 알고 있는 어른이자 신원 보증이 된 느낌을 주려고 의도한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저도 녹색 어머니회 봉사에 하루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이게 작아 보이지만 희생이 필요한 봉사거든요. 자신의 자녀가 아닌 다른 모든 아이의 안전한 등교를 위해 이른 아침 시간을 낸다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내 애 보기도 바빠 죽겠는데 내가 왜?’가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특히 맞벌이가 많은 요즘에는 봉사 참여를 학부모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도도 언니’가 목에 맨 빨간색 댕기와 초록색 앞치마를 보고 현아는 신호등을 떠올리는데, 교통 안전의 아이콘과도 같은 신호등 이미지를 투사해서 도도언니는 신뢰할 만한 인물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설득되게 하려고 나름 고민했습니다. 고민을 알아봐 주시니 기쁘네요!”
Q. 흔히 ‘동심’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선하고 열린 마음이 작가님께서 동화를 쓰고자 하는 이유와도 연결돼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동화 작가는 아이들의 속내를 헤아리고, 이야기의 힘을 빌려 소원을 들어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도도 언니’와 닮은 것 같습니다.
“세상 모두가 아닌, 단 한 명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책이라는 게, 이야기라는 게 단 한 명의 마음만 움직일 수 있어도 충분히 가치 있고 그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편집보다 더 오래 몸담았던 마케팅 현장에서 느낀 점이기도 해요.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하고 무조건 많이 팔아서 베스트셀러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마케팅과 제품 판매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든요. 모두를 위한 상품이 아니라 단 한 명을 위한 상품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마음에 떠올린 단 한 명에게만큼은 ‘이 상품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설득할 수 있으면 단 한 명을 움직인 진정성으로 결국은 세상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윤슬이라는 이름으로 인사드렸지만 처음에 떠올렸던 필명은 ‘도도 언니’였어요. 꼭 책 속 도깨비가 진짜로 살아 있어서 자기 이야기를 쓴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고, ‘도도 언니’처럼 독자 어린이들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 이름을 쓰지 않은 이유는, 저 역시 그런 존재가 필요한 어른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닮은 부분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네요.”
Q. 현재 3권까지 집필이 완료된 상태라고 들었어요. 3권은 과연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3권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이해와 응원’이에요. 1, 2권은 여자아이가 주인공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컸다면, 3권은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데다 무려 씨름부 에이스입니다. 씨름에 있어서만큼은 늘 1등이었던 주인공이 강력한 슈퍼 루키의 등장으로 2등으로 밀려나는데, 1등에게는 1등만의 사정이, 2등에게는 2등만의 사정이 있거든요. 승부나 노력의 의미, 정정당당함, 같은 입장에 처하게 돼서 비로소 이해의 눈이 떠지는 과정 등을 보여드릴 계획이에요.”
Q. 이 작품 외에 차기작을 구상하거나, 새로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이 시리즈로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전혀 다른 성격의 어린이책도 구상한 게 있긴 해요. 유쾌한 분위기의 활극에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담고 싶어요.
동화 이전에 계약한 소설의 주제, 소재에 대해서도 출판사의 좋은 반응을 얻었기에, 동화 쓰는 틈틈이 소설도 쓸 계획이에요. 현실적인 판타지인데, 남녀의 로맨스도 등장할 예정입니다. 동화처럼 쉽지만 간결하고 명확한 언어로 어른들을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Q. 동화작가로서, 혹은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최종’이라는 걸 못박아 버리면, 그걸 이뤘을 때 심심해지잖아요. 늘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전혀 새로운 길이 열리며 저를 이끌었는데, 처음엔 이상해도 길을 지나면 결국 옳았어요. 동화를 다시 쓰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마법 같은 우연이었죠. 늘 우연처럼 보이는 배려와 도움이 우리를 결국 옳은 길로 데려다 주지 않을까 싶어요. 설령 험난한 길을 택했다 해도 길을 걷는 마음에 따라 풍경이 달리 보이니까요. 전 다른 것보다, 글을 쓰는 게 저에게 계속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도도 언니’의 이야기를 쓰는 건 저에게도 정말 재밌고 행복한 일이거든요. 쓰는 사람이 재밌고 행복해야만 읽는 사람도 같은 감정을 느끼겠죠. 더 이상 글 쓰는 게 재밌지 않다면 그땐 글 쓰는 걸 그만둬야겠지만 지금은 정말 재밌으니까, 계속 재밌게 글을 쓰는 게 붙잡아야 할 단 하나의 목표 아닐까 싶습니다.”
Q. 『도깨비 언니』를 재미있게 읽은, 저마다의 고민을 품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지내고 있을 어린이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얘들아,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아무리 달리기를 열심히 해도, 결국 가장 빠른 건 시간이야! 좋은 일도 결국 지나가지만, 나쁜 일 또한 지나가거든! 그러니까 좋은 일이 생기면 지나가고 사라지기 전에 충분히 좋아하고 축하해 주자! 그리고 나쁜 일이 있어도, 결국 흐르는 물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뒤로 흘러가고 말 거야! 어떻게 아냐고? 너무 싫은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정말 끝도 없이 계속 나쁠 줄만 알았는데, 결국은 이길 수 있다는 걸 경험했거든! 우리는 다 힘이 세서 결국 시간과 함께 빨리 뛸 수 있어.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고? 아주 좋아! 너희도 행복하고 아주 좋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그러길 바라.”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